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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15. 2024

아빠의 자랑거리

 어버이날에 못 간 친정에 갔다. 동네 아주머니가 요즘 꽃게가 제철이라고 잔뜩 사셨다는 얘기를 듣자, 꽃게가 먹고 싶어진다. 찐 꽃게를 좋아하는데 못 먹은 지 한참이다. 꽃게 먹고 싶다는 딸 말에 당장 사러 가자고 아빠는 차키를 챙기신다. 차로 15분도 안 걸려 근처 농수산물시장에 도착했다. 대학 때 집을 떠나살긴 했지만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처음 가본다. 아이와 함께 각종 생선과 수산물들을 구경하니 재미있다. 여행 가면 늘 시장에 가서 구경하고 즐거워하는데 막상 재래시장은 자주 안 가는 것 같다. 사장님들은 휴일을 맞아 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을 호객하느라 열심이다.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는 연신 불러댄다.

"뭐 찾으세요, 꽃게 쪄 드려요. 싱싱해요."

막 돌아가신 꽃게와 주꾸미를 지나 싱싱해 보이는 살아있는 꽃게가 보인다. 인상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인원에 맞춰 2.5킬로 정도를 권해주신다. 가리비를 몇 개 더 주시겠다는 아주머니 말에 아빠가 엉뚱한 답을 하신다.

"인터넷 작가예요. 사진 찍어서 글 쓸 거예요"

아빠는 '얘가 글을 써서 서비스 주신 걸 널리 알릴 거다. 서비스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하시려던 듯하다. 그러냐며 반색하는 아주머니를 피해 가리비 사진 다시 찍어야겠다며 슬쩍 자리를 피한다. 30분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농수산물시장에서 나물도 사고 시장 안에 마트도 있어서 가보니 대용량에 가격이 싸다.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꽃게값은 돈 버는 사위가 냈다.

꽃게 철이라더니 알이 꽉 차 있다. 탱글탱글한 살을 열심히 파 먹는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에 손이 멈추질 않는다. 얇은 다리까지 쪽쪽 빨아먹으며 전투적으로 꽃게를 먹었다. 아빠가 까주던 맛살같이 두툼한 대게만 먹어본 아이도 직접 파먹는 게 재밌는지 열심인 모습에 온 가족이 흐뭇하다. 손에 밴 비린내가 비누로 박박 문질러 두 세번 씻어도 가시질 않는다. 오랜만에 먹은 꽃게라 꼬릿한 냄새마저 기분 나쁘지 않다.

익히지 않은 갑각류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게장이고 새우 초밥이고 모두 못 먹는다. 먹으면 입술부터 목 안쪽까지 가렵고 부풀어 오른다.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맛있는 거라며 두 번 세 번 권유하던 매너 없는 사람 때문에 보리새우 초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목 안쪽이 심하게 부어 밥알이 넘어가지 않아서 알레르기라는 게 무서운 거라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는 간장게장 홈쇼핑 광고만 봐도 괜스레 입술 주변이 가려워져 급히 채널을 돌린다. 그런데 그걸 익히기만 하면 이렇게 맛있다고 잘 먹는다는 게 조금 웃기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바닷가에 가서 먹었던 추억 때문에 좋은 건지, 진짜로 꽃게가 맛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가족들에게는 글 쓰는 게 어렵다고 하소연하며 작가임을 은연중에 각인시키는 것은 나다. 그런데 막상 바깥에서 작가라는 단어로 내 존재가 언급되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출간한 것도 아니고, 등단한 것도 아닌데 작가라는 이름을 써도 되는 건가 싶다. 출처 없는 명언을 내가 한 말인 양 갖다 쓰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쪄온 꽃게를 먹으며 머쓱했던 순간을 떠올리다가 순간 울컥했다. 오랜만에 아빠의 자랑거리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 자체로 아빠에게 기쁨을 드렸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는다. 계속 회사에 다녀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얘가 차장이에요, 이렇게 말하셨을까 궁금하다. 딸이 오랜만에 어떤 일을 신나서 하는 것이 기쁘셨던 게 아닐까. 그렇게 열심히 쓴 결과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셨던 것 같다. 출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돈을 벌고 있지 않지만 뭐 어떤가. 아빠께 자랑거리가 됐다는 생각에 어버이날에 제대로 효도한 기분이다. 브런치 작가 되기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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