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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Apr 28. 2024

캐나다 사무직 1주일 근무 후기

일을 시작한 지 고작 1주일 밖에 안되었으면서 후기를 쓴다는 것이 웃기긴 하지만, 한국에서 일을 할 때와 약간 다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들어간 회사는 사스케츄완 주의 주요 생산물 중 하나인 석유와 가스를 취급하는 회사다. 

위에 사진처럼 Pump Jack을 가지고 석유를 생산하는 곳에 Administrative assistant 즉 사무직으로 들어갔다. 


입사 첫날, 나의 선임인 60살이 넘어 보이는 인상 좋은 할머니께서 인사를 한 뒤, 나의 자리라면서 프런트 데스크로 데려다주었다. 각자 방이 있어서, 나도 방을 하나 주려나 생각했었는데, 프런트 데스크라니...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나의 선임인 Edna가 나를 데리고 회사 한 바퀴를 돌면서 인사를 시켜주는데, 영어로 말을 하니 이름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마쳤다. 회사에는 사무직이 12명 근무를 하고 있었고, 10개의 회사 업무를 함께 보고 있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내가 할 일은 GAS 차트를 보고 차트의 내용을 입력하고, 하루 생산량 정보를 입력하고, 주별로 그래프를 만들어 보고 하고, 차량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해 정리하는 것과 현장 업무자의 하루 일과에 대해 기록하는 것, 이 정도 업무를 먼저 받았다.

Edna 말로는 그전에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출산 휴가를 쓰고 난 후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업무는 한국에서 내가 십 년 동안 했던 업무와 비슷했다. 

택배와 우편배달을 하는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도 하고, 우편이 도착하면 봉투를 개봉해서 가지런히 놓고 전달하는 일도 배웠다. 다음으로는 파일을 스캔하여 정리하는 일과 스팸메일을 보내기 위해 봉투에 넣는 일을 주었다.  아주 간단해서 좋았다. 

캐나다 회사 별거 아니네...


사무보조 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힘든 일도 없고 생각을 깊게 할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이제 좀 쉬어 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Invoice가 담긴 박스를 6개 주면서, 업체별로 정리해 달라는 오더를 받았다. 

오더를 받은 첫날, 프런트 데스크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놨다. 업체 목록을 프린트해달라고 하니, 150개라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화부터 났을 텐데, 이제는 오히려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맡으니 기분이 묘하게 후련하다. 


겨우 한 박스를 끝내고 퇴근했다. 
그다음 날,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박스를 들고 지하에 있는 회의실에 펼쳐놨다.  

전날에는 처음 보는 업체들이면서 그것도 영어로 된 업체들이라 머뭇머뭇하면서 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눈과 몸이 기억해서 더 쉬워졌다. 사무직으로 10년 일한 것 또한 몸에 배어 있어서 엑셀이든 서류든 모든 일이 무난했다. 

회사 복지 중 하나는 매주 과일과 음료수를 사 와서 비치해 두는 것이다. 이번 주는 바나나, 사과, 귤을 사 와서 비치해 놓았다. 


쉬는 시간은 오전 15분, 오후 15분 이렇게 쉴 수 있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정말 그 시간에만 쉰다. 
커피 타임이라고 외치며 함께 커피 마시러 나가자고 해서 다른 직원들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시계를 보고 딱 15분 정도 맞추어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딱 끊고 들어와서 각자 자리로 향한다. 한국에서 자주 보였던 담배를 30분마다 피로 가는 김 과장이 없으니, 내 마음이 후련해진다. 

점심시간은 각자 알아서 먹는데, 대부분은 집에 가서 먹고 오거나 본인 배고픈 시간에 사무실 문을 닫고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진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지 않으니 어색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편했다. 
나는 시급으로 일한 것을 받으니, 점심시간을 30분만 가진다고 했다. 

내 점심은 아주 간단하게 식빵에 치즈 한 장, 햄 두 장이 끝이다. 한국에서였으면 점심 메뉴를 고민했을 텐데, 간단해지니 오히려 편하다. 배만 간단히 채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니 질리지도 않는다. 

캐나다에서 많은 고민들이 없어졌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너무나 무난한 한 주를 보냈다. 모자란 영어 실력은 다른 동료들과 깊은 대화를 할 일이 없으니 어려워할 필요도 없었고, 모두들 웃으며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셋째 날까지는 출근하면 자리에 쪼르르 앉았는데, 넷째 날부터는 출근해서 회사를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먼저 인사하면 점수는 먹고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이질감 없이 회사에 스며 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내 눈이다. 오랜만에 큰 모니터를 집중해서 보고 있으니 눈이 너무 아프다. 내가 왜 사무직을 그만두려고 했었는지 옛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제 곧 목과 어깨가 아프겠지.... 

정말 편한 일이지만 재미가 없다.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라는데, 나 또한 그러하다. 배가 불렀나 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 년 동안 여기에서 더 지내면서 내가 돈을 벌고 남편은 공부를 시킬까 생각도 했었는데, 잘못하면 이곳에 눌러 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곳에서 산다고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SK 주는 시골이라 살기 별로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평화롭고 간단해서 좋다. 문제는 약간의 심심함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3개월만 더 일을 한 뒤 영주권이 나오면 계획했던 대로 에드먼튼으로 옮겨서 4번째 직업인 마사지사가 되기 위해서 RMT 학교를 다니려고 한다. 

하지만 걱정 또한 올라온다. 내가 마사지사가 되려고 한다고 하면, 필리핀 사람이나 베트남 사람들 한결같이, '그 힘든 걸 왜 하려고 해?'라는 반응이다. 몇 년 전 식당을 운영할 때, 요리 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가 일을 하러 왔는데, 하루 일을 하고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면서 의사 선생님이 오래 서있는 직업을 
하면 안 된다고 했었다며 그만둔다고 했다. 요리는 계속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인데, 그럼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 아닌가... 나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힘들다고 안 할까 봐 걱정이 된다. 나의 걱정을 남편에게 말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집에서 우리나 마사지해주고,
다른 일자리 구해서 하면 되지!


맞다. 인생 어렵게 생각해서 좋을 것은 하나 없다. 앞으로 3개월 동안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다가 이동하면 될 것 같다. 다음 주에는 Facebook 홍보 계정을 해보라고 하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또 하나의 스킬이 늘어날 것을 생각하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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