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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an 07. 2016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살아남기

고백하겠다. 나는 ‘헬조선’의 실상을 잘 모른다. 내가 느끼는 현실의 비극성은 면접장에서 만나는 청년들이나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는 인턴들에게서 느끼는 연민을 과장한 것이다. -내가 입은 사소한 피해를 ‘헬조선’의 만행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 그래서 실제로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지옥 같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있다. 나의 세계는 ‘회사-전철-집’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어서 그들의 세계를 체험하기 어렵다. 빈곤의 세계는 지하나 옥탑, 고시원, 공단 등에 은폐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빈곤의 세계에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서 빈곤의 실체는 계속해서 은폐되는 중이다. 그런 이유로 ‘헬조선’이라는 말은 빈곤한 자들의 해방을 위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엎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좀 여유 있는 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스스로의 처지를 자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모순의 틈새를 파고든다. ‘흙수저’의 표상인 수남(이정현 분)의 삶을 추적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환경의 현실을 잔혹한 판타지의 형태로 재기 발랄하게 그려 내고 있다.


수남은 어릴 때부터 성실했다. 학생일 때 자격증만 무려 14개를 딸 정도로. 하지만 컴퓨터에 일자리를 뺏기고 공장에 경리로 취직한다. 성실하기만 했을 뿐 성공을 위한 요령을 몰랐다. 현실에서는 자격증보다 풍만한 가슴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규정(이해영 분)을 만났다. 공장의 소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꾸리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규정의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수남은 수술받기를 권했지만, 규정은 한사코 집을 장만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규정은 수술을 받았고, 둘은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수술받은 장치의 이상으로 규정은 사고를 당하고 손가락을 잃고 만다. 실의에 빠진 규정을 위해 수남은 집을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더 성실하게 살았다. 9년을 꼬박 노동한 후에 대출을 끼고 집을 장만했다. 


규정의 평생소원을 이뤘으니 이제 행복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규정은 자살을 시도한다. 결과는 식물인간. 수남은 규정의 병수발까지 들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병원비에 날로 빚은 늘어가고, 수남은 출구가 없는 빈곤의 현실에 갇힌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과 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재개발 사업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재개발 사업만 시작되면 집을 팔아서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쉽게 일이 풀릴 리가 없다. 수남의 동네가 재개발 구역이 된 것에 대해 아랫동네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재개발 추진은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된다. 수남은 과연 기회를 잡고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속 수남의 삶은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낯선 상황을 마주하는 당혹감과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잔혹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헬조선’의 실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실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한 단계 더 위로 올라설 수 없는 사회. 성실한 것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현실적 감각으로 요령 있게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수남의 삶은 그런 사회의 민낯을 보여 주었다. 수남이 재개발 사업 추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장면에서 ‘성실의 허무함’은 극대화되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도 얻은 것이 없었는데, 남을 해하는 비정상의 방법을 택하자 원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일찍이 우리는 학교에서 ‘꾀를 부리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성실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 ‘헬조선’에서 ‘성실’은 ‘순진함’의 고급스러운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심각한 현실 이야기를 풀어놓는 독립영화라면 지루하고 머리 아픈 것이 아닐까 하는 편견도 있을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영화는 경쾌하고 재미있다. 이정현의 ‘순진한’ 인물 연기가 비극적 현실의 생존기를 판타지 속 모험기로 만들고 있다. 색감이 강조되고 소녀 취향의 발랄함이 묻어나는 장면들은 영화의 템포를 가볍게 한다. 또한, 살인의 시퀀스에 녹아 있는 유머는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쓰디쓴 내용을 달달한 캡슐에 잘 담았다. 우리는 그 약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영화를 본 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다. 영화의 결말에 구체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는데, 나는 이 영화가 현실의 가려진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 준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깨달았으니 해결하고 바꿔 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 아닐까? 물론,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 각자가 현실에 대한 각성을 할 수 있는 계기쯤은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변의 현실을 떠올려 보니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진다. 수남은 남편을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남편에게 필요하고 남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며 싸웠다. 그나마 가족이 있었기에 좌충우돌 현실과 부딪쳤고, 그러면서 출구 없는 사회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수남이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부양해야 할 남편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저 ‘성실하기만’ 한 삶을 계속 살아가지 않았을까? 자기 한 몸만 딱 들어가는 고시원 골방에서 (요즘은 개나 먹는다는) 밀가루 소시지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럴 경우 빈곤은 유폐(幽閉)된다. 생존을 위한 각자의 전쟁에 몰입해 있는 우리들은 ‘헬조선’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다. 지옥 같은 현실은 지속된다. 끔찍하다.


고된 현실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혼자서 살아가는 시대. 소수의 가진 자들이 만든 시스템의 요구에 나머지 전부의 사람들이 성실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꽤 오래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나는 ‘N포’의 시대가 슬프고, 두렵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수남이처럼 사랑은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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