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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an 10. 2022

돈룩업이 SF에 미국 얘기라고요? 한국은 어떻냐면요..

넷플릭스 '돈 룩 업'을 바라보는 한국 시청자들의 시각과 기후 문제 인식



넷플릭스 '돈 룩 업'이 입소문을 모으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극장에 같이 상영되면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독주하던 극장가에도 오랜만에 관객들이 괜찮은 선택지를 받아 들었다. 영화관이 아니어도 방구석 영화관에서도 감상하기 너무 좋은 영화로 부상했다. 영화 인기와 함께 내가 종사하는 일을 엮어 시사적인 목소리를 내보기 위해 글을 적는다.




나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효과적이고 보다 빠르게 우리 사회가 심각성에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을 가진 조직에서 일을 한다. '돈 룩 업'에서 소행성 충돌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위기감을 갖게 된 세 사람(랜달 민디 교수, 케이트 디비아스키, 오글소프 박사)이 영화 안에서 했던 여러 행동 중에서 정치, 언론 등 사회 일반에 위기를 알리고 대처를 촉구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던 그 행동이 평소 내가 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나의 업무와 '돈 룩 업'이라는 영화,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의 '돈 룩 업'과 기후변화를 인식하는 방식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어 글로 옮긴다.


극 중 심경이 공감될 수밖에 없었던 세 등장인물


영화에 등장한 미국 사회 전반은 주인공들의 메시지에 전혀 화답하지 못한다. 진지함 하나 없이 위기 인식과 대처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조소하고, 밈으로 소비하고, 더 나아가 영리적인 목적으로 변질시킨다. 기후 문제와 연관된 정치, 경제, 사회적 시사에 평소 무던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미국이 전반적으로 기후 문제에 회의적이거나 무관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지켜보고 느껴온 미국은 최고의 기후 대응 국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경제·문화·외교·군사적인 면에서 가지는 지위에 준할 정도로 기후 리더십을 갖고 인류의 미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가 2021년 바이든 대통령 당선 확정 후 공식 미 대통령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첫 발표는 파리협정 복귀를 알리는 것이었다. 파리협약으로 대표되는 기후 문제 참여와 대응 의지는 미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그럼에도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완전한 탄소중립의 관점에선 여전히 미국도 부족한 점 많고, 영화처럼 늑장을 부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 문제만이 아니다. 당장 2022년 기후변화의 결과로 어떤 방식의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전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온실가스는 쉴 새 없이 대기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어도 아무 행동과 대응에 나서지 않는 영화 속 사람들과 비유하는 게 그렇게 핍진성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기후 문제를 적극 인식하고 '돈 룩 업'을 기후 문제를 다룬 영화로 소비하고 있을까?

아니다. 우리나라 소셜미디어에서 '돈 룩 업'은 풍자와 비유로 가득한 코미디 영화 정도로 알려졌다. 그래서 영화 후기가 올라오는 국내 사이트, 커뮤니티를 돌아보면 공허한 구석이 생긴다.


한국에서도 '돈 룩 업'의 버즈량 파급력이 상당하지만, 기후 문제 인식 혹은 기후 문제에 대한 참여 의지나 실천까지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재밌게 봤든, 실망을 했든, 영화 리뷰는 대체로 탄탄한 배우진들의 연기에 대한 찬사, 블랙 코미디로써 '돈 룩 업'이 쌓은 업적, 연출을 한 애덤 맥케이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해설과 분석 등이다. 그나마 영화 내용에 구체적으로 가닿는 비평들도 대개 정치권력과 무능한 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그칠 뿐이다. 


영화의 메타포와 교훈이 궤도를 크게 벗어나버리면서 기후라는 두 글자를 어디서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 감독과 배우들이 여러 인터뷰에서 "여러분 이건 기후변화를 다룬 영화입니다"라고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겐 정치, 언론, 사회에 대한 일반론적인 주제 의식을 가진 영화로 인식된다. ('씨스피라시' 리뷰에 '바다', '해양'이란 단어가 없고, '기생충' 리뷰에 '양극화', '빈부격차' 단어를 찾기 어려운 것과 같은 건데. 아담 맥케이의 전 영화인 '빅쇼트'를 보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당시 타락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권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격.)


