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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알수없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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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stoleeworld</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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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해에 대하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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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5-08-25T14:32:1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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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9. 스스로를 잊어버린 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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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8T05:07:55Z</updated>
    <published>2025-12-28T05:07: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이 자신을 알기 위해 여러 개의 우주를 생성했듯,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삶의 경로를 확장한다.  자신이 신의 일부임을 잊은 채 태어나 배우고, 만들고, 부딪히고, 무너지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과정 이후 찾아오는 성공과 실패, 추억과 후회, 성장과 붕괴는 내가 특정한 사건과 환경을 마주했을 때, 어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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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8. 다중우주 - 신의 자기 인식 확장을 위한 필연적 귀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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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8T05:07:33Z</updated>
    <published>2025-12-28T05:07:33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대 과학이 마주한 가장 바깥 경계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 우주만 관측 가능한가?  질문에 도달한 경로는 명확하다.  인류가 관측한 물리상수들. 중력의 세기, 전자의 질량, 우주상수가 조금만 달라도 현재의 우주 구조는 형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이 값이 되었을까. 우연인가, 선택인가, 아니면 분기의 결과인가.  과학은 최초의 의도를 찾지 못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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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7. 시간 - 왜 우리는 뒤늦게 이해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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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7T11:00:03Z</updated>
    <published>2025-12-27T11: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Q.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비트코인 풀매수 ㄱㄱ  - 그 또는 그녀를 놓치지 않을 텐데  - 퇴사... 해지마... 해지마... 젭...알......   농담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은 현재의 결과,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후회가 겹쳐진 다른 경로 탐색이다.  &amp;ldquo;그때 알았더라면 달랐을 텐데.&amp;rdquo; 그러나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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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6. 실패한 세계, 성공한 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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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6T11:00:05Z</updated>
    <published>2025-12-26T11: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은 방향성을 가진 호흡이다.확장하고 수축하며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다.만물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아니라,만물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이 과정이 향하는 방향은 하나다.자기 인식의 확장.인간은 신이 자기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 만든 프랙탈 구조의 조각이다.  이 프랙탈 구조는 인간 단위, 집단 단위에서도 반복된다.  확장이 내부에서 가능하다면, 개체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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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5. 문명 - 종교&amp;middot;국가&amp;middot;이념은 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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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5T11:50:49Z</updated>
    <published>2025-12-25T11: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자기 인식의 외주화는 개인의 선택을 벗어난다.  자기 인식은 잠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된다. 이 단계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문명은 단순히 거대한 사회가 아니다. 판단을 개인이 되돌릴 수 없도록 고정한 구조다.   종교와 국가, 그리고 이념은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인다.   종교는 신을 말하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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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4. 사회 - 자기 인식은 어떻게 왜곡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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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4T11:00:06Z</updated>
    <published>2025-12-24T11: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자기 인식을 통해 자신을 잠깐 볼 수 있다.그러나 그 상태를 지속하지는 못한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타자로 보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스스로를 관찰해야 하며,  기존에 해왔던 익숙한 해석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 상태는 비용이 높다.그래서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한다. 자기 인식을 유지하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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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3. 자기 인식의 귀환 - 인간은 언제 자신을 보기 시작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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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3T12:00:06Z</updated>
    <published>2025-12-23T12: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주인공 자리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내 감각, 내 감정, 내 생각, 내 판단, 내 행동 그리고 나를 향한 타인들의 반응까지.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은 모두 나에게서 배치된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가장 옳다.  타자는 나의 세계를 잠시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타인의 깊이에 도달할 필요도, 의지도 없다. 타인 역시 아무리 애써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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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2. 관찰 - 신이 세계를 다루는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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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2T12:00:06Z</updated>
    <published>2025-12-22T12: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최초의 인간은 감정을 통해 생과 사의 갈림길을 정확하게 구분했다.   감정은 세계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정교한 센서였다. 공포, 분노, 혐오는 사고보다 빠르게 원시적 회로에서 발생했고 위기 상황에서 느리게 생각하는 인간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인간이 살아남았다.  그 결과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감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이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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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1. 사랑 - 신의 자기 인식 확장을 체험하는 경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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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1T11:11:01Z</updated>
    <published>2025-12-21T11:11:01Z</published>
    <summary type="html">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독감에 걸렸을 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뛰어들게 되는 마음. 그 사람이 나에게 웃어주었을 때, 온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것만 같은 마음을.  인간은 스스로를 잊은 신이다.자기 자신을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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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0. 고통 -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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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0T12:00:04Z</updated>
