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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Apr 22. 2024

9시반 출근인데 새벽 7시반에 퇴근하는 사람 나야

영화 홍보를 더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부터 였다.


입사할 때 대표님이 나를 회의실로 불러서 이제 20대 막 중반이었던 나를 앉혀놓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찼으니 이제 업종변경은 안된다”하시며 함께 5년은 일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도 내가 대표에게 ‘5년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생각하니 뿌듯했다.


20대 중반의 나는 일로 인정받고 싶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영화 전공도 아니었고 공채 입사도 아닌, 대표가 출강 나가던 과의 조교로 일해서 대표 사람으로 꽂아 넣어진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일로 능력치를 검증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군말 없이 했다. 일이 많든 적든 내가 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해내고 싶었다. 어린 나는 그게 나를, 내 몸과 정신의 건강을 좀먹는 것인 줄 몰랐다.


사무실 책상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루 종일 거의 램수면 상태로 멍하게 일만 했다. 커피와 담배를 달고 살았고 없으면 버티지 못할 지경까지도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이 좋았다. 늘 재밌고 짜릿하진 않았어도 보람이 있었다. 그게 나를 하루 더, 이틀 더 버티게 했다.


하루 안에 마칠 수 없는 미친 업무량은 당연스레 야근으로 이어졌다. 야근은 매니지먼트사에 입사해서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더 이상 뜨는 해를 보며 집에 가지는 않는다는 정도? 매니지먼트사에서도 내 연봉은 업무량과 정비례로 책정되지 않았다. 지금 업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테지만. 대신 일은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맘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내 일을 좋아했고, 즐겼고, 아꼈다. 월차, 연차, 초과근무 수당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하루를 제대로 쉬는 날이 없었어도 불만이 생기지 않았었다. 정말 미친듯이 일만 했다.


야근이 많다고, 대체 휴무가 없다고 혹은 사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다고 투정은 부렸어도 그 자체가 내 일의 특징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나고 보면 뜨는 해를 보며 집에 가고 주말도 공휴일도 없는 하루를 버티고 견디며 살았던 그 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지금 후배들은 좀 더 나아진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상황도 매우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을 터다. 어떤 직군이든 매 순간이 참고 버팀의 연속일 테니. 다만, 즐길 것은 즐기고 찾을 것은 찾으며 일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 일이 좋아서 일부자를 자처했던 나도, 결국 지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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