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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Mar 18. 2024

캐나다에서 인종차별하는 아주 쉬운 방법

[D+9]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친구만들기


동양인은 코로나가 무서워
ATM이 돈을 먹었대도 어떡하나, 일단 내 인생은 계속되고 있는데.

* ATM이 돈을 먹은 이야기는 전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서관에서의 보드게임이 있는 날.

참가 시간은 오후 6시라서 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계속된 내 감기 기운은 확실히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감기기운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것이, 실제로 감기가 계속된다기보다 기관지가 약해서 한 번 기침 감기를 앓은 후에는 한동안 차가운 공기나 먼지에 매우 민감하게 기침을 하게 되는 것.

감기 직후만 아니라면 먼지 구덩이에서 일을 하든 살든 상관없는데, 하필 캐나다에 온 직후 감기에 걸렸지 않은가.

기침을 계속하는 시점에서 일단 남들 눈에는 내가 멀쩡해보이지 않을 거라는게 로 그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미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 인종차별을 겪은 상태라서, 동양인이 기침한다고 코로나라고 하면 어떡하지? 코로나라고 의심만 하면 다행인데, 체적인 위협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보드게임을 위한 만반의 준비

하지만, 내가 갈 수있는 보드게임이 한 달에 한 번 뿐이라서 이번에 못 가면 다음 달에 이 프로그램이 재개될 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음 먹었다. 보드게임에 참여하러 도서관에 가자고.

다만 이대로는 불안해서 도서관에 가기 전에 약국에 한 번 더 들러서 목기침을 막아주는 스트렙실을 하나 샀다. 목캔디보다 아주 강력해서,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목을 마비시켜주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도서관 근처 편의점에 들러 물 한병도 샀다.

캐나다에 도착한 후로 정말 본의 아니게 근 일주일간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말았다보니, 이 소셜 활동을 놓칠 수 가 없었다.

얼마나 필사적이었냐하면 예약도 필요없는 Drop in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시간 전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내 기침이 도서관 공기에 얼마나 반응하는지 체크해 볼 정도로.

그리하여 밀려뒀던 일기를 쓰며 기침이 나올 것 같은 때마다 물을 마시고, 스트랩실을 녹이며 버티자니 꽤 할 만 할 것 같았다! 말을 좀 덜하면 되니까!

(사실 소셜 활동에 나가지만 '말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 이 시점에서 뭔가가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미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참여' 그 자체가 됐다. 말 한마디 못하더라도 더 이상 방에만 죽치고 있을 수 없어!)


May I come in?

보드게임이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 더듬더듬 그 클래스룸을 찾아갔을 때, 내가 본 건 큰 소셜 룸 한 구석의 보드게임들과 큰 테이블 앞에 이미 모여 루미큐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참여하시는 분들의 나이를 걱정했는데, 첫 날의 비율은 그럭저럭. 첫 날의 비율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가 골고루 섞인 느낌이었다

초반에는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인지 4~60대 분들밖에 없었는데, 그 분들과 게임을 하고 있자니 곧 2~30대의 사람들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 생각보다 많잖아?

이후에 참여했던 보드게임 프로그램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걸 생각해봤을 때, Drop in 프로그램이라서인지 확실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듯.
루미큐브를 너무 오랜만에 해봐서 룰을 잊었다고 했더니 다들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간만에 이게 (다정한) 사람들과의 만남이구나 하는 감동이 잠깐. (물론 그것과 별개로 테이블에 앉기 전 내가 코로나가 아님을 선언하긴 했다.)



친구도 자만추가 하고싶은 나이

자만추, 연애시장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인데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뜻으로 미팅도 싫고 소개팅도 싫고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말한다. 다시말해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이랄까, 그리고 운명이란게 어디 연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던가?

3~40분쯤 루미큐브를 하고 있었을까, 그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는데 이제 막 수업이 끝난 것 같은 대학생 친구들이 둘 셋 정도 합류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서 들어왔던 여학생 하나가 자연스럽게 루미큐브 테이블에 합류해서 나와 인사를 나눴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린 알았지,(아마 우리였을거야, 나만이었던 건 아니었을거야.) 이건 친구가 되고 싶다는 신호다! 루미큐브는 이미 진행이 한참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 친구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아 나를 응원했다.

"네가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소근거리던 그 친구가 얼마나 귀엽던지.

