<?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말하는 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 />
  <author>
    <name>mal-dol</name>
  </author>
  <subtitle>말하는 돌이에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아무거나 될 수 있어요.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해요. 함께 찾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subtitle>
  <id>https://brunch.co.kr/@@i5qA</id>
  <updated>2025-07-26T06:52:43Z</updated>
  <entry>
    <title>오는 것은 언제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11" />
    <id>https://brunch.co.kr/@@i5qA/411</id>
    <updated>2026-05-03T04:00:04Z</updated>
    <published>2026-05-03T04: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비가 왔다. 그 전에 시선이 있었다. 옅어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색은 공중에서 서로를 붙들지 않은 채 잠시 존재한다. 산은 매번 처음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아도 세계는 결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계속 보았다. 완성은 오지 않는다. 오는 것은 언제나 다음 질문이다. 형태</summary>
  </entry>
  <entry>
    <title>사람은 어떻게 다시 사람이 되는가 - 뮤지컬 &amp;lt;레미제라블&amp;gt;</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157" />
    <id>https://brunch.co.kr/@@i5qA/157</id>
    <updated>2026-05-03T00:00:03Z</updated>
    <published>2026-05-03T00: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뮤지컬 〈레미제라블〉에는 혁명, 가난, 억압, 부패, 이상, 죽음이 동시에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역사와 정치의 배경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이름을 바꿔 살아온 한 형제 같은 남자다. 장발장.그는 단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다. 사회가 인간에게 준 멍에와 굴욕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한 인간이, 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vVaeT8qgiLRNZWpzF3VKMLky2Wc.jpg" width="4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늦게 온 빛</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10" />
    <id>https://brunch.co.kr/@@i5qA/410</id>
    <updated>2026-05-02T04:00:06Z</updated>
    <published>2026-05-02T04: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정은 새벽처럼 왔다 오랜 어둠 끝에, 소리 없이. 승리의 나팔도 없이 구원의 손길도 없이 그저 스며들었다, 스며들었다. 이미 다 닳아버린 자리에.  젊음의 긴장은 주름 속에 묻혔고 불안은 오래 견딘 고요로 굳었다.  늙은 얼굴은 꾸며지지 않는다. 주름은 남고 눈빛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이것은 회고가 아니다. 이것은 지속이다. 같은 질문을 끝까지 붙</summary>
  </entry>
  <entry>
    <title>흘러가지 못한 문장들 - 제니 홀저 Jenny Holzer</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4" />
    <id>https://brunch.co.kr/@@i5qA/404</id>
    <updated>2026-05-02T00:00:03Z</updated>
    <published>2026-05-02T00: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시장 한쪽 벽을 따라 늘어선 금속판들은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 침묵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제니 홀저 Jenny Holzer의 Cursed는 읽히기 위해 놓여 있지만, 동시에 읽는 행위를 망설이게 만든다. 납과 구리의 표면은 산화되어 거칠게 일그러져 있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장들은 마치 이미 한 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CA_6uFE9Kjt4DzjSNGUe5T_kRvg.jp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나는 나를 숨기지 않는다 - 자화상의 윤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6" />
    <id>https://brunch.co.kr/@@i5qA/386</id>
    <updated>2026-05-01T00:00:08Z</updated>
    <published>2026-05-01T00: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1년의 에곤 쉴레에게 자화상은 정체성의 확인이 아니라,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다. 〈벌거벗은 자화상〉에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벗는다기보다, 숨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 누드는 자기 노출의 과시가 아니라, 자기 검열을 거부하는 태도다.  몸은 정면으로 제시되지만, 결코 관객을 향해 열려 있지 않다. 자세는 불안정하고, 균형은 어긋나 있으며,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Z5H7Dc5vQwPSocdhHJhLkhMoF8Y.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성은 죄인가, 사실인가 - 금기 없는 시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5" />
    <id>https://brunch.co.kr/@@i5qA/385</id>
    <updated>2026-04-30T00:00:08Z</updated>
    <published>2026-04-30T00: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7년의 에곤 쉴레는 성을 더 이상 도발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누워 있는 여성 누드〉에서 성은 죄도, 도발도 아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살아 있는 신체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은 묻는다. 성은 도덕의 문제인가, 아니면 현존의 문제인가.  여성은 누워 있다. 포즈는 노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연출된 과장이나 과잉된 관능은 없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C9swWtQ_vbNIxCUpoZe_xZkKZPw.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노출과 폭력의 경계 - 보는 행위의 책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4" />
