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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Apr 24. 2024

11. 칼국수 맛집인데 수육이 예술이야.

70년 넘게 사랑받는 대전 둔산동의 [대선칼국수 본점]

  성심당의 빵 다음으로 ‘대전’ 했을 때 떠오르는 음식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했을 땐 칼국수다.

  대전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거나 단골로 다니는 칼국수집이 하나씩 있지 않을까 싶다.


  1954년에 문을 연 대선칼국수는 대전의 수많은 칼국수집들 사이에서도 단연 유명한 곳이다. 어렸을 적 식구들과 종종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12시가 막 지난 점심시간, 그때나 지금이나 식당 안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추억을 더듬으며 음식을 주문했다. 이 집은 칼국수도 맛있지만 내가 정말로 기대하고 있는 메뉴는 따로 있었다.


오삼두루치기 30000원

  가장 먼저 등장한 오삼두루치기.

  육지와 바다의 대표가 한 접시에 올라와 누가 누가 더 맛있나 겨루는 것 같다. 너무 맵지 않으면서 불향을 머금은 양념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 달달함도 느껴진다.오징어와 삼겹살도 물론 좋지만 풍성하게 들어있는 아삭한 양파를 계속 집어먹게 된다.


수육(중) 33000원

  곧이어 수육이 나왔다.

  사진으로 감출 수 없는 저 윤기를 보라. 고르지 않게 썰려있는 고기의 모양 때문인지, 아무렇게나 고기를 던져놓은 거 같은 저 투박한 플레이팅 때문인지, 다른 집에서 나오는 수육보다 오히려 더 맛있어 보인다.

  새우젓 찍어 한입. 부드러움과 쫄깃함, 그리고 담백함의 정도가 완벽하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도 좋았고 잡내도 전혀 없었다.

  대선칼국수의 수육은 감히 예술이라고 표현해 본다.


칼국수 8000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칼국수가 등장했다. 칼국수 위에는 쑥갓, 김가루, 깨 그리고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다.

  육수는 멸치를 베이스로 한 국물이었다. 엄청나게 특별한 맛이 난다고 할 순 없었지만 비리지 않았고 입에 맴도는 감칠맛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면발이 굉장히 탱글탱글했는데, 다른 칼국수집보다는 덜 넓적하지만 통통한 형태의 면이었다.


사리 2000원

  대선칼국수에서 직접 담근 열무김치다. 칼국수와 함께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오삼두루치기의 양념에 비벼먹기 위해 면사리를 추가했다. 여기에는 면을 비벼도, 밥을 비벼도, 그 무엇을 비벼도 맛있을 것 같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아직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차있었다. 벽면은 유명인들의 싸인과 사진으로 뒤덮여 인테리어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수육과 두루치기가 환상적인 칼국수 집. 그렇다고 칼국수가 이 둘에 묻히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선발투수와 4번 타자가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고 칼국수가 마무리 투수로써 팀의 승리를 지켜준 느낌.


  대전은 어쩌다가 칼국수의 성지가 되었을까?

  밥을 먹고 나오며 문득 그 배경이 궁금해져 알아보니, 때는 한국전쟁 이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원조 물자로 보내온 밀가루가 대전역 주변으로 모이게 되었고, 이를 가공할 제분소가 근처에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빵과 국수 같은 음식들이 대전에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우리 고장에 대해 배우며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수모를 겪고 있지만, 그래도 대전인으로서 난 내 고향이 참 좋다.


  어쨌든, 오랜 기간 대전인들에게 사랑 받아온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해 준 대선칼국수에서의 맛있는 한 끼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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