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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피디아</title>
    <link>https://brunch.co.kr/@@hMnC</link>
    <description>프사는 이래도 생각은 진심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05 May 2026 01:29:2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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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사는 이래도 생각은 진심입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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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때리지 않는 사회는 과연 더 인간적인가 - 체벌과 함께 사라진 '포기하지 않는 스승'</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9</link>
      <description>매가 사라진 빈자리,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 교실에서 매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그림이다. 나 역시 과거 매를 드는 교사였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세상은 바뀌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고 체벌 금지는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적 진보다. 학생의 절대적인 신체권을 보호하고 교실에서 폭력을 몰아내는 것</description>
      <pubDate>Mon, 23 Mar 2026 11:00:11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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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워터폴은 적폐, 애자일은 유토피아? - 애자일이라는 낭만, 워터폴의 숨겨진 매력</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8</link>
      <description>나는 평소 비디오 게임을 즐겨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게임은 화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이다. 그런 게임들은 으레 개발 과정에서 수백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자되고, 그 개발 과정도 화두에 오르게 된다. 결국 자연스럽게 개발자들의 인터뷰나 분석 기사 등을 챙겨보게 되는데, 그곳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낯선 용어들이 있다. 바로 '애자일(Agile)'이다.</description>
      <pubDate>Thu, 19 Mar 2026 13:40:52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48</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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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신이라는 사회적 낙인 -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가</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7</link>
      <description>신상 공개와 댓글창의 낙인, 그리고 캔슬 컬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지른 인물의 신상이 공개될 때, 대중의 시선이 날카롭게 향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있는가에 대한 여부이다. 기사 댓글창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김없이 &amp;quot;문신은 과학이다&amp;quot;, &amp;quot;문신한 사람은 거르면 된다&amp;quot;는 식의 조롱과 낙인이 쏟아진다. 나아가 &amp;quot;문</description>
      <pubDate>Sat, 14 Mar 2026 11:49:02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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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는 제국의 아편인가, 약자들의 전복인가 - 가장 신본주의적인 종교의 기묘한 구조</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6</link>
      <description>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위에서 아래로 (Top-Down) 역사적으로 종교는 지배층의 가장 훌륭한 통치 도구였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바벨론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하거나 신의 유일한 대리자로 자처하며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amp;lsquo;제정일치&amp;rsquo;를 완성했다. 이들 고대 제국 종교의 본질은 철저히 &amp;lsquo;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한 순응의 도덕&amp;rsquo;이었다. 피지배층의 고통과 복종</description>
      <pubDate>Fri, 13 Mar 2026 12:43:34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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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터번을 두른 마키아벨리 - 시아파 정통성의 빈곤과 이란 신정 체제의 구조</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5</link>
      <description>Ⅰ. 검은 터번의 의미, 종교적 정통성의 시각적 정당화 혹시 이란 최고 지도자나 수뇌부의 사진이나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터번 색깔을 한번 살펴보자. 보통 검정색이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우리가 보는 일반인들의 터번의 색깔은 주로 흰 색이다. 어째서 그들의 터번은 검은 색일까? 시아파 세계에서 검은 터번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핏줄(세이드)을</description>
      <pubDate>Thu, 12 Mar 2026 10:00:11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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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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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미, 유전자, 그리고 '나'라는 착각의 결과물 - 우리는 단 한 번도 온전한 주체였던 적이 없다</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4</link>
      <description>여왕개미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발밑을 바쁘게 오가는 개미들을 열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은 생물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의례적인 성장과정의 한 단계이니까. 그들은 자기 몸집의 수십 배나 되는 먹이를 협동해서 옮기고, 완벽한 환기 시스템을 갖춘 지하 도시를 건설하며, 외적이 침입하면 목숨을 바쳐 싸우고, 희생한다.  이 거</description>
