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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승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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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불편하지만 불쾌하지 않은글을 추구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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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0T09:15:3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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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8. 자아와 존중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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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4T01:22:27Z</updated>
    <published>2026-04-04T01:22: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는 오랫동안 왜 존중이라는 것이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지 고민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중이 조용히 무너진 지점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 공감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중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챕터 3 에서 언급했듯 공감은 거의 반사 작용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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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7. 광기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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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7T21:24:33Z</updated>
    <published>2026-03-27T21:24: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글은 이전 에세이인 『정의라는 환상, 희생이라는 실존 그리고 이기적인 존중』에서 다룬 통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 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도록 쓰였지만, 앞선 논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어떤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경하거나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이 글이 적대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의지하던 익숙한 이해의 출입</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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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6. 우울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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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1T04:20:13Z</updated>
    <published>2026-03-21T04:2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울의 중심 정서는 '상실'입니다. 이 말은 자주 인용되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묻지 않습니다. 우울에서 말하는 상실은 단순히 사람 한 명, 관계 하나, 혹은 실패 한 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나로 설명해 주던 중심, 즉 더 깊은 층위의 구조적 상실을 의미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우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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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5. 기대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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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9T07:03:11Z</updated>
    <published>2026-03-19T07:03: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전에 설득에 관해 기술하며, 저는 실망이란 결국 어떤 기대를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반응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이 자칫 &amp;ldquo;그렇다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amp;rdquo;라는 오해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amp;ldquo;기대를 낮추면 마음이 편해진다&amp;rdquo;, &amp;ldquo;누구에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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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상에 도움이되는 질문 몇가지 - 자신과 조금 더 친해지기 위한 질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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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4T12:29:07Z</updated>
    <published>2026-03-14T12:29: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신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진입 전 알림]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를 대체하기 위한 시도가 아닙니다.다만 경제적&amp;middot;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상담을 시도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작은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쓰였습니다. 이 글의 대상은 분명합니다.자기혐오나 불안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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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4. 설득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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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4T05:24:35Z</updated>
    <published>2026-03-14T05:24: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안내문]&amp;nbsp;이 글에는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amp;lsquo;우상(idol)&amp;rsquo;이라는 용어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숭배 대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이 불안을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amp;lsquo;심리적 기제&amp;rsquo;를 뜻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의는 이전 장(챕터 3. 불안, 공감, 그리고 우상숭배)에서 다루었으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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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3. 불안, 공감, 그리고 우상숭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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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2T09:02:56Z</updated>
    <published>2026-03-12T09:02:56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 : 감정의 원래 구조 인간은 공감을 통해 살아남습니다. 내 팔이 베였을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은 팔 자체가 아닙니다. 통증 신호는 뇌의 섬엽(insula)과 전대상피질(ACC)로 전달되고, 비로소 뇌가 &amp;ldquo;나는 아프다&amp;rdquo;라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직관이 아닙니다. 2003년 파르마 대학교의 자코모 리졸라티(Giacomo</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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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2. 불안을 이해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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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7T02:39:31Z</updated>
    <published>2026-03-07T02:39:3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종종 불안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행복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곤 합니다. 마치 불안이 인간 설계의 결함이며, 그 결함을 수선한 뒤에야 행복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삶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동시에 훨씬 더 관대합니다. 요리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도, 수만 번 칼을 잡은 숙련된 셰프도 칼을 손에 쥐는 순간만큼은 미세한 불안을 느낍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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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 - 출생, 고통, 그리고 책임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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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5T23:17:26Z</updated>