뭔가 디테일한 지점에 꽂히는 영화적 여운과 메타포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는 사람들만이 '돈 룩 업'이 단순히 '아마겟돈', '딥 임팩트'처럼 소행성의 지구 충돌이라는 SF적인 설정이 아님을 알아챌 것이다. 혹은 영화를 보고 나와 유튜브에서 영화를 검색하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코멘터리 영상에 도달하고 비로소 영화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하지만, '돈 룩 업'은 정치 풍자극도 블랙코미디도 아닌 기후변화에 임하는 인류 문명 전반을 까는 풍자극이다!


'돈 룩 업'은 종종 감정적인 장면을 넣어 돌직구로 메시지를 대중에 꽂아버리기도 했다


극에선 미국 대통령도 선거를 앞두고 소행성 충돌과 관련된 온갖 이벤트가 투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인간 종말보다 덜 중요한 이슈에 묻히고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런 모습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한국 사회와 충분히 오버랩된다. 부동산, 금융, 젠더-세대 갈등, 후보자 친인척 문제 등이 TV와 인터넷 미디어에서 뜨겁게 왈가왈부되는 주제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기후변화가 초래할 이전에는 없던 자연재해가 닥쳐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6번째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한국의 2022년 대선 정국에선 기후 문제가 무척 후순위에 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과 유권자들에게 기후 공약의 중요성과 정보를 알리려고 힘쓰고 있지만, 변변히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마주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유권자들과 대권 주자들이 아직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후보가 어떤 기후 공약을 들고 있는지 관심 갖는 유권자는 얼마나 있을까? 그 전에 유권자들이 기후 문제에 대한 계획에 얼마나 관심 갖는지 대선 주자들은 얼마나 신경쓰고 있을까? 


혜성이 육안으로 보이는 순간이 되어야 사람들이 "돈 룩 업" 대신 "룩 업"을 진지하게 외치게 된 것처럼 우리도 그럴까. 한국에도 이전에 겪지 못한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기록적인 홍수와 태풍이 닥쳐야만 대선 주요 쟁점이 되는 걸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당장 중요한 게 내가 집을 살 수 있는지, 내가 산 주식이 떡상할 수 있는지, 출산율이 줄어들고 저성장 시대에서 어떻게 더 장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론 그런 점도 납득 가능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멀리서 조망해보자. 나의 먹고사니즘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있다. 내가 최근 주변에서 직접 들은 두 이야기로 우리가 상기해야 할 지점을 갈음한다.



국내 벤츠 공인 서비스센터에서 차를 수리하는 일을 하는 친한 형이 작년에 결혼을 하고 오래지 않아 아이를 갖게 됐다. 출산 후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는 걸 보고 오랜만에 안부와 인사를 전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이 이름을 물었다. 이름은 '시은'으로 정했다고 한다. 한자 이름도 있는지, 뜻 풀이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는데, 난데없이 진지한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 '베풀다'라는 의미의 '시', '은혜'를 뜻하는 '은'을 쓰려고 했단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비롯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조차 온전히 살아가기 어려울 시기가 닥칠 텐데, 은혜를 베풀고 살라는 이름을 도저히 지어줄 수 없다더라. 그래서 그냥 한자 이름 없이 순우리말 이름' 시은'이라고 답했다.


KBS 다큐 인사이트 '붉은 지구' 제작 과정에서 도움을 드리면서 인연이 된 구상모 PD님과의 저녁 식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PD님은 암울한 현실과 나아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현실 세계를 조망하는 다큐를 제작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우울감에 빠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사는 동안엔 별일 없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작 기간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지노선이었던 그 생각에 반전이 찾아왔다. 기후위기로 위협받는 시대가 나의 삶을 너머 자식이 살아가는 시대까지 오롯이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돈 룩 업'을 보고 유쾌함으로 가볍게 영화 후기를 적고 싶은 분들에게 다큐를 추천드린다. 구상모 PD님이 슬픔과 황망함으로 괴롭게 편집한 '붉은 지구' 두 편이다. 


구상모 PD님이 연출해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큰 파급력을 준 '붉은지구' 4부작 중 1부. 기후 변화가 전 세계에 어떤 피해를 가져오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종합한다.
소행성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기후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와 난관을 담은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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