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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y 05. 2024

‘마음이 좋은’ 대화를 하는 법

일을 할 때 필요한 ‘항의의 기술’

어떤 일을 해결할 때마다, 모든 일은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 명의 사람과 마주하고 성실히 소통하고 마음을 전하는 것, 그것을 부단히 연습하는 일이라고요. 예기치 못한 사건과 문제 앞에서는 당혹해해도, 어쨌든 사람 앞에서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따뜻하자고 마음먹습니다. 그것이 늘 전화의 다이얼을 누르기 전에 잠시 숨 고르며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한 건, 이번 주에 있었던 어느 소통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본> 2쇄를 찍었는데 책등이 모조리 불량으로 인쇄되어 1000부 가까이 되는 부수를 다시 회수해 작업했습니다. 교환을 요청한 서점, 재고가 보관되어 있는 배본사, 인쇄소까지 소통을 마치고 빠르게 재작업을 했습니다. 그 후 다시 배송된 책을 열어본 순간, 이번에는 재단 실수로 인해 또 한 번 몇백 부나 되는 책을 또다시 판매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했습니다. 검수를 한바탕 마친 밤, 저는 화도 나고 속상했지만 그 기분을 계속 되새기는 대신 다음 날 인쇄소에 이 상황을 어떻게 전할까를 새벽 동안 천천히 고민했습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해결할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첫 회사의 사수가 해 주신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다“. 신입이라 긴장한 마음으로 형식적인 메일을 적고서 ‘이렇게 보내도 될까요?’하며 안절부절못해하는 제게 했던 말입니다. 메일도 결국은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니 긴장을 빼고 조금 더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보내도 된다고요.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의 책에서도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 좋은 인생 선배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서 어떤 일을 대할 때는 일 너머의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실은 저는 전화에 서툰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중국집에 배달 전화도 잘 못 거는 그런 류의 사람이에요. 당연히 항의 전화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요. 하지만 책을 출판하고 나니 모든 일이 사람과 전화해 해결해야 하는 일 천지입니다. 그중엔 기분 좋은 대화도 있지만, 이번처럼 속상한 기분을 전해야 하는 대화도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벌벌 떠는 아기 토끼 마냥 되어, 작은 심장을 밤새 꼼지락거립니다. 하지만 생각합니다. 아무튼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라고요. 손해라든가 거래라든가 하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연락을 하면 그 사람과 좋은 대화를 또 한 건 마무리할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다음 단계를 함께 맞이하자고요.


이는 비단 거래처와의 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랜드에서도 일하고 있는 저는 가끔 CS 전화를 받습니다. 브랜드 측의 실수나 착오로 인해, 다양한 항의나 문의를 주시는 소비자 분들을 만납니다. 불만족스러운 일과 속상한 기분을 전하는 방식에도 참 다양한 방식과 사람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분노와 속상함을 삼키며 사람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럴 때 제가 마음속에 되새기는 것은, 어떤 대화를 할 것인가입니다. 서로에게 무엇이 남는 대화를 할 것인지요. 대뜸 찾아가서 문을 발로 쾅 찰 것인가, 똑똑 노크할 것인가 고를 수 있습니다.


상대를 꾸짖지 말 것. 소통의 물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속상하지만 나의 이러한 기분을 원망은 빼고 담백하게 전할 것. 들어줬으면 하는 해결책과 제안을 담백하게 제시할 것. 이런 일에 있어 당신의 이러한 도움이 필요하며, 기꺼이 마음을 써 준다면 든든함이 생길 것 같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상황]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2) [기분] 그로 인한 감정과 기분을 담백하게 전하기.

3) [제안] 그래서 이런 대응과 해결을 원한다는 의향을 제안하기.

4) [감사] 그렇게 해 주면 내가 어떤 긍정적인 기분이 들 것 같은지 알려주기.


사람을 대할 때 갖출 수 있는 최선의 성실로, 진실되고 정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다음은 홀가분히 떠나보냅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도 나의 기쁨에 기꺼이 보탬이 되고 싶어 더욱 마음을 쓰고 도움을 주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대뜸 화를 내며 어떻게 해 줄 거냐며 상대를 상처 입히려고 하면, 상대 또한 방어적이 되어 서로 감정만 상한 채 문제가 해결되고 마주할 수 있는 좋은 풍경을 서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희도 마음이 좋네요.“ 그리고 다음 날, 통화를 마치면서 인쇄소 사장님이 하셨던 말입니다. 그러면 저도 해결책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됩니다. “저도 열심히 해서 앞으로도 책 더 많이 인쇄될 수 있도록 할게요”라는 말로 되돌려 드렸습니다. 분명 껄끄러운 기분을 얘기해야 하는 소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다 기분 좋은 상태로 전화를 마무리한 것입니다. 일전에는 브랜드에서 신제품을 제작하며 인쇄에 착오가 생겼을 때도, 인쇄소에 담판을 지으러 갔던 동료가 해 줬던 말입니다.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요. “무작정 우기면 나도 화났을 텐데, 이렇게 (차분하게 설명)하니까 해결해 볼 마음이 들었다”고 말입니다.


“마음이 좋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어떤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과 소통하면서 함께 마주해야 할 기분 좋은 ‘다음’이 아닐까요? ‘기본’이란 결국 어떤 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싶은가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의 방향과 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에 ‘기분 좋음’이 있는 것입니다. 기분 좋게 관계 맺으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까?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앞으로 서로의 마음에 무엇이 남는 대화를 쌓아갈 수 있을까요?


사건 대신 우선 사람과 마주하며, 때로는 어떤 마음을 어떻게 빚어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그런 소중한 소통의 연습을 거듭해 나가는 것. 그것은 비단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예측 불허한 사건의 집합체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거듭해야 할 귀중한 과제이자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많이 들고 서툴지만 어떤 세상과 사건과 사람을, 적이 아닌 편으로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조만간 중요한 소통이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이런 마음으로 준비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번 내게 필요한, 다정다감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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