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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침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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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인생의 나침반</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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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01T02:19:5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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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_03 - 멈추지 않는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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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6T12:02:31Z</updated>
    <published>2026-01-26T12:02:31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공부_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  하루하루 충실히 살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다.    이 챕터의 소제목은 사실 '그 어떤 좋은 것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연속된 선택을 통해 우리, 나 자신이 만들어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선택을 해야 좋은 선택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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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_02 - 흔들리지 않는 중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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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5T07:52:37Z</updated>
    <published>2026-01-05T07:52:37Z</published>
    <summary type="html">충_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다  격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배움을 즐거워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격. 격이란 무엇일까? 격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배움을 즐거워한다. 라는 문장이 이 책의 첫 번째 챕터이며 첫 구절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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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_01 - 나를 바로 세우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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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2T01:39:36Z</updated>
    <published>2026-01-02T01:39:36Z</published>
    <summary type="html">'충'이란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서'란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할 수 없다.  일의 시작과 끝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 일을 시작할 때도, 일을 마무리 지을 때도 정성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공자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남들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고, 인한 자는 남들이 나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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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6 - 나의 기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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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3T10:46:43Z</updated>
    <published>2025-12-03T10:46: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신의 기질을 받아들여라   사람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다르다. 행복과 불행이 순간순간 주관적으로 규정된다면 민감한 성격의 사람은 고통을 더 크게 느낄 것이고, 느긋한 성격의 사람은 고통을 덜 느낄 것이다. 성격은 그 사람의 '됨됨이'이자 그릇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과 고난만 준다고 하였다. 그럼 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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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5 - 반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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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1T10:17:39Z</updated>
    <published>2025-12-01T10:17:39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든 다르게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 절망하게 된다.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다시 반복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제약 사항들, 예를 들어 폭행, 살인 등 악하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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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4 - 존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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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8T02:39:24Z</updated>
    <published>2025-11-28T02:39:2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다. 단순히 오래 산다는 기준으로 존경을 받는다면 인간보다 더 오래 산 동물이 더 많이 존경받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쉬운 것 같다. 그저 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저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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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3 - 말의 무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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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6T05:32:55Z</updated>
    <published>2025-11-26T05:32: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남보다 우월하게 보이려는 허세를 분별력 있게 통제하려면 말보다 침묵이 더 낫다. 말은 '일시적인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침묵은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상대방이 나를 쉽게 믿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해야 생각과 말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말. 참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  말은 내뱉기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쉽게 내뱉은 말은 주워 담기가 어렵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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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_12 - 일체유심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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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5T03:59:58Z</updated>
    <published>2025-11-25T03:59:58Z</published>
    <summary type="html">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우리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즉 일체유심조이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또 마야의 베일로는 세계의 본질을 알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의지이며, 우리는 의지가 드러난 표상만을 세계로 인식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우리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라고 한다면, 유튜브에서 떠들어대던 끌어당김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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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1 - 죽음의 필연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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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4T08:01:21Z</updated>
    <published>2025-11-24T08:01: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죽음의 필연성을 통해 인간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만약 인간이 이 우주에서 본질을 이루는 존재라면 죽음으로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우주의 하찮은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을 '만화경'에 비유한다. 인생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늘 같은 요소를 갖고 있다. 그 인생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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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10 - 예의라는 가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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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0T08:41:47Z</updated>
    <published>2025-11-20T08:41:47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예의라는 가면이 필요하다. 위선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식적인 예의가 무례함보다 낫기 때문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가면'이 필요하고 그런 태도가 오랫동안 반복되면 좋은 습관이 된다.      나는 돌아보면 항상 어느 집단에 있던 중상위권을 웃돌았다. 하여, 어렸던 나는 다들 나보다 못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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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9 - 타인이라는 거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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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9T02:09:49Z</updated>
    <published>2025-11-19T02:09:49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인에게 엄격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도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타인의 외모나 행동에 대해 나름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남을 책잡는 자는 자신의 개선에 힘쓰게 되는 셈이다. 타인의 결점을 비난하고 싶다면 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의 결점을 찾아내 개선할 수 있어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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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_08 - 타인의 견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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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8T03:09:34Z</updated>
    <published>2025-11-18T03:09:34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인의 견해를 중요시해 끊임없이 그것에 신경 쓰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런 노력이 무의미하고 실속 없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amp;quot;허영심은 부나 지위, 세력이나 권력으로 타인을 능가해 존경받으려는 마음이거나, 같은 속물 가운데 걸출한 사람과 교제해 그의 후광을 즐기려는 마음&amp;quot;이라고 말한다.      타인, 나 이외의 다른 주변 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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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7 - 타인의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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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4T10:09:15Z</updated>
    <published>2025-11-14T10:09:15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 오롯이 나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고, 확고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행동도 자연스러워진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하면서 사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내면에서 한없이 그것에 얽매여있는 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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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6 - 타인의 견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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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2T03:49:28Z</updated>
    <published>2025-11-12T03:4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인의 태도에 대한 이런 관심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광기 또는 선천적인 광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할 때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의 견해에 늘 신경을 쓴다. 되짚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염려하고 불안을 느낀 것의 절반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상처받고 병적으로 민감한 모든 자존심의 밑바닥에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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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5 - 자신의 가치 신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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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1T03:27:28Z</updated>
    <published>2025-11-11T03:27:28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인의 비난으로 자신의 명예에 손상이 갔다고 느낀다면 대개 명예를 되찾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타인의 비난을 의연히 무시할 것이며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가해지지도 않은 상처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피로써 보복해 명예의 원칙을 지키려는 것은 어리석다. 명예 회복을 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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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4 - 인생의 돌멩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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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0T14:39:27Z</updated>
    <published>2025-11-10T14:39: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중요하지 않은 일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거나 마음에 담아 두거나 곱씹지 말고 &amp;quot;길 앞에 있는 돌멩이처럼 내던져 버려야 한다&amp;quot;라고 충고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돌을 멀리하거나 내던져 버려야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리게 된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당사자에겐 큰일이라 여겨지는 일도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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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3 - 인간의 우울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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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0T14:44:25Z</updated>
    <published>2025-11-09T22:41: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리스토텔레스는 &amp;quot;철학이든 정치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탁월한 인간은 모두 우울한 것 같다&amp;quot;라고 말했다. 탁월하고 뛰어난 인간은 너무 예민하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다.    우울함은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감기 같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우울증은 분명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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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2 - 삶에 대한 고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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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0T14:43:30Z</updated>
    <published>2025-11-09T06:29: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삶을 지나치게 미워하지도 과하게 사랑하지도 말라. 착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상을 받든 벌을 받든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결코 다르지 않다. 생명을 연장하면서까지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빨리 생을 끝내는 것이 최상도 아니다. 신조차도 나의 죽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삶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인간은 열망하던 것</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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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_01 - 후회에 대한 고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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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0T14:41:41Z</updated>
    <published>2025-11-09T00:11:48Z</published>
    <summary type="html">후회는 지난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생겨난다. 과거를 너무 크게 확대해 생각하면 후회도 커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너진 희망으로 인한 상심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덧없이 흘려보낸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현명하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할 필요도 없다. 후회와 불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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