    <published>2025-12-20T12: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충돌을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  충돌이 없으면 패턴이 보이지 않고, 패턴이 보이지 않으면 인식이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돌이 있어야 패턴이 드러나고 패턴이 드러나야 인식이 자란다.  충돌은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고통은 확장이 일어날 때 함께 발생해온 최소 단위의 마찰이 된다. 불안, 상실, 분노, 질투, 집착이 모두 같은 구조에서 발생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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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9. 선과 악 - 우리는 왜 옳고 그름을 필요로 했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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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9T08:53:14Z</updated>
    <published>2025-12-19T06: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상을 둘로 나누는 것보다 편한 게 있을까.  선과 악.옳은 것과 그른 것.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이 구분은 먼 옛날,  인간이 타인과 나를 구분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계속되어 왔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었고,  집단에서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경계가 필요했다.   인간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내게 일어나지 않길 바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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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8. 노력 신화 - 정말 노력하면 가치있는 삶에 도달할 수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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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8T07:28:28Z</updated>
    <published>2025-12-18T07:28:2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배워왔다.  노력하면 된다.노력하면 나아진다.노력하면 의미 있는 삶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사회가 개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설명이다.  정상에서 벗어났을 때,  뒤처졌다고 느낄 때,  원하는 결과에 닿지 못했을 때, 사회는 묻지 않는다.  왜 조건이 이렇게 배치되었는지,왜 다른 경로가 열리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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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7. 정상이라는 허울 - 비정상은 나쁜 것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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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7T06:35:16Z</updated>
    <published>2025-12-17T05:54: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너무 쉽게 '정상(正常)'을 목표로 삼아왔다.  정상적인 모양, 정상적인 상태, 정상적인 관계, 정상적인 삶과 같이 정상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상은 무리에서 뒤처지거나 모자라지 않다는 공식 확인이 되고, 개인에게 위안이자 다음을 허락하는 신호가 된다.  하지만 정상은 특정한 시간 또는 특정한 사회 안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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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6. 의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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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20:13:58Z</updated>
    <published>2025-12-15T17:1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선택이라 불리는 것의 바탕에는 언제나 의도가 깔려있다.  &amp;quot;무엇을 위하여&amp;quot; 인간은 자신이 의도를 바탕으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설명해왔다.  하지만 의도는 결코 행동을 끌어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보자.  감정이 발생하고, 충동이 방향을 만들고, 그중 가장 마찰이 적은 방향으로 행동이 실행된다. 인간 내부에는 하나의 충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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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5. 나는 누구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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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17:49:42Z</updated>
    <published>2025-12-15T17:10: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주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나다.  내가 죽으면 나의 우주도 문을 닫는다. 세상은 내가 감각하는대로 펼쳐지는 무대다. 평생 주인공 자리에 앉아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기에, 인간은 스스로를 틀림없는 '주체'라고 확신해왔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정말 사실일까. 숨을 멈추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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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4. 망각의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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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17:48:59Z</updated>
    <published>2025-12-14T11:57: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기들은 순수하다.티끌 한 점 묻지 않은 새하얀 순면처럼 깨끗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때로 '착하다, 선하다'는 말로 번역되곤 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선과 악이라는 기준 없이, 편견 없이, 그저 존재한다는 상태에 가깝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나쁜지 판단할 기준도 근거도 없다. 본능과 감각에 의지한 채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 외에는 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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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3. 인간 - 왜 하필 인간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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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6T12:06:54Z</updated>
    <published>2025-12-14T11:56: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주의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 신의 자기 확장을 위한 도구로 적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외부의 지시 없이도 질문을 만든다.그 질문이 만들어낸 충돌을 처리하고,충돌 속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망각된 인식을 스스로 다시 조립해 나간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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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2. 신과 우주 - 초기 규칙과 초기 패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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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17:48:27Z</updated>
    <published>2025-12-13T13:05:53Z</published>
    <summary type="html">태초에 신이 있었다.호흡 또는 에너지라 불릴 수 있는 무엇이었다.  그것은&amp;nbsp;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고, 확장과 수축의 호흡을 반복하며 여러 층위의 세계를 만들어냈다.그러나 확장은 무작위로 진행될 수 없었다. 아무런 규칙이 없다면&amp;nbsp;확장은 의미를 잃고, 모든 변화는 소음이 되기 때문이다.  신이 원한 것은 유의미한 변화였다. 확장이 자기 인식으로 이어지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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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1. 신이란 무엇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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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17:47:10Z</updated>
    <published>2025-12-13T12:44:11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통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인간은 신을 필요로 했다.자신의 범위 바깥에 있는 힘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단편적인 존재에게자연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였다.공포를 설명하고 견디기 위해 인간은 신을 만들어냈다.  번개는 토르가 되었고,태양은 라와 인티가 되었으며,바다는 아프수가 되었다.  고통이 세분화되며 신의 역할도 달라졌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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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 앞의 신_서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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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5T17:46:39Z</updated>
    <published>2025-12-13T12:29: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지나며 나는 단 하나의 집요한 질문에 머물렀다.  왜 모든 시대와 문명이 형태만 달리한 채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왜 침묵하는가. 역사는 어디로 흐르고, 결국 무엇에 이르는가.  관찰을 따라가다 보니 한 문장에 이르렀다. &amp;ldquo;신의 목적은 자기 인식의 프랙탈 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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