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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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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6 Apr 2026 15:12:3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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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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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구의 중첩, 복원은?</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6</link>
      <description>백제시대의 성인 가림성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다. 조선시대의 우물 유구가 확인되었고, 조금 아래에 고려시대에 사용된 얕은 우물이 확인되었다. 조금 옆으로 또다른 유구가 확인되어 발굴한 결과 백제시대로 확인되는 집수시설과 배수체계가 확인되었다. 거슬러 올라 백제시대에 성곽 내부에 큰 집수시설 즉 우물을 만들고 성밖으로 배수가 되도록 하여 성내의 물관리 시설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zT3lmlGGOwxyEgkg0AeWORFj-7o.pn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Mon, 22 Sep 2025 11:51:11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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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시대 한양도성 축성, 그 변화와 기술 3 - 영조 이후 도성의 연례적 수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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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영조 이후 도성의 연례적 수리  도성은 영조 때에도 지속적으로 수축되었다. 영조 19년(1743)에 각 군문에서 분담하여 허물어지는 대로 다시 수축할 것을 명하였고, 영조 21년(1745)에는 삼군문에서 지역 분담을 보고하였다. 숙정문(肅靖門) 동변 무사석에서 돈의문(敦義門) 북변까지 4천 8백 50보를 훈국(訓局)에 분수하고, 돈의문에서 광희문(光熙門)</description>
      <pubDate>Wed, 13 Aug 2025 00:26:58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guid>https://brunch.co.kr/@@hUeO/15</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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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시대 한양도성 축성, 그 변화와 기술2</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4</link>
      <description>숙종 때의 방어체계 변화에 따른 도성 정비  숙종 때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성 방어에 대한 의식이 고취되면서 도성 뿐 아니라, 북한산성의 축조 등 방위를 위한 논의가 있었다. 숙종 24년(1698) 4월 19일 궁성 및 도성 축조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20일에는 궁성과 도성의 무너진 곳을 삼군문에 명하여 수리하는 문제를 논하였다. 숙종 30&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DssKOhyUFtgI4Nz_ui9O7pB-bas.png" width="257" /&gt;</description>
      <pubDate>Mon, 04 Aug 2025 01:59:29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guid>https://brunch.co.kr/@@hUeO/14</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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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시대 한양도성 축성, 그 변화와 기술 1</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3</link>
      <description>조선시대의 성곽 축조는 한양도성이 대표적인 축성이었고, 태조 때의 성곽 축조, 세종때 재정비와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임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북한산성의 수리를 통해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체계를 갖추어 왔다. 이러한 성곽의 축조과정에서 축성기술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고,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도성 수축과 운영도 달라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M0CzLVjgj8USUsm1iieELroZgLs.png" width="206" /&gt;</description>
      <pubDate>Fri, 25 Jul 2025 01:57:32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guid>https://brunch.co.kr/@@hUeO/1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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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덕궁 취운정, 숙종과 장희빈이 사랑을 나눈 공간</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2</link>
      <description>숙종은 13세의 나이로 1674년 창덕궁의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숙종시기에는 서인과 남인의 정권 다툼이 극심하였고, 환국으로 수많은 대소신료가 사사되거나 숙청을 당하였다. 또한 숙종과 인현왕후 민씨, 희빈 장씨, 숙빈 최씨 등이 서로 얼킨 궁중의 복잡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취운정 건립도 이러한 시대 상황의 배경이 된 곳이다. 취운정 건립은 『궁궐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nWP1liv_GHZwpJ96G0EAI_cig2Q.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Fri, 18 Jul 2025 06:49:35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guid>https://brunch.co.kr/@@hUeO/12</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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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복궁 영건일기, 당대의 건축 공사일지</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1</link>
      <description>조선시대 건축에 대한 실상을 전하는 영건의궤가 많이 전하고 있다. 이러한 의궤는 자재조달, 소요처, 장인 명단 등을 충실하게 구성하였다. 그러나 공사가 끝난 시점에서 틀에 맞추어 형식적인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당대의 건축기술을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복궁 영건일기는 경복궁 중건공사가 있었던 1865년 4월 1일부터 1868년 7월 4</description>
      <pubDate>Wed, 16 Jul 2025 06:49:07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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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통건축물의 규모를 산정하는 간(間, 칸)</title>
      <link>https://brunch.co.kr/@@hUeO/10</link>
      <description>&amp;lsquo;초가삼간&amp;rsquo;은 초라한 건축물을 일컬을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지붕을 초가로 잇고, 건물의 크기는 3간으로 가운데 마루와 좌우에 방과 창고 또는 작은방이 있는 최소한의 살림집이다. 여기서의 간은 사방에 기둥이 있는 면적의 개념이다.  전통건축물의 크기를 말할 때 보통 정면 5칸, 측면 3칸이라 할 경우에는 길이의 개념이 적용된다. 정면의 기둥이 6개이고</description>
      <pubDate>Mon, 07 Jul 2025 01:39:44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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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람을 관측하는 돌에도 정성이,  풍기대</title>
      <link>https://brunch.co.kr/@@hUeO/9</link>
