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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작가 Apr 22. 2024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엄마

#수필 6



"엄마 KTX 타고 서울 간다고 했잖아요. 혹시 예약했어요?"



"어~ 무정아. 그거 예약 안 해도 돼. 현장에서 입석할 수 있는 표 사면 갈 수 있어."



"네?? 서울까지 3시간인데, 서서 가겠다고요? 제가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어! 다리에 힘도 없으면서.."

"으휴 내가 예매해 놓을 게요. 좌석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 엄마 집 가서 한숨 자고, 내일 같이 기차역으로 가요"



"아이고, 기차표 사주는 거야 우리 딸? 알겠어. 고마워~"





  우리 어머니는 늘, 그래오셨습니다. 혼자서 모든 짐을 들추어 메고서, 혼자서 아등바등 해결해 오던 분이셨습니다. 타인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의지하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를 어릴 적에는 강인하고 대단한 어른으로 보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보는 어머니는 조금 외롭고 힘에 부쳐하는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통 얘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오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이에요. 그래서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몸이 어디가 아픈지, 오늘 왜 신경질 적이 었는지를요.





  어머니는 타인에게도, 가족에게도 빚지는 느낌을 싫어하셨고, 행여나 자신이 타인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까 봐 늘 두려워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이에 비하여 무엇을 배우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낍니다. 50대의 어머니이지만, 전자기기, 법, 정책, 학교 시스템 등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지식 양극화의 표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가난을 물려받으신 어머니, 아버지는 늘 '열심히' 살아 오셨지만, 실질적으로 '부'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모르던 분이었으니까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방법'을 그대로 전수받으신 겁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늘 그 자리인 이유가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저는 그러한 부모님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경스럽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러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다행스럽게도, '사고'를 할 수 있는 두뇌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신체와, 사랑스러운 부모님, 형제들이 제 곁에 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부모님의 남은 여생을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외적으로 강인했던 이유는, 내적인 결핍을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셨기 때문이었고, 어머니는 자식들로부터 '강인한 어머니'가 되기를 성공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되고, 부모님의 선택과 판단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어머니 또한 모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남동생이 친구의 에어팟을 훔쳤다가 친구 부모님의 신고로 경찰서에 출석하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저와 언니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혼자서 경찰서에 참석하여 합의금을 지불하고 오셨습니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정신적 피해보상금' 면목으로 무려 500만 원을 지불하고 말이죠.




  "무정아, 남동생 문제로 경찰서에 갔다 왔는데, 합의금 주고 잘 마무리했어."


  "경찰서요?? 어떤 문제로? 합의금 얼마나 줬어요?"


  "아들이 친구 물건을 훔쳤어. 에어팟이라고 하던데. 엄마가 돈이 없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500만 원을 부르더라고. 어쩔 수 없이 주고 왔지.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면 안 되잖아."



  "500만 원이요?? 30만 원짜리 에어팟 훔친 거 때문에 500만 원을 냈다는 게 말이되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가족들이랑 상의를 했어야죠. 엄마!!"




  놀랍게도 이 사건은 실제 사건입니다. 어머니가 500만 원을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오고 계신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저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모르는 부모님은, 시장통에서 만 원짜리 옷을 사서 20년을 입으시는 분들입니다. 옷에 구멍이 나면 꿰매어 입으시고, 유행이 뒤떨어진 옷도 절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브랜드고, 왜 좋은지도 모르면서 이모들이 안 입는 옷을 줬는데 브랜드 옷이라며, 아주 좋은 옷이라고 좋아하시는 분들입니다.





  아는 삼촌이 아버지에게 브랜드 지갑이라고 선물해 주신 것을 30년이나 쓰고 계시길래 확인해 보니 '없는 브랜드'였습니다. 시장통에서 산 지갑이었던 것이죠. 20년 동안 아버지의 실수를 연신 해결해 오며 어머니가 아득바득 모은 돈이 고작 몇 천만 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는 500만 원을 그렇게나 쉽게 지불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들은 당시, 어머니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후에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웠어.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옆에 두고, 제복 입은 경찰 두 명이 엄마를 마주 보고 있었거든. 피해자 엄마는 엄청 화가 나서 눈빛과 표정이 살벌한 거야. 엄마는 아들이 교도소에 가게 될까 봐 무서웠어. 아직 어린데, 교도소에 들어가면 어디서 뭘 해 먹고 살 수 있겠어?"




  어머니가 제게 자문을 구했더라면, 저는 관련 법을 모조리 찾아서 합리적인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남동생은 미성년자였고, 한순간의 실수로 교도소에 들어갈 정도의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500만 원이라는 돈은 너무 큰 금액이었으니까요.




  저는 어머니의 단독적인 결정에 화가 났다가도, 어머니 혼자 남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에 가슴에 쓰라립니다. 그 낯선 곳에서, 가해자의 신분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아들을 보호하려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엄마, 다음에는 돈 나갈 일 있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꼭 저한테 전화해요. 딸내미, 엄마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다고! 알겠죠?"



  "응, 알겠어. 우리 딸 든든하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동생의 과실로 인하여 사업장에 큰 피해를 준 사건에 대하여 어머니가 사장님과 면담을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저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 하여튼, 사고뭉치 남동생이 문제입니다 -




  우리 어머니는 50년 동안 인생에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던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라난 환경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지 못하셨고, 성년기에 만나왔던 남자들은 어머니를 돕기는커녕, 자기 앞가림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저희 아버지 또한 뒤늦게 정신 차렸습니다 - 저는 그토록이나 든든하고 넓은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불안과 외로움에 긴장하고 있던 어머니의 표정을 알아차렸습니다.




  "엄마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딸내미 뒀다가 뭐 하려고!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저는 기도합니다. 어머니가 전적으로 저를 믿고, 남은 인생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울 수 있기를요. 더 이상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원망은 내려놓고, 안 좋은 기억을 덮어버릴 만큼의 행복한 기억을 잔뜩 만들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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