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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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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연주하며 듣고, 듣는 방식에 대해 씁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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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1T10:36:4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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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듣는 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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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9T09:38:30Z</updated>
    <published>2026-04-19T09:38:30Z</published>
    <summary type="html">내면을 본다. 나를 뒤돌아 본다. 나를 들여다본다. 스스로를 마주한다.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대신  말을 듣는다.  내가 나에게 묻고 그때 할 수 있는 대답을 듣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기쁜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대답이 되어 내 안에서 계속 들린다.  그래서 그 시간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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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실에서는 - 일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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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0T13:17:53Z</updated>
    <published>2026-04-17T15:25: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줄리어드의 입구는 여러 번 바뀌었다. 건물은 훨씬 소박했다.      하지만 4층 연습실 복도는 아직도 선명하다.       창문 쪽에는 두터운 초록색 벨벳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인기척에 벨벳 결이 잠깐 들렸다가 다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복도 어딘가에서는 늘 thirds 스케일이 들렸다.  어디선가는 첼로의 낮은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Bvt%2Fimage%2FdIAz15R2tFny1WT7EvRD57NOG1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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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엇을 듣고 있는지 모른다 - 문제는 내용이 아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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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8T02:53:07Z</updated>
    <published>2026-04-17T15:00: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수업을 듣고 있지만, 무엇을 듣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는 말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그러면 어른은 말한다. 미리 읽고 가라고.  하지만 문제는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데 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의 반복은 익숙함만 남길 뿐 이해를 만들지 않는다.  음악에도 커리큘럼이 있다. 팔레스트리나의 코랄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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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 바그너 Parsif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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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4T15:41:23Z</updated>
    <published>2026-04-14T15:14: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줄리어드 첫해, 대학교 1학년.  Met 라 불리던 링컨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Parsifal을 보았다. 네 시간을 훌쩍 넘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고, 라이브로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연주는 단단했고, 나는 조용히 극장을 나왔다.  다음 주 뉴욕 타임스에 리뷰가 실렸다. 예상보다 훨씬 혹독한 평이었다.  길고, 지루하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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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러 아다지에토 - 그는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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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3:58:02Z</updated>
    <published>2026-04-13T03:58:0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는 올라가지 않았다. 말러의 아다지에토처럼.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흔히 사랑의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악장은 현과 하프만으로 연주된다. 나머지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에 남아, 연주하지 않은 채 그것을 듣는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한 발 물러난 상태로 머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소설 순수의 시대의 한 순간과 닮아 있다. 바다와 수평선이 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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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활의 물리학 - 경계가 들리지 않는 움직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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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1T04:59:41Z</updated>
    <published>2026-04-11T04:59:41Z</published>
    <summary type="html">골프를 보면 알 수 있다. 360도를 휘두르는 구기 종목은 골프뿐이다.  손가락 관절은 그립에 닿아 있지만 쥐고 있지는 않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flexibility가 필요하다.  바이올린 활도 비슷하다.  우리는 다운 활과 업 활을 나누어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활은 그 경계가 들리지 않는다.  다운 활에서 업 활로 넘어갈 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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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It happens -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남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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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15:08:01Z</updated>
    <published>2026-04-10T15:08: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주를 오래 하다 보면 잘 된 연주보다 무사히 끝난 연주가 더 많이 남는다.  돌아와 오늘 참 좋았다고 느끼는 날은 거의 없다. 대신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순간들이다.  이상하게도 연주자 인생은 그런 날들로 선명해진다.  KBS '한국의 음악가' 시리즈 음반 녹음실. 비발디 [사계] '여름'을 녹음하던 날이었다.  폰티첼로를 끝까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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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 우리는 충분히 듣고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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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5:02:27Z</updated>
    <published>2026-04-10T05:02: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행은 하나의 장면으로 충분해진다. 전부를 기억하지 않아도 단 한 순간이 오래 남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눈의 도움 없이, 단지 1초나 2초의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사람을 조금 바꾼다.  음악은 과거의 소리가 아니라 지금 다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래서 연습은 그 문들을 하나씩 닫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가능성은 버려지고 어떤 선택만이 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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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끝에 0을 떼면 - 계단까지 내려온 공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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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06:24:19Z</updated>
    <published>2026-04-09T06:06: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슈만 탄생 200주년이던 해였다. 우리는 그의 실내악곡 전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트리오, 피아노, 클라리넷 소나타, 가곡, 클라라 슈만의 곡까지.  그 기획은 노블레스 잡지 명재열 대표님이 후원해 주셨다. 잡지 2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곡은 우리가 정했고, 연주자도 우리가 정했다. 그쪽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은 것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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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눈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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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06:52:49Z</updated>
