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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오십년대소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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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1939년생 어머니가 지역 글쓰기 강좌에서 쓰신 회고록을 딸이 올립니다.1940~50년대 소녀 시절 서울 북촌 가족의 삶과 풍속, 전쟁과 피난지 풍경을 글로 남깁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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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23:50:4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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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아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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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5T08:00:01Z</updated>
    <published>2026-04-05T08: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은 세대별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제 나이 또래분들은 임○웅이나 송▢인의 팬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아이돌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청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목 &amp;lsquo;나아소&amp;rsquo;는 &amp;lsquo;나의 아이돌을 소개합니다&amp;rsquo;를 줄여서 표현한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섹시한 김◎한, 귀여운 성◇빈.  벌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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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등이 굽은 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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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9T08:00:02Z</updated>
    <published>2026-03-29T08: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육십여 년 전, 내가 신임교사로 갓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범학교 성적이 나빠서 졸업하고 6개월을 쉬었다. 그러다 어느 교사가 3개월 다니다 사직한 국민학교 자리에 발령이 났다. 버스를 오래 타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서 도착했다. 그 마을은 버스가 하루 한 번 다니는 오지였고, 밤에는 집마다 등잔불로 어둠을 밝히는 곳이었다. 학교는 발전기를 돌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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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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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6T09:33:02Z</updated>
    <published>2026-03-22T08: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교 정신을 본받아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며 사셨다.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효자였다. 반면 아버지는 유교 정신에서 벗어나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다 가르치셨다. 우리 형제자매는 직업도 다양하다. 그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에게 친절한 아버지는 절대 아니었다.  생김새는 바짝 마르고 성정도 까칠하고 혹</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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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골련(궐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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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5T12:17:12Z</updated>
    <published>2026-03-15T08: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머니께서는 시집오시고 나서부터 속앓이가 생겨서 담배를 피우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시집오신 이후, 서울집에는 대가족이 살았다.  조부모님, 부모님, 나의 고모님과 사촌언니, 나와 언니들, 시골에서 올라와 대학 다니는 사촌오빠들 네다섯 명, 또 누구누구 다 합해서 열여덟 명은 보통이었다.  그 많은 식구의 밥 짓기, 빨래하기 등은 집에 식모를 둔 것도 아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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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담바위 고개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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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8T08:50:20Z</updated>
    <published>2026-03-08T08:0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외삼촌 따라 담바위 고개 넘어 국민학교 다닐 때의 후반기 이야기다.       가을 접어들어 중학교 갈 아이들의 시험공부가 시작되었다. 정규시간이 끝나면 당직실 안방에서 국가고시라는 책으로 공부하였다. 중학교 갈 아이들은 남학생 세 명, 여학생 한 명이었다. 당직실 앉은뱅이책상 네 면을 한 명씩 차지하고 앉았다. 담임선생님이 국가고시 책 몇 장까지 다 풀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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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담바위 고개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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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1T10:00:06Z</updated>
    <published>2026-03-01T10: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6.25 피난 시절 국민학교 2년을 쉬어서 4, 5학년을 다니지 못했다. 그런데도 국민학교 6학년으로 편입되었다.  둘째 외삼촌은 면의 고급 공무원이었는데 차를 타는 게 아니라 담바위 고개를 걸어 넘어 출퇴근하였다. 그래서 큰외삼촌 자녀 둘, 둘째 외삼촌 자녀 둘, 내 동생과 나, 성별로는 여자애 둘, 남자애 네 명이 둘째 외삼촌을 따라 담바위 고개를 넘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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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물장수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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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2T10:00:03Z</updated>