    <id>https://brunch.co.kr/@@i5qA/384</id>
    <updated>2026-04-29T00:00:08Z</updated>
    <published>2026-04-29T00: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1년의 에곤 쉴레는 한 걸음 더 위험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에서 문제는 신체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amp;lsquo;보는 행위&amp;rsquo;다. 〈붉은 옷을 입은 소녀〉는 노출과 폭력의 경계가 어디에서 결정되는지를, 이미지의 윤리라는 차원에서 묻는다.  소녀는 붉은 옷을 입고 정면 가까이 서 있다. 자세는 단정하며, 노골적인 포즈는 없다. 그럼에도 불안은 즉각 감지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y0RYHUBHgU_a7kcgLq89jtd8Tsk.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몸은 왜 이렇게 뒤틀리는가 - 고통의 형태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3" />
    <id>https://brunch.co.kr/@@i5qA/383</id>
    <updated>2026-04-28T00:00:08Z</updated>
    <published>2026-04-28T00: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0년의 에곤 쉴레에게 신체의 왜곡은 하나의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임의의 과장이나 표현적 제스처가 아니라, 고통이 신체를 통과한 뒤 남긴 형태에 가깝다. 〈뒤틀린 남자 누드〉에서 몸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자세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절은 꺾이고, 몸통은 비틀리며, 균형은 의도적으로 해체된다. 이 왜곡은 감정을 &amp;lsquo;표현&amp;rsquo;하기보다, 이미 변형된 상태를 드러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nY4y23ysPpEh9f35CRIhw1PXPY0.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황금을 거부한 제자 - 장식 없는 진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2" />
    <id>https://brunch.co.kr/@@i5qA/382</id>
    <updated>2026-04-27T00:00:12Z</updated>
    <published>2026-04-27T00: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0년의 에곤 쉴레는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벗겨낸다. 〈웅크린 누드〉는 황금도, 장식도, 보호막도 모두 제거된 신체를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 그가 도달한 필연적인 선택에 가깝다.  몸은 웅크린 채 화면에 놓여 있다. 서 있지도, 완전히 누워 있지도 않은 이 자세는 안정의 포즈가 아니다. 그것은 방어이면서 동시에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7kWf1Bd80jPpH_5LArxIkBy06as.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끝내 닫지 않는 것에 대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7" />
    <id>https://brunch.co.kr/@@i5qA/407</id>
    <updated>2026-04-26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4-26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쪽은 단단하고 한쪽은 아직 없다. 멈춘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로 한 것. 지워지지 않는 선, 되돌아간 붓, 생각이 지나간 자리. 완성은 가둔다. 그래서 그는 끝내 열어 둔다. 느려질수록 더 정직해진다. 화면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해야 한다. 불안하다. 살아 있다.</summary>
  </entry>
  <entry>
    <title>춤추는 규율 - 뮤지컬 &amp;lt;마틸다&amp;gt;</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5" />
    <id>https://brunch.co.kr/@@i5qA/405</id>
    <updated>2026-04-26T00:00:09Z</updated>
    <published>2026-04-26T00: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뮤지컬 &amp;lt;마틸다&amp;gt;는 이야기의 힘보다 무대가 먼저 말하는 작품이다. 서사의 중심에는 한 아이의 성장과 저항이 놓여 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감정의 재현이 아니라 구조의 조직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무대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 말보다 앞서고, 때로는 말보다 더 정확하게 세계를 설명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간의 과잉이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d0ped3i7m0YFsnv5x5-yPhuGNDI.jpg" width="424" /&gt;</summary>
  </entry>
  <entry>
    <title>고인 순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6" />
    <id>https://brunch.co.kr/@@i5qA/406</id>
    <updated>2026-04-25T04:00:07Z</updated>
    <published>2026-04-25T04: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물가에 이름 없는 몸들이 모인다. 비너스도 님프도 아닌, 그저 살과 덩어리로. 나무처럼, 돌처럼, 그냥 거기 있는 것들.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버티고 있을 뿐이다, 같은 빛 속에서, 말없이.  나무가 하늘을 안는다. 팔처럼, 아치처럼, 지붕처럼. 그 아래 몸들은 삼각형을 이루며 대지 위에 살며시 눌려 있다</summary>
  </entry>
  <entry>
    <title>Cells: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 모나 하툼 Mona Hatoum</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3" />
    <id>https://brunch.co.kr/@@i5qA/403</id>
    <updated>2026-04-25T00:00:15Z</updated>
    <published>2026-04-25T00: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시장 벽면에 적힌 모나 하툼 Mona Hatoum의 작품 설명은 지나치게 단정하고, 거의 무표정하다. 그러나 그 건조한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놓인 것은 더 이상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amp;lsquo;보호&amp;rsquo;와 &amp;lsquo;통제&amp;rsquo;라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힘들이 맞물린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상태, 그 자체에 가깝다. 작품 Cells는 철제 캐비닛 안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ygAjgpZ6JLPflDWuZM2Tj1VJMls.jp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 법</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2" />
