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유기 Apr 09. 2024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붕어빵

한바탕 신명 나게 늦잠을 잔 날이었다.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반갑게 인사하시는 택시 기사님에게 대충 고개만 끄덕인 후 시계를 응시했다. 지각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출근길 도로에는 사탕 발린 개미굴처럼 빼곡히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백미러 너머로 초조한 내 마음을 들킨 건지 기사님은 갑자기 핸들을 휙 돌렸다. 그리곤 자기만 아는 지름길로 가면 지각 안 할 수 있다고 호쾌히 웃어 보였다. 차 안에는 경로를 이탈했다며 으름장을 놓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사님의 비밀 지름길은 어느 대학교 앞을 가로질렀다. 삼삼오오 모여 웃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좀 전에 지나온 출근길에 비하면 훨씬 생기가 넘쳤다.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자니 기사님이 물었다.

“이 학교에 전해 내려오는 러브스토리 들어봤어요? 한참 옛날 얘기긴 하지만.”

남아있던 잠을 털어내고 귀를 쫑긋거렸다. ‘러브스토리’라고 거창히 이름 붙일 이야기라면 지루한 출근 시간의 요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기사님은 말을 이었다.

“여기 미대 다니던 여학생이랑 학교 앞에서 붕어빵 팔던 청년이 눈 맞은 얘기야.”


언젠가부터 학교 후문가엔 붕어빵 냄새가 풍겼다. 젊은 청년 하나가 붕어빵 포장마차를 연 것이다.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붕어빵을 팔았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청년에게 그 꾸준함은 유일한 무기였다. 그런 청년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커다란 화판을 어깨에 메고도 늘 환히 웃던 미대생이었다. 그녀는 비릿한 물감 냄새보다 포근한 붕어빵 냄새가 좋다며 매일 포장마차를 찾았다. 고난과 슬픔 따윈 가져본 적 없는 듯한 미소가 청년의 마음에도 훈기를 불어넣었다.


인연의 끈은 점차 매듭을 엮어나갔다. 청년의 포장마차에는 그녀가 그려준 귀여운 붕어 그림들이 늘어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붕어빵을 파는 날도 많아졌다. 후문가를 지나던 사람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눈치챘다. 하지만 누구도 축복하지 않았다. 여학생의 지도 교수는 촉망받던 제자가 볼품없는 남자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다고 소리쳤다. 부모는 붕어빵 포장마차를 뒤엎으며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전교생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결국 망가진 포장마차는 다시 문을 열지 못했다. 부모 손에 이끌려 간 그녀도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은 경로를 이탈해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사랑이 허락될 리 없었다.


“손님이 보기엔 그 두 사람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슬픈 전개에 당황한 나는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뇌에 빠졌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함께하기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달랐다. 붕어빵 기계가 가진 것의 전부인 남자, 부족함 없이 자신의 삶을 그려온 여자. 무게 추가 맞지 않는 관계다. 억지로나마 헤어지게 한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선 자꾸 행복한 결말을 꿈꿨다. 표면적인 조건으로 비난한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았길, 타인의 시선에도 힘들게 발견해낸 서로를 놓지 않았길 바랐다. 나는 천천히 기사님의 질문에 답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만의 길을 함께 갔을 거라고.


기사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곧 운전석에서 정적을 깨는 벨 소리가 들렸다. ‘마님’이라고 저장된 걸 보니 기사님의 아내분이신 듯했다. 전화기 너머로 다정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얼른 집에 와서 같이 점심 먹자는 이야기였다. 기사님은 지금 손님만 내려 드리고 점심 먹으러 달려가겠다며 웃었다. 입꼬리엔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참 좋아 보였다. 붕어빵 청년과 미대생의 러브스토리도 저렇게 아름다운 결말이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기대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다들 두 사람이 결국 헤어졌을 거라고 했는데 손님은 좋게 얘기해 주셨네. 그러니까 손님한테만 특별히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내가 그 붕어빵 장수예요.”

나는 놀란 토끼 눈이 된 채로 굳어버렸다. 겨우 눈을 깜빡이며 뒷이야기를 물었다. 기사님의 담백한 대답이 돌아왔다. 손님이 한 말마따나 우리 두 사람만의 길을 갔다고. 그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준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매일같이 붕어빵 굽던 꾸준함으로 그녀를 찾아갔고, 가족을 설득했고, 세상을 이해시켰다. 말하고 나니 쑥스러웠는지 기사님은 괜스레 핸들을 쥐락펴락했다. 그러면서도 붕어빵 팔아서 자식들 다 대학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깨너머로 자동차 키에 달린 인형이 보였다. 작은 붕어빵 모양이다.


빠른 길이라 정해진 경로는 타인의 발자국만을 바삐 뒤쫓아 만들어 낸 결과다. 이 길이 빠르다고 하니 따라가는 것뿐. 그것이 정말 내게 최선이었을지는 끝에 도달해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니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조금은 자유롭게 항해해도 괜찮을 것이다. 타인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만의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헤매어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닿기를 꿈꾸던 곳에 서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기에 빠져 있었다. 택시는 벌써 회사 앞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덕에 지각 걱정은 사라졌다. 자신만 아는 지름길이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기사님의 말이 맞았다. 기사님은 재미없는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며 나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이와 나눌 따스한 점심 밥상 앞으로 향할 것이다. 자신만의 경로를 따라서. 서서히 멈춰 서는 택시 안에 내비게이션 알림이 울린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전 05화 비둘기를 위한 나라는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