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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Mar 15. 2024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난다

울음지옥과 T

아이가 출산예정일보다 6주나 빨리 나와 초반엔 걱정과 애틋함, 불안함만 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2주 정도 있다가 다행히 건강하게 퇴원을 하고, 2주 조리원을 거쳐 약 한 달 만에 집에 왔다. 온전히 우리 부부만의 보금자리였던 공간에 새로운 가족이 함께 한다는 감격도 잠시 이제 출생 30일 밖에 안 된 아이는 우리 집 대장이 되어 우리의 혼을 쏘옥 빼놓기 시작했다.



당신은 울음지옥에 입성했습니다


배고프면 운다.

졸리면 운다.

배가 아프면 운다.

방귀나 트림이 나올 것 같아도 운다.

방귀나 트림을 하고 자신의 소리에 자기가 놀라 운다.

심심해도 운다. 

자다가도 운다.

.

.

.

그야말로 울음지옥이었다.   

울음이 갓난아기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하나 울어도 너무 울었다.


위에 나열한 울음은 그래도 원인과 결론이 있어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배고프면 우유를 주고, 졸리면 재워주고, 배가 아프면 가스나 대변이 배출될 수 있도록 마사지를 해주면 된다. 


그리고 나는 아이 울음소리 판별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상황마다 울음소리가 다르다. 

이 울음이 배고파서 우는 응애 울음인지, 자고 싶은데 혼자 잘 줄 몰라 짜증을 내는 우앵 울음인지 안다. (가장 아기다운 순수한 울음소리는 배고플 때 나는 울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울음의 정석처럼 '응애응애'하고 운다.) 


하나가 더 추가된다. 

이유 없이도 운다. 


우리 아이는 순한 아기였다. 전반적으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잤다. 

육아가 쉽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저녁 시간만 되면 도깨비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시간 내내 자지러질 것처럼, 목이 정도로 우니깐 우리 부부 모두 당황해서 발을 동동거렸다. 

이 정도로 운 적이 없던 아기였기에 어디 아픈 줄 알았다. 


"왜 이렇게 울지?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검색을 미친 듯이 시작했다. 해결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저귀도 갈아보고, 우유도 줘보고, 자장가도 불러보고 별의별 방법을 다해봤다. 


뭘 해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3~4시간을 아이를 안았다가, 눕혔다가, 거실을 수없이 배회하다 보면 다음 수유시간이 됐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10~11시 정도가 되면 그제야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진정하고 잠을 잤다.

하루이틀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이는 이 시간만 되면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울었다. 

매일 저녁 7시~11시 사이었다. 



내가 몇 년 만에 욱했던 순간


나는 파워 T인 사람이다. 처음 대화한 사람도 쉽게 내가 T라는 걸 알 정도로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고 쉽게 흥분한다거나 좋아서 날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의 울음 앞에서도 나의 T적인 이성적 레이더가 작동했다. 

아이를 계속해서 달래고 있자니 어느 순간 모든 게 합리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만큼 달랬으면 울음을 그쳐야 하는데 왜 계속 우는 거야?"


주구장창 우는 아이를 보면서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욱하는 감정을 느낀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나 스스로도 이런 감정이 오랜만이라는 자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이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데 왜 달래 지지 않는 거지? 인풋이 들어갔으면 아웃풋이 나와야 될 거 아니야.'  


이제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밖에 안 된 아이가 내 의중을 파악하고, 시험처럼 결과가 따박따박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은 아이의 울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아이가 자야 나도 내 할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아이를 재우는 건 내가 해야 할 일 1에 불과했다. 재우고 나면 그제야 본격적으로 해야 할 일 2,3,4,5,6,7을 처리해야 했다. 젖병도 씻어야 되고, 육아에 필요한 정보도 검색하고, 용품도 구매하고, 집안 정리도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나야 그제야 나도 쉴 수가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광광 우는 아이 앞에서 점점 내 표정도 굳어져갔다. 

나의 싸함을 느꼈는지 아이도 그날따라 더 격렬하게 울었다. 안방에서 쉬던 남편이 상황을 살피러 나왔다가 내 표정을 보곤 들어가서 쉴 것을 권유했다. 


"오늘은 엄마가 너 손절했다. 그니깐 그만 울어"하면서 나 대신 아이를 안아 들었다.

남편은 나를 잘 알았다. 정말이지 그 순간엔 아이의 손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뭘 해도 달래 지지 않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누구는 원더웍스라고 하고, 누구는 성장통이라고 하고 이유 모를 울음에 대해 마땅한 해결방법은 없었다. 

100일 정도가 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데 그전까진 그저 울음을 멈추길 바라며 꼭 안아주는 수 밖에는. 

 

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제는 내리 우는 아이 본인도 얼마나 힘들까 하는 짠한 마음이 든다

시간은 아무것도 하니깐 마무리할 마무리해 두고, 3시간 내리 안고 있는 건 쉽지 않기에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안는다. 


그래도 덜 울었으면 하는 마음에 새로운 시도 하나씩을 해본다. 

새롭게 배운 배 마사지도 해줘 보고, 낮 시간에 안아주는 것보다 양팔로 더 꼬옥 안아주기도 한다. 

자동차만 타면 잘 자는 모습을 보고 얼마 전에는 저녁 드라이브도 나갔다 왔다. 자동차가 멈추면 울었지만 아이도 덜 울고 나도 바람 쐴 수 있어 종종 나가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녁 9시 41분.

지금도 아이는 남편 품에 안겨 울고 있다. 오늘은 언제 울음은 멈추려나? 


아이와 나는 이렇게 가까워지고 있다. 



* 사진 출처: Unsplash의Ginny Rose Stew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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