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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로각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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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jeongrogaksi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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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경직된 공학박사, 글만 쓰는 건축가의 일상, 건축, 도시 기록</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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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1T01:05:5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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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 건축과 1세대 건축가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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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2T01:35:57Z</updated>
    <published>2026-04-22T01:35:57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국 근대건축의 태동  지난 글에서 한국 건축의 근대기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글에서 한국 건축, 한국의 근현대 건축의 실질적인 시작을 일본 강점 중기인 1925년~1940년 사이로 보았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한국의 근현대 건축은 없었거나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까? 나는 개화기와 일본 강점 초기의 시대 상황과 건축 환경을 순수한 한국 건축의 태동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zYxb8QpREqvjRYhvzxz5Jo_4pQ0.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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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식 2 (단련하기)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3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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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8T22:19:42Z</updated>
    <published>2026-04-18T22:19:42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의식은 지식으로 단련되어야 한다&amp;quot;  참 좋은 말인 것 같아 예전에 메모해 놓은 문장이다. 누가 한 말이냐고? 데커드 케인이 한 말이다. 데커드 케인이 누구냐고? 게임에 나오는 NPC(Non-Player Character)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디지털 온라인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에 의해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닌 프로그램 상의 캐릭터를 뜻한다. 게임 내에서는 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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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위기의 한국 건축 - 침체와 격변, 선택과 도태의 귀로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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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21:47:36Z</updated>
    <published>2026-04-17T08:57: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위기의 한국 건축, 사유의 시작   글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표현하였다. 제목이 건축인의 관심을 끈다면 현재의 한국 건축은 위기에 처한 상태일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아직 한국 건축은 할 만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위기는 건축 시장의 위축, 건축계의 침체 등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건축의 위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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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서 4 (와 잡념)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3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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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21:49:22Z</updated>
    <published>2026-04-15T21:49:22Z</published>
    <summary type="html">책을 읽을 때 가장 힘든 것이 집중력 저하이다.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와 같은 부류의 책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철학, 정치경제, 사회학과 같은 난해한 책들을 읽다 보면 내용이 어려워 집중이 흐트러지기 일쑤이다.  본인의 능력 문제일 수도 있으며, 또는 번역의 난해함 때문일 경우도 있다. 둘 다 일 수도 있고 천성이 돌머리라 그럴 수도 있다. 여하튼 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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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연의 경계와) 언어유희 3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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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21:14:20Z</updated>
    <published>2026-04-13T21:01: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외연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었다. 외연(外延)은 한자어로 사전적으로 개념이 가진 '포괄적 범위'의 의미이며, 철학적 의미로는 개념이 실제로 적용되는 '모든 대상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사람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보통사람,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놈, 망할 놈, 죽일 놈 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모두는 사람이라는 외연에 내포된 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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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 건축의 근대기는 무사한가?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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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8:05:04Z</updated>
    <published>2026-04-13T08:05: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역사건축의 존폐 문제  얼마 전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건축 답사와 기록을 하면서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 특히 전문가들의 입장을 살펴볼 때, 전통 건축의 계승에 대한 옳고 그름의&amp;nbsp;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을 뿐이지, 역사적 건축의 존폐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별로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S987VxcCEs2GYnz6l-3DPha5HTM.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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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도된) 의식 1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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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01:25:32Z</updated>
    <published>2026-04-12T01:25:32Z</published>
    <summary type="html">단테가 그의 영적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둘러봤다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살아있을 때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고통을 받고 있다던 지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단테가 그토록 사모하였던 베아트리체가 그를 맞이한 천국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인가?  천국과 지옥은 꼭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가? 단테는 죽지 않고도 이들 세계를 경험했듯이, 대상의 실체를 인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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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벽의) 반성 5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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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21:07:22Z</updated>
    <published>2026-04-10T21:07:22Z</published>
    <summary type="html">구름 한 점 없던 새벽하늘에 갑자기 짙은 구름 하나가 나타나 막 떠오르는 태양을 가렸다.  눈부신 태양아래 꺼져가던 어두운 미명이 다시금 퍼져나간다.  아침이 밤을 밀어내는 순간이 잠시 주춤하니 아직 아침이 올&amp;nbsp;때가 아닌가 보다.  밤이 길어지는 것은 내 죄가 크기 때문이리라.  버리지 않은 죄가 크다. 침묵한 죄가 더 크다. 사랑하지 않은 죄가 가장&amp;nbsp;크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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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민하는) 시대정신 5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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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1:33:18Z</updated>
    <published>2026-04-10T01:33: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 뒤에 감춰진 잔혹성'이라는 분석. 이 충격적인 사회적 모순을 이해시키기에 과연 설득력이 충분한가? 문제의 현상이 아닌 본질을 통쾌하게 관통할 만한 예리함을 갖춘 분석인가? 문제의 크기, 무게, 깊이를 명료하게 드러내줄 수 있는 판단인가?  문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이것이, 사건의 동기나 원인이 특정 한 인간만이 아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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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의 소멸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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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22:40:33Z</updated>
    <published>2026-03-25T02:39:47Z</published>
