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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04. 2024

5화_새로운 시작_이직

11개월 만에 봄이 왔다 피어오른 꽃 주위에 짙은 향내가 퍼지고 있었다

입사 지원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드리며,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보~ 여보~

이리 와봐
여기 봐봐

 나 최종 합격했어!

최. 종. 합. 격 했다고!!!





길고 긴 겨울이 지나
드디어 꽃 피는 봄이 찾아왔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누가 그랬던가!

저 멀리 짙은 어둠을 찢는 빛이
서서히 그 위엄을 뽐내며, 환한 빛을 발한채 지평선 너머로 올라오고 있었다

합격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네 글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희망의 빛
환희의 빛
기쁨의 빛






어느덧 일 년이 지나갔다 




그제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숭고한 사명 감당할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다


마이너스 인생이었는데 플러스 인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재도약의 기회가 주어졌다


살며시 눈을 감으니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필름의 영사기가 돌아가며,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하나하나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은혜였다

감사였고

선물이었다

  




너무도 아픈 시간, 동시에 진정 행복했다


두 사람 곁에 언제나 있을 수 있었으니까

인생 가장 아픈 시간, 트리오(trio)가 되어 함께 삶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었으니까


숭고했다

격정적이었으나 동시에 차분했다

담대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고

가족이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그 의미를 충분히 저울질해 볼 수 있는 기간이었다   


동시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두려웠다

나의 경력은 끝이 났다고 봤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원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꽃을 사르며, 살아 숨 쉬는 나를 재확인하고 싶었다


지난 1년여 막대한 단위의 돈이 지출되었다.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써 본 것은 처음이다


입원생활, 병원 전원 부대비용, 예약진료비, 교통비, 검사비, 대학병원 정기 진료, 기타 병원 관련된 비용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 계속 들어갔다


나는 하루속히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지난 1년 나를 원하는 곳이 없었다

내가 CEO라도 그런 부담을 지고 사람을 뽑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경력이 훌륭한 수많은 지원자를 두고 굳이 경력 단절된 어느 이름 모를 사내를 부를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가장이었다 내게는 무거운 책임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숭고하다 여겼다


아내는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이제 아이 곁에만 있어야 했다



그게 팩트였다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관계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갈 거라 다짐했다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해, 아내를 서포트하고, 밤이 되어 아이를 씻기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삶의 무한반복이었다. 30분마다 치료 시간은 끝이 났고, 다음 치료실로 옮기기 위해, 아이 다리에 재활 보조기를 풀어주곤 열심히 유모차를 밀고 병원 복도를 달리기도 했다


치료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종료 5분 전에 하기 위해 아이 엄마와 나는 계속 스위치 하며 역할을 바꿨다

어린아이는 모든 치료에 성실히 임했다. 작업, 물리, 감통, 음악, 미술, 언어, 인지, 그룹활동..  


병원이 진료를 쉬는 주말에는 사설 치료센터를 찾아다녔다. 그리곤 다시 일요일 저녁 병원 입소 시간에 맞춰 입원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어야 했다. 치료사 선생님, 담당 주치의 선생님들과 주기적으로 면담을 해야 했고,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아이에게 필요한 세부 사항을 논의해야 했다


병원에 있는 시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아내의 마음이 혹시 우울하지는 않은지, 아이가 어디 불편한 것은 아닌지를 계속 모니터링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곰곰이 생각했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이 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종이 신문을 생각해 냈다 외국계 회사를 마지막으로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더 할 필요를 느꼈다. 재활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부담을 무릅쓰고 1년 정기 구독을 신청해 버렸다

 

그 당시 몇십만 원은 큰돈이었지만, 그것만큼은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얼마나 여기에 실제 시간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종이 신문을 통해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계속 가져가고 싶기도 했다. 늘 세계 시민을 꿈꾸며 살던 나에게 꽤 중요한 문제였다


뉴욕 타임스, 데일리 중앙일보 영문판을 가지고 병원으로 매일 출근했다. 하루에 20분을 읽으면 많이 읽는 것이었지만, 병실 이동 간, 아이를 씻기 전 잠깐 틈틈이 신문을 통해 세상을 봤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온갖 증오, 미움, 시기, 질투,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면 단 번에 해결되는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세상과의 접점을 계속 가져갔다.


시종일관 답답했지만 그렇게 혹시 다가올지도 모르는 영어 면접을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신문들이 내 책상 한편에 보관되어 있다. 기쁨이 와 관계된 거의 모든 자료를 그렇게 쌓아왔다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메일함에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면접 제의였다


전무하다시피 했던 면접 제의가 드디어 날아들었다. 늘 마음 쫓기는 상황에 있어 어쩌면 이력서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쓰지 못한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문제는 내게 더 이상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고 난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그때의 최선이었던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이었다. 천천히 살펴보니 전도 유망한 회사로 비쳤다

아직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그 비전과 사명 선언문에 강하게 끌렸다

그 당시 핫한 회사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신문 기사를 들여다보며 알게 되었다


그래 지원하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이전 회사들이 대기업, 외국계 기업이었기에 그만 둘 때도 금방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 오산이었고 그렇게 1년 여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세 번에 걸쳐 총 5시간의 면접을 봤다. 실무자 팀장 면접, 또 다른 팀장 면접, 최종 디렉터 면접

그 안에 영어 면접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시니어 디렉터를 당황시킬 정도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일 년 가까이 단 한 번 영어 쓸 기회가 없었는데,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


마지막 최종 면접 때 디렉터의 말이었다.