    <published>2026-02-22T10: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방물장수 두 내외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가면 하루해가 다 갔다.  어머니는 방물장수에게서 여러 반찬거리를 샀다. 조기, 동태, 북어, 멸치, 오징어 등등 우리 아버지가 네발 달린 짐승고기를 통 안 잡수셨기 때문이다. 원래 방물장수는 화장품이나 장식품 같은 걸 팔지만, 우리 어머니가 부탁해서 특별히 우리집엔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우리집은 바다에서 거리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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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물장수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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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8T06:38:52Z</updated>
    <published>2026-02-18T06:38: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 집은 시골로 피난 가서 정착하였다.  그때 우리 동네에 오는 방물장수가 있었다. 방물장수 부부가 여러 가지 물건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얼마에 한 번씩 왔다. 방물장수는 우리 집 넓은 마루에 짐을 내려놓았다. 우리 집은 동네 우물가에 있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물을 길어서 이고 오가는 길목이었다. 우리 집에 방물장수가 온 걸 본 아주머니들은 동네 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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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친할머니 외할머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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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5T11:45:23Z</updated>
    <published>2026-02-15T10: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두 조모님을 함께 겪은 시절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6.25 피난 시절 두 할머니는 한집에 살았다. 외갓집으로 피난 갔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안방에, 친할머니는 건넌방에 기거하셨다. 두 분은 성격과 생활방식이 반대였다. 공통점은 하나, 장죽에 담배 피우시던 것이다.  친할머니 소개부터 하면 얌전하신 용모에 성격이 온유하시고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으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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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일장(九日葬)과 순대의 추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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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8T10:09:56Z</updated>
    <published>2026-02-08T10: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시골로 피난 오셔서도 한의원을 계속하셨다.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 할아버지께서 89세로 돌아가셨다. 운명하실 때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이 놀란다고 옆 동네 외갓집으로 보내셨다.      잠시 후 언덕 위에서 &amp;lsquo;□산 ○ 씨, 복! 복! 복!&amp;rsquo;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곡소리가 났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니 대문 밖 상 위에 쌀 주발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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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토리나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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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6T23:00:14Z</updated>
    <published>2026-02-06T23: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린 시절 시골 뒷산의 도토리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다.  6.25 사변으로 충청도 두메산골 외갓집으로 피난 갔다. 그 동네 이름은 &amp;lsquo;붉은 바위&amp;rsquo;. 옛날에는 그곳 산에 암자가 있었는데, 스님이 바위에 수건을 널어 말린다고 &amp;lsquo;불건바위&amp;rsquo;였다고 한다. 세월이 &amp;lsquo;붉은 바위&amp;rsquo;로 바꾸어 놨다고 한다.  외갓집 바로 뒷산인 붉은 바위 산에는 도토리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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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멍의 추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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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1T10:00:03Z</updated>
    <published>2026-02-01T10: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 가족은 외갓집이 있는 곳으로 피난을 갔다.  외갓집은 건넌방과 사랑방에 군불을 지폈다. 외숙모는 집안일이 바빴는지 군불 때는 일에 나와 내 남동생을 눈치껏 부려 먹었다. 큰 아궁이에 장작을 태우며 그 위에 금방 베어온 청솔가지와 콩깍지, 볏짚단을 덤으로 땐다. 군불 지피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청솔가지 타는 소리는 타다닥 타다닥</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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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타작 아침 풍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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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31T01:57:41Z</updated>
    <published>2026-01-30T05:30:37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연히 단원 김홍도의 &amp;lsquo;벼 타작&amp;rsquo;이라는 풍속화를 보았다. 웃통 벗은 일꾼들이 열심히 벼를 털고, 갓 쓴 양반이 멍석 깔고 누워 장죽을 물고 감시하고 있다. 그 옆에 술병도 있는 게 그럴듯하다. 그림을 보자니 어린 시절 잠시 살던 외갓집 벼 타작하던 날 아침이 떠오른다.  &amp;lsquo;와랑 와랑&amp;rsquo; 소리와 함께, 동녘이 밝아오기 전 아슴푸레한 새벽부터 타작이 시작되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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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큰어머니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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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5T10:00:10Z</updated>