미큐브는 판을 널리보고 남의 판까지 움직여야하는 머리싸움이라, 아무래도 짬이 차서 여유가 있는 사람이(거나 머리가 엄청 좋은 사람이거나)승리를 가져가기마련이다. 대략 몇 년 만에 잡아본 루미큐브가 손에서 겉돌기도 잠시, 그 응원을 받은 힘인지 beginner's luck 인지, 결국 그 판은 숨막히는 추격의 추격 끝에 내가 이겼다.

그리고 짝! 하이파이브까지. 이거 그린라이트 맞지?

게임 내내 스트랩실을 중독자처럼 먹어야 했지만 하여튼.


Multi-cultural 국가가 처음이라

이 게임은 한국에서 '다이아몬드 체스'라고 불린다.(그냥 회사 이름이 그랬다. 이유는 모르겠다.)그런데 이 게임, 토론토에서는 '차이니즈 체스(Chiness Chess)'라고 불린단다.

게임 한 판이 끝났기 때문에 드디어 그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 었다. 다음 게임으로 차이니즈 체스를 하게되리라는 것은 사실 루미큐브 판 중간에 알았다. 그 친구가 문제의 체스를 발견하고 차이니즈 체스의 이름과 기원에 대해 설명해줬고, 나는 한국에서는 다이아몬드체스라고 불린다고 말해줬다. 루미큐브 테이블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차이니즈 체스를 해보고싶다고 하나 둘 언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 체스는 내가 어렸을 때 즐겨하던 보드게임이라 함께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일단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할 수 있는 게임은 뭐든 좋았다. 뭣보다 그 친구가 "너 한국에서 왔어? 나 K-POP좋아해!" 라고 흥미를 표시했거든.

그리고 여기서 대형실수를 저지르고 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맞아, 나 한국에서 왔어. 넌 중국사람이야?(차이니즈야?)"라고 한 것. 그 친구가 "응, 뭐 그렇지."라고 대답하기에 그냥 그런 줄 알지.



그리하여 그들은

너도나도 달라붙어서..그러니까 대략 여섯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서 시작된 차이니즈 체스는 재밌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와 내가 알고 있는 룰이 달랐고,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기 힘들어해서, 그래서 2시간으로 제한되어있는 시간을 다 쓰고도 도서관이 끝날때까지 게임을 진행했는데도 결국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모두들 아쉬운 표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고, 그 친구와 나, 몇몇은 자리에 남아 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우연히 알게되었는데, 이 친구, 본투비 캐내디언이라는게 아닌가.

으악! 그러니까 나는 동양인 베이스의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의 국적을 판단해버리는 인종차별을 저질러 버린 것. 그 자리에서 진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신이 차이니즈 베이스긴 하니까 괜찮다고 용서(?)받긴했는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실수하지마시라고 반성 차원에서 덧붙이지만, 캐나다 정말 다문화적이고 Welcoming 한 나라라서 단편적인 정보만보고 "오 너 어느 나라 출신이구나!"라고하는 건 야말로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피치못할 경우에 컬쳐 베이스를 물어볼 수는 있는데, 그냥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캐내디언이겠거니 하고 사는게 가장 좋다.
문화라는게 단순히 양 국가간 혼혈이라는 수준이 아니라, 캐나다사람인데 조부모님~부모님이 러시아/폴란드/독일계이며 아시아 베이스의 외모가 섞여있지만 한 번도 아시아에 가본 적없다거나,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스페인 여권 보유자고 스페인 아이덴티티가 더 강하다거나...'출신'으로 따지고 들기엔 내가 만났던 캐내디언들의 인종이란 글로벌 그 자체였기 때문.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를 하자면 이렇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인데, 다 좋은 하루를 보내고도 마무리를 그만.

이 찝찝함을 어쩌면 좋으냐. 친구야, 진짜 미안하다. 나도 내가 인종차별을 하게 될 줄 몰랐어.



* 남겨주시는 댓글들은 소중하게 읽고있습니다.

아직 몇 분 되지 않아서 사실 닉네임도 응원도 걱정도 다 기억이 난답니다ㅎㅎ :)

다만 이 일기는 실제 일정의 한참 뒤에 작성하고있어서 답글을 달면 스포일러(!)가 될까봐 답글을 달지 못하고있어요.

댓글과 상관없이, 저의 일정에 함께 해주시는 독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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