    <published>2026-04-09T05:18:45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학교 3학년이었다. 공부하러 멀리 왔으니 그런 단어를 붙일 여유도 없었다. 그게 왔다. 온 줄도 몰랐다. 조금 지나서야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로비로 내려와 &amp;quot;센트럴파크 가자&amp;quot;고 했다. 또 어떤 날은 &amp;quot;여름 캠프 같이 가자&amp;quot;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이상해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친구의 성화에 서울에서 뉴욕으로 돌아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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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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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7T15:13:24Z</updated>
    <published>2026-04-07T15:13:24Z</published>
    <summary type="html">물 끓는 시간이 아까와 돌아와 연습한다.  파스타 면 삶는 시간이 아까와 돌아와 연습한다.  먹는 시간이 아까와 뛰다 파스타를 엎는다.  바닥의 파스타가 내 속박을 풀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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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일 - 연주는 반복 속에서 자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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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7T15:08:24Z</updated>
    <published>2026-04-07T15:08: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주 투어는 몸으로 버티는 일이다.  십팔일의 투어를 두 번 했다.  첫 연주가 지나면 연주가 달라진다.  셋째쯤 되면 연주가 스스로 자란다.  귀도 열린다.  매번 같은 곡.  그래서 연주가 변한다.  연주 다음 날 새벽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탄다.  도착하면 시간이 남는다.  레만 호수를 걷고, 아일랜드 들판에서 감자를 굽고, 푸른 도나우강 하구를 세르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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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초의 레슨 - 연주는 멈추고, 사람은 이어간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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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3T15:08:49Z</updated>
    <published>2026-04-03T15:08: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주가 멈추는 순간이 있다.  버팀은 다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어린 시절 무대를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였다. 하던 대로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그 안정감을 믿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날의 2초가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예중 입학시험을 치러보려고 결심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빠른 나이는 아니었다. 성실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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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대 위의 오 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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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1T15:10:20Z</updated>
    <published>2026-03-31T15:1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국제 교류재단 초청으로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 메인강당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  하늘은 터키석 색이 돌 정도로 파랬고, 유엔 빌딩 앞 의자 모양의 거대한 조각이 이상하게 신비로운 날이었다.  유엔 강당은 전문 공연장이 아니어서 출연자 대기실이 따로 없었다.  스무 명 남짓한 우리는 뒤편 회의실에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방 안에는 꺾어다 놓은 들꽃이 화사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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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케스트라는 포메이션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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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1T08:44:22Z</updated>
    <published>2026-03-31T08:08: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속노화 열풍을 일으킨 한 교수가 운동과 음악을 오래된 취미로 꼽으며 말했다. 연주할 때의 기쁨이 논문을 끝내고 러닝을 할 때와 비슷하다고.  음악과 운동은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넓은 시야와 타이밍, 공간을 읽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축구와 오케스트라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챔버 오케스트라는 11명에서 많게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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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You are crazy - 연주 전이면 생각나는 얼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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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1T04:32:25Z</updated>
    <published>2026-03-31T04:32: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주 전이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연주자도 그렇다. 아무리 오래 연주해도 몸이 먼저 긴장해 버리는 날이 있다.  학생일 때 읽었던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카네기홀에 연주하러 가는 날, 지나가던 택시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 정도 커리어면 무대로 가는 길 쯤은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의외의 고백이었다.  그만큼의 커리어는 아니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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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분의 음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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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0T07:26:59Z</updated>
    <published>2026-03-30T07:26:5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어떻게 그렇게 많은 원고를 다 읽느냐&amp;quot;는 질문에 한 기획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몇 페이지 안에서 아니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 레슨 장면이 떠올랐다.  Covid 시기였다. 박사 과정을 오디션을 준비하던 제자가 곡 전체를 모른 채 들어왔다. 도입부 몇 장만 연주하고 나머지는 &amp;quot;아직&amp;quot;이라고 했다.  전체를 알아야 첫 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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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 김남윤 교수님을 기억하며 - 몸과 마음을 다하여 될 때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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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8T03:09:54Z</updated>
    <published>2026-03-28T02:02:27Z</published>
    <summary type="html">몇 달 전, 스승 고 김남윤 교수님의 부군 별세 소식을 들었다. 먼저 떠나신 선생님은 분당 추모공원에 안치되어 계셨는데, 이 번에 서울 국립현충원으로 함께 안장된다고 했다.  3년 전, 선생님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물 외벽에는 큰 현수막이 걸렸다. 환하게 웃는 선생님의 사진 아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될 때까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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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 질문, 민어탕 - 이미 충분한 것 안에서 살아가는 감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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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7T08:24:55Z</updated>
    <published>2026-03-27T08:24: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뉴욕에서 오래 살았다. 그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았고, 그만큼 오래된 친구들이 그곳에 남았다.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 그중 한 명이 서울에 왔다.  우리는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날 광장은 '오징어 게임' 행사 준비로 통제 중이었고, 나는 늦을 것 같아 남대문을 지나 신을 갈아 신고 뛰기 시작했다.  &amp;quot;역시 명상을 하려면 뛰어야지.&amp;quot;  그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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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데이터가 아니었던 것들 - 왜 어떤 경험은 데이터로 취급되지 않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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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6T13:17:44Z</updated>
    <published>2026-03-26T13:01: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이미 충분히 축적해 왔다. 다만 그것을 데이터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골목의 저녁은 같은 시간에 오지만 같은 소리로 오지 않는다. 비슷한 냄새가 나지만 같은 기억을 데려오지 않는다.  소리는 귀로 들어온다. 그러나 남는 방식은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색으로, 어떤 날은 손끝의 압력으로. 하나의 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옮겨갈 때 그 안에는 이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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