    <id>https://brunch.co.kr/@@i5qA/402</id>
    <updated>2026-04-24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4-24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본다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보았다. 그 사이에 생각을 밀어 넣었다.  우리는 이름을 먼저 안다. 이름이 시선을 막는다. 사물은 이미 규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 규정을 볼 뿐, 사물 자체를 보기 전에.  그래서 그는 어긋나게 만들었다. 기울고, 과장되고, 윤곽을 지웠다. 오류가 아니라 멈추게 하려고. 판단을 조금만 늦추어 진</summary>
  </entry>
  <entry>
    <title>빈 분리파를 떠나다 - 소속되지 않는 예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1" />
    <id>https://brunch.co.kr/@@i5qA/381</id>
    <updated>2026-04-24T00:00:07Z</updated>
    <published>2026-04-24T00: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0년, 에곤 쉴레는 결정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더 이상 빈 분리파의 보호 아래 머물지 않는다. 〈누드 자화상〉은 이 이탈을 선언하는 이미지다. 이 그림에서 그는 스승도, 그룹도, 양식도 뒤로 밀어두고 오직 자신의 몸 하나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자화상에서 장식은 완전히 사라진다. 구스타프 클림트에게서 배웠던 패턴과 보호막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CC_fsEPxMwPqPZcy4iHWwIQOrMc.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형태에 대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1" />
    <id>https://brunch.co.kr/@@i5qA/401</id>
    <updated>2026-04-23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4-23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계는 너무 크다. 그래서 그는 작게 나누었다. 폭력이 아니라, 오래 보기 위해.  수직과 곡선과 덩어리. 이것들이 자연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견딜 수 있게 했다. 흩어지지 않기 위해 그는 형태를 붙잡았다.  너무 잘 아는 것 앞에서 그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익숙함은 쉬움이 아니다. 익숙함은 가장 정교한 오해의 이름이다.  그는 자연을 계산하지 않았</summary>
  </entry>
  <entry>
    <title>클림트를 만나다 - 장식의 보호막</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80" />
    <id>https://brunch.co.kr/@@i5qA/380</id>
    <updated>2026-04-23T00:00:07Z</updated>
    <published>2026-04-23T00: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1910년, 에곤 쉴레에게 구스타프 클림트는 스승이자 방패였다. 이 초상은 존경의 기록이면서도, 두 미학 사이의 거리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쉴레는 클림트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는 그를 &amp;lsquo;보호막을 두른 인물&amp;rsquo;로 포착한다.  초상 속 클림트는 장식적 옷감에 둘러싸여 있다. 반복되는 패턴은 인체의 윤곽을 흐리고, 몸의 무게를 표면으로 분산시킨다. 얼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eV8apWfczGydmWXJv7rD6684gJc.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같은 것을 평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400" />
    <id>https://brunch.co.kr/@@i5qA/400</id>
    <updated>2026-04-22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4-22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는 새로운 것을 찾지 않았다.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 이름을 그는 수십 번 불렀다. 소리 내어서가 아니라, 손으로.  익숙한 것을 가장 쉽게 오해한다. 그래서 그는 다시 보았다. 또다시. 빛이 바뀌고, 밀도가 달라지고, 리듬이 새로워질 때마다 그것은 조금씩 다른 얼굴로 거기 있었다.  세계는 하나의 진리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summary>
  </entry>
  <entry>
    <title>아카데미의 천재 - 너무 이른 완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79" />
    <id>https://brunch.co.kr/@@i5qA/379</id>
    <updated>2026-04-22T00:00:08Z</updated>
    <published>2026-04-22T00: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07년, 에곤 쉴레는 빈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amp;lsquo;천재&amp;rsquo;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화상〉은 그 평가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인체 비례에 대한 이해, 명암의 구축, 선의 통제력&amp;mdash;모든 것이 이미 높은 완성도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쉴레는 너무 이르게 완성되어 있었다.  이 자화상에서 얼굴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성되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5qA%2Fimage%2FNNNiK55DU18dlSCpmahpxhlGYBU.jpe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거리에 대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i5qA/399" />
    <id>https://brunch.co.kr/@@i5qA/399</id>
    <updated>2026-04-21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4-21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는 아내를 수십 번 그렸다. 그러나 한 번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색은 장식이 아니었다. 드레스와 벽이 서로를 밀어내며 균형이라는 이름의 침묵을 만들었다. 얼굴은 표정 대신 색으로만 남아 있었다. 윤곽은 닫히지 않았고, 경계는 부드럽게 흔들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는 더 멀리 물러섰다. 사적인 것이 화면을 지배하지 않도록. 감정이 형태를 왜곡하지</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