우리 회사의 리더십 원칙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대답해 볼 수 있을까요?
그걸 어떻게 회사 생활 하면서 실천할 수 있을지 자신의 이야기로 바꿔 나를 설득해 봐요




병원이 끝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기도를 드렸다. 면접 전날 밤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 1년 만에 날아든 첫 번째 면접이에요

제가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면접장에서 제 입술을 주장해 주세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제가 떨어지더라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을게요

다만 제가 제 자신이 되어 면접장에서 후회 없이 다 말하고 나올 수 있게 해 주세요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는 15개나 되는 리더십 원칙을 꿰고 있었다. 왠지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면접에 가기 전날 전체적으로 리뷰하면서, 그 모든 리더십 원칙들을 하나하나 내 상황과 직결시켜 보았다. 아니 나란 사람의 정체성과 연결하는 시도를 했다.


회사에 붙고 떨어지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리더십 원칙을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하면 커다란 유익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실패해도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정말 많다 판단했다


그렇게 면접은 끝났고, 디렉터 분은 마지막 인터뷰 말미에 지금 다른 회사가 된 곳이 있는지, 합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가 언제인지 물었다. 최대한 빨리 합류해 달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동시에 차올랐다


그렇게 며칠 후 최종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내 인생 네 번째 회사였다


첫 번째 회사는 아프리카 케냐 소재 회사였고 두 번째는 국내 대기업, 세 번째는 외국계 기업으로 아이가 아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번 네 번째 회사는 업종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회사였다.


언제나 믿었다.

일을 행하시는 이성취하시는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진리의 말씀을 가슴속에 되뇌고 살았다

거센 풍랑이 이는 날이면 더욱더 꼭 그 말씀을 껴안았다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그 한 문장은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쭈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0-25)





기쁨아 병원 생활을 하던 네 첫 일 년이 이랬어. 너는 오래도록 옹알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네가 말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으니까


그때는 우리도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 같아.

물론 네 엄마는 늘 너와 눈을 마주치며 시시각각 찾아오는 너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아빠는 어려웠어


다만 너를 너무나 사랑했고, 네 엄마를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아빠는 괜찮았어

하루 종일 입술로 중얼거리며 기도를 드렸고 그래서 아빠랑 엄마랑 더 깊게 사랑하게 되었어

 

엄마는 아빠를 정말 의지했고 아빠 앞에서만 울었어. 아빠는 그런 엄마가 늘 안쓰럽고 고마웠어


네가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을 때,

자리에 앉아도 몸이 아래로 축 처졌을 때,

네가 늘 누워서 하늘을 향해 한 손만을 드는 걸 볼 때 가슴이 찢어졌었어


네 몸이 불편하다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여느 친구들은 뛰어다닐 때 아직 기어 다니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네가 얼마나 불쌍했는지 몰라

제대로 앉을 수 있는 건지, 일어설 날이 오기는 오는 건지, 걸을 수 있을지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의심 투성이었어


그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하늘의 하나님께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어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잡을 수 없어 느낄 수 없지만 알파와 오메가 되어 실제 하시는 그분을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그분께  

매정해 보이고 무심해 보이지만,

그분만큼 우리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바라시는 분이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가능했어 


그분은 우리 아버지시니까,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지만, 언제나 마음문 바깥에서 우리가 문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시는 오래 참으시는 아버지시니까. 그 아버지에게 아빠도 사랑을 배울 수 있었어 


기쁨아, 인생을 살다가 힘들면 너도 그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해 드려. 뭐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거든.

하나님은 그냥 우리의 마음을 듣기 원하시는 거야. 그 분과 가까워지려는 우리의 진솔한 마음을 원하시는 거야 우릴 사랑하니까. 우리와 늘 대화하고 싶으니까


아빠의 인생은 늘 마지막에 역전되는 인생이었어


앞으로 그 이야기가 계속될 거야. 아빠 마음에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 실제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꽃피울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네게 이야기할 수 있었겠니. 아빠를 믿어줘


너무 신기한 삶이었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삶. 그 삶으로 너를 초대해 아니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


기쁨아 사랑해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아빠 세상 끝날까지 너와 너희 엄마를 지금처럼 사랑할 거야


안심해 느려도 괜찮아, 잘 못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실패해도 괜찮아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감사한 거야.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인도하실 거니까 그 하나님을 믿어. 그 하나님께 네 마음문을 열어봐 

아무리 아빠여도 아들의 믿음을 강요할 수 없거든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


그건 하나님이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야. 하나님을 믿도록 강요하는 거


오직 너만 할 수 있어 그분이 네 의사를 존중하시거든


하나님에게 놀러 와 문을 열어 드리고 그분을 네 삶에 초대해 그 분과 평생 놀아봐 아빠처럼 기쁘게 말이야~


(제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한다면 똑같이 상처받고 아픈 분들께 전해 주세요. 사랑은 움직이니까요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여 다른 이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고 사랑하게 만드는 불씨와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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