    <published>2026-03-05T23:17:2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베나타(David Benatar)는 그의 책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Better Never to Have Been)』에서 매우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존재일까. 베나타의 주장은 단순한 비관주의가 아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를 통해 출생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의 핵심 논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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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챕터 1. 행복이란, 정말 무엇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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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4T14:10:05Z</updated>
    <published>2026-03-04T14:1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행의 그늘에 갇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박한 삶 속에서도 깊은 감사와 만족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극명한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우리는 종종 행복을 외부의 인정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물론 타인의 인정이 행복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행복의 최소 조건이 될 수는 없</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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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휘력의 빈곤, 단어가 아니라 &amp;lsquo;나&amp;rsquo;를 잃어버린 증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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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3T22:39:48Z</updated>
    <published>2026-03-03T22:39:48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글은 아이와 조금 더 잘 이야기하고 싶은 부모님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 가지 방식으로 풀어 썼습니다. 1부는 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졌는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는 글이고, 2부는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이야기입니다.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1부 : 생각의 언어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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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동을 당하는 우리가 명심해야할 몇 가지 - 어느 선동꾼의 고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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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1T23:11:25Z</updated>
    <published>2026-03-01T23:11: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주의:&amp;nbsp;이 글은 이미 삶의 지지대가 무너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우상을 의심하는 일은 자유로움이 아니라 공허를 먼저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질문이 아니라 회복이나 휴식이라면, 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질문은 언제나 가능해야 하지만, 언제나 지금일 필요는 없다.  1. 인간은 선동을 당할 수밖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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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언어의 한계를 느낀 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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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1T02:55:40Z</updated>
    <published>2026-03-01T02:54:46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족과 외출을 했다.먼 길을 떠나기 전 서둘러 준비하느라 아침 식사를 거른 채 집을 나섰고, 우리는 곧 첫째 아이의 배고프다는 투정을 들어야 했다.아침을 차릴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차에 오른 뒤 김밥집에서 김밥을 포장하기로 했다.배고프다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를 보며 우리는 생각보다 넉넉하게 주문했다.그런데 아이는 김밥을 조금 먹더니 말했다.이제 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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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국은 없다 - 짧지만 긴 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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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7T22:00:11Z</updated>
    <published>2026-02-27T22:00: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천국은 없다 천국이 존재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갈등이 없다는 뜻이다.  갈등이 없다는 것은  모든 욕망이 완벽하게 충족된다는 뜻이다.  모든 욕망이 충족된다면,  나는 과연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일까? 천국은 있다 갈등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  우리는 타협할 수 있으니까.  타협은 어렵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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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민주주의여야만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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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6T22:00:23Z</updated>
    <published>2026-02-26T22:00: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들이 거리로 나설 때,모든 구호를 압도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amp;ldquo;민주주의를 수호하자!&amp;rdquo; 우리는 거의 본능처럼 그 단어를 외친다.그러나 정작 이렇게 묻는 일은 드물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리고 우리는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  1.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 군중이 아니라 책임지는 시민 demos라는 단어는 단순히 &amp;ldquo;사람들&amp;rdquo;을 뜻하지 않는다. 고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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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의라는 환상, 희생이라는 실존 그리고 이기적인 존중 - 마이클 샌델의&amp;nbsp;『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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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6T00:24:20Z</updated>
    <published>2026-02-26T00:24:20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나는 마이클 샌델의 책을 좋아한다 &amp;mdash; 그가 결론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샌델은 끊임없이 독자에게 사례를 제시한다. 트롤리 문제, 장기 시장, 대리모, 병역 기피, 능력주의.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이 순간, 무엇이 옳은가? 우리가 답하려는 순간, 익숙한 기준들이 소환된다. 다수결, 효율성, 자유, 효용, 무지의 베일. 샌델은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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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해성사 - self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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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5T02:43:38Z</updated>
    <published>2026-02-25T00:31:43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를 안다는 것의 의미 나를 안다는 건 나 자신을 마주 보았다는 뜻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울을 본다는 건 마음에 드는 얼굴만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피하고 싶었던 표정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일에 가깝다. 나는 나를 알게 되면서 대단한 사람을 발견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때로는 비겁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 사실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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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름 붙인 모든 것은 허구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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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5T02:43:12Z</updated>
    <published>2026-02-24T16:19:30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생명에게 생존은 허구가 아니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는다. 이 문장은 신념이 아니라 관찰이다. 생존은 의미도, 선택도 아니다. 그것은 작동 조건이다. 생명은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남으려 하지 않는다. 살아남도록 이미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동물은 &amp;ldquo;왜 살아야 하는가&amp;rdquo;를 묻지 않는다. 그 질문은 생존이라는 구조 밖에 있다. 생존은 설명되지 않는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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