    <published>2026-01-25T10: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시흥 관악산 쪽에 살 때의 이야기이다. 큰댁은 시흥 읍소재지에 살고, 우리는 산 중턱에 살았다.  큰어머니는 12남매를 낳았고, 우리 어머니는 5남매를 낳았다. 명절에 큰댁에 모이면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가끔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언니들이 &amp;ldquo;영□가 안 보여요.&amp;rdquo; 하면 &amp;ldquo;홍역하다 죽었대.&amp;rdquo; 하고 누군가 대답하고, 또 다음 해에 &amp;ldquo;영△, 영◎가 안 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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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겪은 6.25사변 (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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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4T00:25:22Z</updated>
    <published>2026-01-24T00:25:22Z</published>
    <summary type="html">북한군을 기억에 넣기도 전에 우리 국군과 연합군이 전진하였다. 우리 집은 이번엔 국군과 연합군의 사무실이 되었다. 연합군은 우리 가축이나 식량을 빼앗지 않고, 단지 큰 가마솥에 물만 끓여달라고 했다. 그 솥에 각종 통조림을 통째로 넣어 데워서 따 먹었다. 어렸던 우리는 국군은 반가웠지만, 연합군은 무서웠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들은 통조림과 쬬코렛</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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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겪은 6.25 사변(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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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8T09:14:51Z</updated>
    <published>2026-01-18T09:14: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린 시절에 겪었고, 세월이 많이 흘러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세월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는 일들이 있어서 맥락 없이 써보겠다.  우리 가족이 관악산 아래 시흥에 이사 와서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북한군이 내려와 피난을 못갔다.  제일 기억에 남은 일이 있다. 어느 날, 고모님과 집에 오는데 잡곡 밭에서 신음이 났다. 고모님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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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넷째 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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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4T07:23:31Z</updated>
    <published>2026-01-14T07:23:31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울 북촌에 살 때 우리집 식구 중엔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시골에 사는 사촌오빠들도 데려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르치셨다. 우리 아버지 바로 밑의 동생인 넷째 아버지는 최고 대학을 다니며 국문학을 전공하셨다. 그 당시 나는 서너 살이고, 밤낮으로 우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넷째 아버지는 검은 망토 교복을 입고 나가다 나를 안고, &amp;ldquo;올 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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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할아버지 이야기 - (2) 한약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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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1-14T07:19:57Z</published>
    <summary type="html">할아버지는 한의원이셨다. 자라면서 한의학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한양으로 가는 길을 택해서, 작두로 약재 써는 일부터 배우셨단다. 약국을 차리고 봉지봉지 약재를 담아서 천장부터 벽에까지 주렁주렁 걸어놓고 한약국을 시작하셨단다. 손님이나 환자가 늘었고, 단골에는 유명인사도 있었다. 국회의원이셨던 신OO 씨가 일요일마다 약국에 놀러 오셨다. 오실 때 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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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할아버지 이야기 - (1) 두렁치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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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4T07:13:26Z</updated>
    <published>2026-01-14T07:13:26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러분, 두렁치마를 아시나요? 우리가 자랄 때 옷 타령을 하면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앉혀놓고 옷에 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중에 두렁치마란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어릴 때 너무 가난하여 여남은(열 살 넘은) 때까지 두렁치마를 입으셨다고 합니다. 인터넷 사전에서 두렁치마의 뜻을 살펴보니 &amp;lsquo;아기의 배와 하체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둘러주었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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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릉 빨래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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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4T07:10:19Z</updated>
    <published>2026-01-14T07:1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금부터 80년 전 명륜동에 살던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서너 살 때 덜커덩덜커덩 소달구지를 타고 가던 일이 나이 들어 문득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제 나이만 하실 때 여쭤보았지요. 어머니는 영특하신 머리로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셨습니다. 저희 식구는 조부모님, 부모님, 숙부와 숙모님, 고모님, 시골에 살다가 서울에 있는 학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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