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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20. 2024

중1 아들의 친구는 인생 2회차다

이런 유니콘은 원래 남의 아들이다

우리집 열넷 소년에게는 절친이 한 명 있다. 6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K. 아이 입을 통해 간간이 이름을 듣긴했지만 집에 놀러온 적도, 휴일에 아들이 만나러 간 적도 없는, 그래서 가끔은 진짜 있는 친구인지 궁금했던 친구다. 핸드폰이 없던 소년은 친구와 목소리도 메세지도 주고받을 수 없었고, 오로지 학교에서 만나서 놀 수밖에 없는 친구였다.


가끔 흘리는 아이의 말로 종합해보면, K는 활발하고 공부도 잘하며 반에서도 존재감있는 남자아이인데, 놀랍게도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한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예중을 목표로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는 아이. 소년에게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고작 열 셋이지만 나보다 낫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상에, 윤아,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라. "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주먹을 쥐어가며 당부했다. 배울 점이 많고 훌륭한 성품의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 좋겠는 마음, 부모라면 당연하지 않을까. 사회성 부족하고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는 아들에게 이런 친구가 생기다니, 절로 감사했다.


이후로 종종 K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비오는 날, 그 친구 피아노 학원까지 우산을 씌워 데려다 주느라 한쪽이 다 젖어 집에 돌아오기도 하고, 하교길에 편의점에 들러 서로의 간식을 사주기도 하는 등 연인사이에 할 법한 살가운 이야기들을 들을때마다 내 입꼬리는 내려오질 않았더랬다.



엄마 눈에는 마냥 귀여운 두 소년


그 친구를 직접 만난 건 아들의 졸업식 날이었다. 처음 만난 K는 우리 아들보다 키도 크고 개구진 표정이면서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작은 아이와 나란히 서있으니 훨씬 연상으로 보였고, 아들은 전적으로 그 친구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려울 수 있는 친구 부모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안녕하세요 어머니!'하고 넙죽 인사하는 K를 보자마자 호감도가 상승했다. 내 부탁대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주고는 작은 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라졌다. 아들은 가족보다 친구를 택했다. 그 친구 역시. 


그렇게 두 소년은 졸업을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윤이는 집 앞 5분거리 중학교지만, K는 시험을 보고 다른 도시에 있는 명문 예중 피아노과에 진학했다. K가 다니던 동네 피아노 학원 앞에는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K의 합격 축하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K가 예중이 아니라 서울대입시반 학원을 다니는 친구였으면 우리 아들도 학원에 다니며 열공했으려나. 


절친과 헤어져 중학생이 된 작은 아들이 친구와 멀어질까 걱정되었는데 아직까지 두 아이의 우정은 여전하다.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는 둘이 메세지도 주고받고 통화도 종종하는데, 방문을 닫고 둘이서 킥킥대며 한 시간씩 수다 떨기도 한다. 말투 없고 무뚝뚝한 윤이가 웃으면서 수다 떠는 게 신기해서 한참 쳐다본 적도 있다. 통화뿐인가, 주말에는 데이트도 한다. 윤이는 일요일 아침 달콤한 늦잠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대충 한숟가락 뜨고 나가서 오후에 들어온다. 신앙이라곤 1도 없는 우리 아들이, 자신은 전생을 믿으며 예수님은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이 아들이, 오직 친구를 만나서 같이 놀기위해 주일마다 교회에 간다. K가 다니는 교회에 가기 때문이다. 그 옛날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은 2024년에도 유효하다. 


지난 주일 아침 9시 반, 간단히 밥먹으며 교회 갈 준비를하는 윤이가 전화를 받았다. 본의 아니게 변성기를 지나는 불안정한 두 소년의 대화를 듣게됐다.


"윤아 일어났냐?"

"어, 일어났어. 아까 일어나서 지금 밥 먹고 있어."

"근데 소리가 왜그래?"

"어제 늦게 자서 그래."

"늦게 잤어? 왜 뭐 설레는 일 있어?"


 내 아들인가 싶게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도 낯선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K의 말은 열네 살 중1 남자아이가 하는 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내 아들이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가 맞나싶었다. 저 또래 아이라면 친구가 늦게 잤다는 말을 들으면 으레 '또 게임했냐?','웹툰 작작 쳐보랬지' 이런 투의 말이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 설레는 일이 있어 잠을 설쳤냐는 질문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물어볼 수있는지 내 심장이 동당동당 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둘의 대화를 더 듣고 싶었지만, 아들은 교회 앞에서 만날 약속을 마무리 하고 통화를 끝냈다. 교회에 가서 만나도 되는데 굳이 편의점에서 만나 함께 교회로 간단다. 서둘러 나가는 아들의 등 뒤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K랑 잘 놀고 와!'하고 인사했다. 


물론 늘 이렇게 다정한 대화만 주고 받는건 아니다. 그 나이 답게 이런 대화도 주고받는다.


"K, 너도 일찍 자, 그래야 키 큰다."

"뭐? 크다고? 윤아 어떻게 그렇게 야한 말을 할 수 있어!"

"뭐래 발기부전이."


발기부전이라는 말을 어디서 어떻게 들었을까? 뜻은 알고 쓰는 건지 알 수가 없다만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소년에게도 지켜줘야할 선은 있는 법이니까. 저런 시시껄렁한 농담도 편하게 하면서 또 챙겨줄때는 세상 다정하고 애틋한 절친이라니. 아들이 조금 부럽다.  


맑고 풋풋한 어린 시절의 친구가 자라면서 서로 변하고 그만큼 달라지고 멀이지기도 하겠지만, 부디 오래오래 선한 영향을 주고 받는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 지금의 순수하고 다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친구와 찍은 사진이 없어 형제의 뒷모습 사진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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