      <description>경복궁 수정전 옆에 긴 돌기둥이 하나 있다. 팔각기둥이고 통돌이다. 하부 단은 탁자 형식으로 사각이며 각 모서리에 다리를 각했다. 마치 중요한 물건을 울리기 위한 단처럼 만들었다. 그 상부에 올려진 팔각형 돌의 각 면에는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풍기대(風旗臺)이다. 상부 돌기둥 가운데 구멍을 파고, 그 곳에 깃발을 꽂도록 되어 있다. 그 깃대에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bbBClgoZsMO2och4ylzbJsFNz44.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hu, 03 Jul 2025 05:07:02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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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어시설인 성곽과 여장의 변화</title>
      <link>https://brunch.co.kr/@@hUeO/8</link>
      <description>성곽의 형태가 자연석(태조), 옥수수 알갱이과 같이 가공한 형태(세종), 반듯한 각형 가공의 석재로 쌓은 성곽(숙종 이후)의 형태가 함께 나타나고 있으며, 여장도 다른 형태가 함께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도성을 관리하기 위해 붕괴된 곳에 대한 부분 수리를 하면서 당시의 성곽쌓기 방식을 반영한 결과이다.  도성이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곽&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HmdZY9K07U9nDOfkZOVOOS6haNY.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24 Jun 2025 04:05:33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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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자의 거처와 업무공간 경복궁 동궁, 누가 사용했나?</title>
      <link>https://brunch.co.kr/@@hUeO/7</link>
      <description>동궁은 세자를 지칭하면서 세자의 거처인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복궁의 동궁은 조선초 경복궁을 조성할 때는 없었으며, 세종 때(1427) 동궁을 조성하였다. 다음 왕을 이을 후계자의 거처이자 강학과 경연 또는 섭정 등의 공간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임란 때 경복궁이 소실되기 전까지 경복궁의 동궁을 세자 신분으로 사용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세종 때의 세자</description>
      <pubDate>Mon, 23 Jun 2025 06:15:15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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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유산에 현대재료를 사용한 수리, 문제제기의 문제</title>
      <link>https://brunch.co.kr/@@hUeO/6</link>
      <description>얼마전 한 한 언론에서 &amp;lsquo;시멘트 사용으로 철학 없는 일제방식 답습, 벽체미장에 대나무와 석회 사용 등으로 전통재료가 아닌 것을 사용함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에 깃든 선조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amp;rsquo;고 문제제기 하였다. 시멘트가 일제 강점기의 답습이란 말은 맞지 않다. 일제 때 당시 최고의 재료는 시멘트였고 당시에 가장 적절한 재료가 시멘트라고 판단한 것이다.&amp;nbsp;&amp;nbsp;</description>
      <pubDate>Fri, 20 Jun 2025 04:27:37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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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궁궐, 성문의 지붕 장식기와, 잡상(雜像)</title>
      <link>https://brunch.co.kr/@@hUeO/5</link>
      <description>궁궐, 성문 등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 건축물의 지붕 추녀마루의 끝부분에 얹은 장식기와로 여러 신상(神像), 또는 수신(獸神)의 형태를 띤다. 대개 3~7개 정도의 홀수로 설치되며, 많게는 9개(창덕궁 인정전), 11개(경복궁 경회루)가 설치된다. *잡상의 수량은 홀수가 일반적으로 보이나 일부 짝수로 설치된 건물(경복궁 수정전 6개)도 있는데, 건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Ntj6b5QiT-PwTt98KynlXxOfUjI.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hu, 19 Jun 2025 02:00:18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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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기구한 운명 경복궁 해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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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 해치(獬豸)라고도 한다.&amp;nbsp;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도 간주되어 건축물에 장식되기도 한다.&amp;nbsp;&amp;nbsp;경복궁 광화문의 전면 육조거리에 있는 해태가 대표적이다. 이 해태가 광화문의 기구한 운명과 괘를 같이 하면서 여러차례 옮기어 다녔다. 광화문은 제 위치를 찾아 복원된 반면 해태는 아직도 원래의 위치에 가지 못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nN9RyzELV8XyDfGkaZpokyO2sAY.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Tue, 17 Jun 2025 01:16:08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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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붕 가장 높은 곳을 장식한 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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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영조법식(營造法式)에 치미(鴟尾)에 대한 기록있다. 한기(漢紀)에 백량전(柏梁殿)에 화재가 있은 후 월(越)의 무당이 말하기를 &amp;lsquo;바다속에 어규(魚虯)가 있는데 꼬리를 솔개(鴟)처럼 물결을 치니 비가 내렸다&amp;rsquo;고 하니 그 형상을 만들어 불의 재앙을 피하였다. 시인(峕人)이 간혹 치문(鴟吻&amp;lt;입술 문&amp;gt;)이라고 칭하는데 잘못된 것이다.&amp;nbsp;담빈록(譚賓錄)에 동해에 어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Tj-XlusxPQXQ9wRAly6w2rS315U.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Mon, 16 Jun 2025 05:49:28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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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말 고종의 정치와 외교활동  무대였던 집옥재</title>
      <link>https://brunch.co.kr/@@hUeO/2</link>
      <description>집옥재는 경복궁 북측 신무문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좌측부터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의 3개동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팔우정은 육각정자의 모습이고, 집옥재는 궁궐 내에 있으면서 중국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팔우정은 ㄱ자 형태로 전면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좌우는 다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종 28년(1891)에 창덕궁에 있던 집옥재를 이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UeO%2Fimage%2FBsXRzJaShITzTvkesjTalLMxHEU.jpg" width="500" /&gt;</description>
      <pubDate>Mon, 09 Jun 2025 06:03:45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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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 때의 남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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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1068년 고려사절요에 남경에 궁궐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1101년 남경개청도감을 설치를 시작으로 1104년에 궁궐이 완성되고 어가가 닿았다고 한다. 1128년 궁궐에 불이나고, 1356년 궁궐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360년 백악 궁궐을 짓기 시작 &amp;ndash; 확장인지 불분명 &amp;ndash; 하여, 1382년 천도 후 다음해 2월 다시 환도 하였고, 1390년 9</description>
      <pubDate>Tue, 27 May 2025 00:03:33 GMT</pubDate>
      <author>뀨의 문화유산 톺아보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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