      <pubDate>Sun, 08 Mar 2026 13:14:42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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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 민중이라는 알리바이를 넘어</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3</link>
      <description>나는 '삼국지'라는 세계를 애정한다. 소설의 비장함도, 게임의 전략도 좋아한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amp;quot;역사란 영웅이 만드는가? 아니면 민중이 만드는가?&amp;quot;  정확한 문장은 잊혔으나, 그 질문의 무게만큼은 여전하다. 고전 소설인 삼국지는 역사를 철저히 '영웅'의 서사로 기술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설'이며, 인물이</description>
      <pubDate>Fri, 06 Feb 2026 01:00:25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4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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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거짓말할 권리는 있는가 - 칸트에서 책임국가까지</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2</link>
      <description>당신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가 당신의 집에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그리고 당신에게 요청한다.&amp;quot;살인자가 나를 쫓고있어! 나를 숨겨줘!&amp;quot;당신은 친구를 당신의 집 화장실에 숨겨주었다.잠시 뒤, 어떤 사람이(누가 봐도 살인자의 행색을 한) 당신에게 묻는다. &amp;quot;방금 나는 어떤 사람을 쫓고 있었다. 혹시, 당신이 그를 숨겨주었는가? 숨&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MnC%2Fimage%2FNb67kviZWvMGoD-R2ssrsAwu0-Y.jfif"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Mon, 05 Jan 2026 09:00:12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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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폐허 위에서 잇는 국체(國體) - 백제와 남송, 그리고 한국인의 저항 DNA</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1</link>
      <description>1.&amp;nbsp;붕괴가 가져온 위계의 재편, 수직에서 수평으로  고대 한일 관계(백제-왜)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철저히 '지배냐, 피지배냐'라는 수직적 프레임에 기반하고 있다. 고대 국가간의 역학 관계를 수직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직관적인 이해를 위한 단순화, 그리고 역사학자들 역시 '국민'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고대 백제와 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MnC%2Fimage%2FNGPHTdBAEo-37Dow-dcFtqm0_6o.jfif"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Wed, 10 Dec 2025 10:37:31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41</guid>
    </item>
    <item>
      <title>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인간에게는 배신처럼 보이는 신성의 초월</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40</link>
      <description>종교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이것이다. 가장 충직한 자조차, 구원의 도래 앞에서는 초월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 초월은 외부에서는 배신처럼 보인다. 공경받던 스승이 사라지고, 예언자는 잊히고, 그 자리를 누군가가 &amp;quot;넘어섬&amp;quot;으로만 진리가 시작된다.  이 글은 그 &amp;quot;넘어서야만 했던 한 인물&amp;quot; 즉 예수와 그 앞을 먼저 걸었던 세례자 요한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자</description>
      <pubDate>Sun, 16 Nov 2025 07:16:53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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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이라는 이름의 불공정 - 방송에는 인심, 나에겐 바가지</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9</link>
      <description>예능에서 연예인들이 재래시장에 가는 장면을 보면 훈훈하다. 상인들은 &amp;quot;이건 서비스야~&amp;quot; 하며 더 담아주고, 쭈뼛거리며 웃는 연예인들에겐 인심이 넘친다. &amp;quot;아이고, 저 연예인 누구야~ 실물이 훨씬 낫네~&amp;quot; 그날 시장은 촬영장이고, 정은 연출이 아니라 진짜 같아 보인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이상한 찝찝함이 남는다.  왜일까? 왜 우리 가족이, 혹은</description>
      <pubDate>Wed, 12 Nov 2025 11:13:46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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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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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쩌면 모든 믿음은 불가지론 아닐까? - 믿음의 본질. 알 수 없음과 실존적 선택</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7</link>
      <description>요즘 인터넷과 댓글들을 보면 종교에 대해 불가지론이니, 무신론이니 하는 말들이 많다. 특히 '불가지론'이라는 말은 거의 밈 수준이다. 요즘같이 팍팍하고, 살기 힘들고,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태에서, '불가지론'은 마치 생각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의 기본 소양처럼 여겨진다. 그 글과 댓글들을 보며 잠시 나 스스로의 종교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description>
      <pubDate>Sun, 09 Nov 2025 00:00:19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37</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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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과가 죄가 되는 사회</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6</link>
      <description>&amp;quot;죄송합니다.&amp;quot;  이 한마디가 법정에선 죄가 된다. 정확히는, 책임을 인정한 증거가 된다. 유감의 표현은 과실을 자백한 것으로 해석되고, 동정의 말은 법적 불이익의 증거로 쓰인다. 사과는 책임의 시인이 되었고, 우리는 사과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 역설은 단순한 말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법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법의 질서 안에서 도덕</description>
