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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의 사유 공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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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삶의 건조함을 죄책감이 아닌 '사유의 질서'로 삼기로 했습니다. 직선의 문장으로 삶의 비루함을 해부하며, 실존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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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6T05:39:2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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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왕과 사는 남자 -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 하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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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3T09:37:40Z</updated>
    <published>2026-03-13T08:28: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랜만에 천만 관객의 영화가 탄생했다. 어린 왕 단종과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준 엄흥도의 이야기다. 굳이 보지 않아도 이미 결말을 다 그려낼 수 있는 이 뻔한 서사가 천만 명의 발길을 불러 모은 것은, 분명 배우들의 호연과 감독의 연출력이 가진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익숙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다시금 동요한 이유는, 그가 지키고자 한 가치가 이제는 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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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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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3T00:41:15Z</updated>
    <published>2026-03-02T14:35:01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여자의 얼굴은, 창문에 비친 저녁 풍경 속을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와 풍경은, 마치 동화 속의 환상처럼 서로 겹쳐졌다....  거울에 비친 그 얼굴은,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저녁의 불빛 속을 떠도는 실체 없는 영혼과도 같았다.&amp;quot; 주인공 시마무라는 창유리라는 틀을 통해 요코를 바라본다.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며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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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지함이 우스워진 시대의 노스탤지어  - 다시 고전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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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6T16:15:23Z</updated>
    <published>2026-02-16T16:14: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냉소'가 멋있음의 척도가 되고, '진지함'이 굴욕이 되는 시대.. 무언가를 깊이 사유하고 진지하게 응시하거나, 삶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묻는 행위는 '오글거림'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난도질당한다. 깊이 고뇌하는 시간은 '생산성 없는 낭비'로 치부되고, &amp;quot;적당히 즐겁게 살자&amp;quot;는 태도가 유일한 정답인 양 군림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두렵기 때문이다. 진지해지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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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0대를 위한 변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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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9T14:56:41Z</updated>
    <published>2026-02-09T12:08:2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에게 40대 이상, 특히 중년 남성은 늘 불편함의 대상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 조직의 리더 대부분이 남성이었기에 그 불쾌한 리더십의 투사체가 그들이었을 뿐, 이 글은 성별의 차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회 초년생이 그 윗세대의 리더십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막상 그 세대가 되고 나서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소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조직이 한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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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덕성 없는 공포는 무력하다&amp;quot; - by  Maximilien Robespi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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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2T09:29:33Z</updated>
    <published>2026-02-02T07:12:57Z</published>
    <summary type="html">로베스피에르에게 공포는 혁명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도구'였으나, 그것은 결국 그의 목에 칼날을 드리웠다.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던 '공포(Terreur)'는 서늘한 긴장감과 숭고한 질서를 전제로 하였다. 그는 평생을  금욕주의자로 살았고 많은 이들을 처형했을지언정 그것이 공화주의에 대한 맹종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은 상대를 압도하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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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대 밖의 관조자 -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이방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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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6T08:42:11Z</updated>
    <published>2026-01-26T07:59:2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살면서 한 번도 제도권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 곡선은 나이가 들면서 햐향곡선을 그리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 본 적은 없다. 제도권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다는 건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뜻하기도 하다. 고등학교까지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학하였고 그 후엔 내 역량에 따라 소속되는 조직이 결정되었다.  나는 늘 어딘가에 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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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른 잔치는 끝났다.. 그 후 15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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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1T04:58:15Z</updated>
    <published>2026-01-21T04:58: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확히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워킹맘으로 나름 치열한 30대를 보내는 나에게 저 시의 첫 구절이 가슴에 콱 박혔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에게는 애초에 끝낼 잔치도, 즐길 축제도 없었음을. 축제는 끝나고 잔치상을 정리하며 그러나 그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묻는 시인의 질문은 &amp;nbsp;이제는 숙제만 남아있는 앞으로의 인생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란 말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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