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Apr 01. 2016

룸(Room)

작은 방을 나와서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 예고편을 보면서 두 가지가 궁금했다. ‘왜 갇혔을까’, ‘어떻게 탈출할까’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짐작했다. 영화의 내용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웬걸? 실제 영화의 내용은 나의 짐작과 달랐다. 여주인공이 납치되는 장면이나, 납치범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았다. 또 여주인공이 그 밀폐된 공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어 영화는 엄마와 아들이 작은 방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납치된 주인공들은 영화의 중반 이전에 작은 방에서 탈출한다. 납치, 폭력, 스릴, 탈출, 액션 등의 쫄깃한 긴장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당황할 만한 구성이다.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를 이렇게 풀어내면서 감독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아버지’였다. 열일곱 살 소녀 조이(브리 라슨 분)를 납치해서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고, 모자(母子)를 작은 방에 가둔 닉(숀 브리저스 분). 천하의 몹쓸 인간인 닉의 범죄에 치를 떨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 나는 그보다 얼마나 나은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집안에 머무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것 외에 얼마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쏟았을까? 돈벌이의 어려움과 생활의 곤궁함을 두고 조이와 닉이 실랑이하는 장면은 마치 우리 주변의 부부들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는 특별한 납치극을 넘어서 평범한 우리 일상으로도 읽혔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한 여인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고, 욕망한 결과로 아이를 얻어 아버지가 되었다. 그렇게 가정을 꾸렸다면, 자신의 세계와 아내의 세계, 아이의 세계가 어우러진 가족의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세계만 그대로 간직하고 나머지 일원들에게 조그만 곁방을 내어 주는 식이라면, 납치범 닉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영화 속의 작은 방은 아내와 아이를 욕망과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의 폭력성으로 단단히 밀폐되어 있다. 나는 밀폐된 벽의 이쪽과 저쪽 중, 어느 곳에 머물고 있을까? 나는 남성과 아버지 두 존재 중 어느 쪽의 역할에 충실할까? 작은 방 안의 이야기는 나에게 넘치는 고민들을 안겨 주었다.

    

조이의 아버지 로버트(윌리암 H. 머시 분)의 반응도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실종된 딸이 돌아왔는데도 수심이 가득한 아버지. 그는 자신의 손자 잭(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을 쳐다보지 못한다. 손자라는 사실보다 딸을 납치한 범죄자의 피가 섞인 아이라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로버트의 세계는 조이의 세계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버트는 혈통을 지켜야 하는 수컷으로서의 본능이 가득한 세계에 산다. 그러면서 그도 역시 그의 욕망으로 딸과 손자를 또 다른 방에 유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가족들이 모두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세계를 만들지 못할 때, 모두가 고통받게 된다는 것을 로버트의 식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아버지보다는 남성들이 가득한 바깥세상에서 조이와 잭은 행복하지 않았다. 적어도 창고 방에서 조이와 잭은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사랑으로 충만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다. 그 관계 자체가 중요했다. 하지만 바깥의 세상은 무언가를 따지기 시작했다. 힘들게 잭을 낳아 악착같이 키워 낸 조이에게 언론은 묻는다. 왜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느냐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했다면 아이만이라도 잘 살 수 있게 바깥세상으로 내보내야 했다고 따져 묻는다. 그들의 세계에서 엄마이니까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조이의 대답은 궁색하다. 문제 해결을 중요시하고 효율성을 따지는 남성의 세계에서 17살에 머물러 있던 소녀 조이는 또 다른 방에 갇히고 만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 방에서 조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조이는 아들 잭이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아들이 조금씩 세계를 넓혀 가면 엄마도 그만큼 공간을 더 내면서 두 사람의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뱃속에서 아이를 키워 내는 엄마의 힘을 발견한다. 태아 때부터 세계 안에서 함께하는 엄마. 지옥 같은 곳에서도 이겨 내고 살아갈 힘을 주는 아이. 그 둘이 현실 속에서 다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감독은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엄마와 아이의 관계로 서로 연결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을 주고, 힘이 되어 주는 멋진 ‘Room’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스포트라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