      <pubDate>Fri, 07 Nov 2025 10:51:49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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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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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Q와 니체 - 정신승리와 초인의 한 끗 차이</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5</link>
      <description>&amp;quot;아Q는 왜 초인이 아닌가?&amp;quot;  이 질문은 단순한 캐릭터 분석이 아니다. 이 문장은 도발이다. 이것은 문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행위의 해석과 도덕의 프레임을 전복하는 도발이다.   아Q의 정신승리: 회피인가, 생존인가 루쉰의 『아Q정전』 속 주인공 아Q는 반복되는 패배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정신승리'를 반복한다. 이 정신승리는 독자들에게 웃음과</description>
      <pubDate>Mon, 03 Nov 2025 11:00:13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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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누가 왕따를 만드는가 - 개인의 책임을 묻기 전에</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4</link>
      <description>&amp;quot;그 아이도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 아냐?&amp;quot;  왕따를 목격했을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실무적으로도 이런 접근과 분석이 먼저 이뤄진다. 당장 나도 그렇다. 이 말은 무언가 객관적인 분석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따돌림이라는 현상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말이다.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말은 얼핏보면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description>
      <pubDate>Thu, 30 Oct 2025 11:00:08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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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선제시는 불쾌한가 - 감정의 뒤에 숨어있는 가격 책정의 구조</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33</link>
      <description>나는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흔히 겪는 장면이 있다.(요즘은 거래소 덕분에 많이 줄어들었지만)  누군가 아이템을 판다고 채팅을 친다. 채팅을 읽은 한 유저가 이렇게 묻는다 &amp;quot;얼마에 파시나요?&amp;quot;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amp;quot;얼마 생각하시고 오셨어요?&amp;quot; 또는 &amp;quot;가격 제시해주세요.&amp;quot; 그러면 채팅창에는 욕이 쏟아진다. &amp;quot;지가 팔겠</description>
      <pubDate>Wed, 29 Oct 2025 11:00:11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33</guid>
    </item>
    <item>
      <title>1부를 마치며 - 저자의 변(辯): 1부에 숨겨둔 2부의 지도</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19</link>
      <description>독자 여러분,  1부의 여정은 어떠셨습니까? 식당의 진상 이야기, 게으름에 대한 저의 구질구질한 변명, 야구장에서 외쳤던 응원가까지. 어쩌면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1부의 모든 글 아래에 숨겨두었던 주춧돌과 개념들을 공개하려 합니다. 1부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 2부의 세계를 쌓기 위해 제가 독자 여러분의</description>
      <pubDate>Wed, 15 Oct 2025 12:00:05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19</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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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존재는 사실이지만, 그게 곧 중요한 건 아니다</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18</link>
      <description>우리는 앞선 글에서 과학과 종교, 그리고 언어, 철학이라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들이 가진 아이러니와 생각거리들을 살펴보았다. 이 모든 '앎'과 '믿음'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잡고 고민을 시작해야 할까? 이제 1부의 마지막 글을 통해, 이 모든 논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존재'에 대한 한 사람의 솔직한 반찬 투정을 들</description>
      <pubDate>Wed, 15 Oct 2025 11:00:04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18</guid>
    </item>
    <item>
      <title>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그러나 당신의 자유는 형벌이다.</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17</link>
      <description>칸트가 &amp;quot;물자체&amp;quot;를 설정하고, 니체가 &amp;quot;신은 죽었다&amp;quot;고 선언한 이후, 철학의 거대한 흐름은 영원한 이데아―그러니까, 형이상학을 의미한다―에서 땅 위의 구체적인 현실과 관계, 인간의 인식과 현상(인식론, 현상학)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회의는,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 흐름의 중심에 앞서 등장</description>
      <pubDate>Tue, 14 Oct 2025 11:00:04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17</guid>
    </item>
    <item>
      <title>지금, 여기, 영원을 긍정하라</title>
      <link>https://brunch.co.kr/@@hMnC/116</link>
      <description>우리는 바로 앞에서 니체의 난해함이 실은 그의 가장 깊은 '인간적인 투쟁'이었음을 엿보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난해함은, 그가 말하고 싶었던 했던 진실이 너무나도 위험했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안전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amp;quot;신은 죽었다&amp;quot;는 그의 가장 유명한 선언을 열쇠 삼아, 니체가 겹겹이 걸어 잠근 논리의 문을 열어보고자 한다.</description>
      <pubDate>Mon, 13 Oct 2025 11:00:08 GMT</pubDate>
      <author>피디아</author>
      <guid>https://brunch.co.kr/@@hMnC/116</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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