    <summary type="html">'건축의 완성은 소멸이다. 소멸의 결과는 건축이 존재하면서 획득한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난 글 &amp;lt;건축의 완성&amp;gt;을&amp;nbsp;마무리 지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은 완성과 소멸이 상반된 개념으로 논리학적으로 의미가 분명한 명제가 될 수 없다. 이&amp;nbsp;문장은 대립된 개념의 충돌로 인해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의미가&amp;nbsp;다소 불분명한 이유는 글에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DE3xf2Top4yaKQoAMY6P3XT94V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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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설픈) 정치편향 1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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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3T05:21:07Z</updated>
    <published>2026-03-23T05:21:0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뭇잎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린다고 해서 본질이 감춰지거나 순수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더 자극하고 불필요한 상상력만 키워낼 뿐이다.  바위로 계란을 친다고 해서 천만년을 버텨온 바위가 상처를 입거나 흔들리거나 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자극은 바위에 세월의 훈장만 만들어 줄 뿐이다.  하나의 도덕적 기준이 두 개의 이념에 통용될 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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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의 완성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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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3T20:32:01Z</updated>
    <published>2026-03-21T04:39: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술의 완성과 미완성  완성과 미완성, 그 차이는 어디일까? 기술과학에서는 완성이란 설계된 바대로 결과가 마무리되었을 때 완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나 문학 등에서도 계획된 바대로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완성이라 할 수 있는가? 일부는 완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부는 아닐 수 있다. 창작 분야에서는 계획과 결과물의 일치보다도 작가의 창작 의도와 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5r1BVCq7DqpS9seFvSTAt1XAKVs"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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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쓰기) 반성 4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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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7T09:55:01Z</updated>
    <published>2026-03-17T09:55:01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말을 할 줄 알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고,  글을 쓸 줄 알면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은 하는데 글을 못 쓰면 주워들은 말이고,  글은 쓰는데 말을 못 하면 베낀 글이다.  나는 여전히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내 글은 다 베낀 글인가 보다.  2.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흘러넘치듯이,  머리에 지식이 쌓이고 쌓여 가득 차면 저절로 넘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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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리츠커상 우리는 왜 안되나?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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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7T23:59:11Z</updated>
    <published>2026-03-16T02:52:59Z</published>
    <summary type="html">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며칠 전 2026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원래는 3월 초에 발표되는데 올해는 조금 늦어졌다. 내부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는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크로아티아계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Smiljan Radic Clarke, 60)가 수상하였다. 일단 건축인으로써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zgm5B-ItMLT9eI2gVLd_4CE6cr0.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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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의 창조적 사고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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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7T02:09:17Z</updated>
    <published>2026-03-15T01:54:03Z</published>
    <summary type="html">건축에서 '창조적 사고' 아직도 유효한가?   건축뿐만 아니라, 창작적 행위가 요구되는 디자인 분야 전체를 살펴보면 항상 강조되는 용어가 몇몇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용어는 바로 '창조성' 또는 '창조적 사고'와 같은 용어일 것이다. 앞선 디자인에 관련된 글들에서도 이 창조성과 창조적 사고에 대해서 언급하였지만, 딱히 이것이 창조성이고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JO9P0HSpcCu_7KV9gqE_RloeGe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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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복 따윈 개나 줘 버린) 시대정신 4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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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4T02:50:12Z</updated>
    <published>2026-03-14T01:52:31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지지 못한 자들의 삶이 이토록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면, 가진 자들의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못 견디게 행복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가진 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거나 행복해하지 못하는가? 그들의 모습에선 만족과 행복의 모습을 읽어 낼 수가 없다. 못 가져 부족하고 행복하지 못해 오는 고통이 이 정도라면 다 가진 자들의 행복은 뭔가 특별하게 달라야 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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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성 1(적 불만)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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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1T23:02:31Z</updated>
    <published>2026-03-11T23:02:31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늘 아침은 커피가 쓰다.   누가 그랬다.  고통의 원인은 과거에 있고 불안의 원인은 미래에 있으니, 현재에 집중하면 고통과 불안은 극복될 수 있다고.  근데 현재 자체가 문제 덩어리이니, 문제의 근원이 된 과거의 죄책감에 고통스럽고 당연히 현재의 문제가 가져올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지금의 꼴이 그렇다.  과거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을 동시에 현전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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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념'의 개념 잡기 - 건축사유 : 땅과 사람의 교감 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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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1T11:43:03Z</updated>
    <published>2026-03-10T21:33:54Z</published>
    <summary type="html">건축디자인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생각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두 가지 방법은 나의 생각이다. 하나는 예술적 디자인의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목적적 디자인의 방법이다. 전자를 건축의 예술적 또는 미학적 가치를 본질로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법이라 한다면, 후자는 건축의 합목적적 본질을 가치로 하여 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tiM%2Fimage%2FTkujy0qLc6RIfX54eMLMmEgP9F4.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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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번역서) 독서 3(의 어려움)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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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9T22:09:40Z</updated>
    <published>2026-03-09T22:09: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양사람들은 글을 쓸 때 동어반복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아니 거의 광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쓸 때 같은 의미지만 다른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동양사람들은 동어반복에 대한 거부감은 그리 크지 않다. 반복이 차라리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지시하는 바에 더 집중하도록 하기도 한다.   많은 번역서들이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유의어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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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식이와 싸우는) 의지 1 -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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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8T22:00:24Z</updated>
    <published>2026-03-08T22:00: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상식 밖의 일들이 상식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상식은 내 삶의 범위이자 사고의 한계이다. 이 범위와 한계는 나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런데 이 범위 밖에 존재하는 상식들이 내 상식의 울타리를 넘본다. 그건 내 상식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는 건지? 내가 변하는 건지?  어려서는 지식이 좁고 물정을 몰라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없었다. 그냥 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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