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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Apr 15. 2024

나도 이제 여행 유튜버?

여보... 나 영상 찍는 거 안 절거워...

2023년 9월 4일 월요일 일기

나는 왜 유튜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우리의 여행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혹시 모를 유튜브 수익을 위해서? … 1년 뒤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 속이 쓰릴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짝꿍과 동반 퇴사 후 1년간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며 떠난 우리의 첫 여행지는 발리였다.


발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요가하며 마음과 몸을 다스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여행의 목적을 잊은 채 여행 유튜버를 흉내 내고 있었다.


우리의 세계여행 계획을 들은 지인들은 종종 ‘여행 유튜버하게?’라며 물었다. 우리 역시 세계여행을 떠난다면 유튜브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침 등산을 하겠다며 산(?) 고프로도 있겠다, 유튜브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선택을 받아 돈을 벌 수 있으면 더 좋고? 밑져야 본전이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발리에서의 첫날, 우리는 고프로를 들고 비장하게 길을 나섰다. 우리 둘 다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주어 본 것은 있었기에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가 OO이라는 곳을 가볼 건데요, 거기가 어떤 곳이죠, 짝꿍씨?’ 하면 짝꿍은 ‘오늘 갈 곳은 말이죠~’하며 그럴듯하게 여행 유튜버를 흉내 냈다.


이때만 해도 100만 여행 유튜버가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잘 보지도 않는 우리가 유튜브를 찍는다니, 그 과정이 순조로울리가 없었다. 누가 고프로를 들고 걸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 어떻게 티키타카를 할지 등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오디오는 비었다~ 겹쳤다~ 아주 엉망이었다. 우리는 평소 텐션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라 영상을 위해 억지 텐션을 냈고, 고프로 전원을 끄고 나면 급격히 기운이 빠졌다. 평소 쿵짝이 참 잘 맞는 우리인데... 이상하게도 고프로만 켜면 뚝딱거렸다.


고프로 전원을 마구 눌러댄 덕에 영상은 잔뜩 쌓였지만 우리 둘 중 그 영상들을 편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짝꿍은 글로 돈을 벌고 있었기에 종일 책만 읽고 블로깅하며 놀고 있는(?) 내가 편집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의무감에 편집 프로그램을 깔고 툴을 익혔다. 하지만 영상 편집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편집하는 내내 ‘얼른 책 읽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상 편집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면 나는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보니 영상 편집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촬영해 둔 영상만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고프로를 들고 문밖을 나섰는데 촬영 시작부터 합이 잘 맞지 않아 짝꿍과 투닥거렸다. 시무룩해진 내가 말했다.


“여보, 나 영상 찍는 거 안 절거워(안 즐거워)…”



짝꿍도 동의했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 고프로를 놓고 나왔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짝꿍과 손을 잡을 수 있었고 마음도 편해졌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마음껏 해보자며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시작부터 길을 잃을 뻔했다.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여행 유튜브’를 적어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내 마음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적은 것이었다. 나에게 여행 유튜브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도 우린 한동안 여행 유튜브에서 완전히 해방되진 못했다. '우리 여행을 영상으로 남기면 좋잖아… 여행 유튜브를 안 하기엔 좀 아쉬운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 지도 몰라...'라며 종종 고프로를 꺼내 들었지만 역시나 영상을 찍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이 시간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영상 기록보다는 텍스트 기록을 더 좋아한다는 것. 나는 여행하는 일상을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했다. 글로 여행 기록을 남기는 일은 재밌었다. 짝꿍도 영상을 위해 대본을 쓰는 것보다 자신만의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했다. 요즘은 텍스트보다 영상이 대세라지만 우리가 텍스트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유튜브는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6개월 차가 되어서야 핸드폰으로 1분짜리 여행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선택받기 위한 영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록용 영상이었다. 물론 알고리즘이 우리를 선택해 준다면 사양하진 않겠다... 하고 싶은 다른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짧은 시간을 들여 편집했다. 영상 편집은 은근히 재밌었다. 그땐 힘들었는데 왜 지금은 재밌을까? 그 이유는 당연했다. 그땐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이 나에게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


이것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난 우리의 첫 깨달음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세계여행을 한다고 해서 꼭 여행 유튜버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소소한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리아앤댄 유튜브 채널입니다. 구독자 4명(아마도 가족들이겠죠?)의 특별히 재미난 영상 하나 없는 채널입니다만... 호옥~시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겨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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