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든밍지 Apr 17. 2024

오늘부터 4는 행운의 숫자입니다

3일 배양 vs 5일 배양? 4일 배양!

  사주, 타로, 각종 미신들을 꽤나 믿는 편이다. 대학원 진학, 결혼, 휴직 등 인생의 나름 중요한 대소사를 앞두고 용하다는 점집이나 타로카페를 찾아가곤 했다. 내가 생각한 방향과 같은 말을 들으면 내 결정에 왠지 확신이 섰으며, 의견이 다르다면 그중에서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기도 했다.


  별로 용한 곳이 아니라며,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이 나올까 싶어 다른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답정너이면서도 유난히 팔랑대는 얇은 귀는 듣고 온 말은 꽤 오래 기억하는 편이기도 했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 전에도 여지없이 타로카페를 방문했더랬다. 타로이스트는 마치 보기라도 한 듯 내 지난날을 줄줄 읊어댔고, 앞으로의 앞날을 예언하듯 말하기도 했다. 가장 궁금했던 언제 임신이 될지를 묻자, 타로이스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다고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7월에 가족운이 있다고 말했다.


  1년은 12달, 그중에서도 겨우 한 달? 타로를 봤던 시점은 연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전까지는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막상 성과 없이 7월이 다가오자 그 타로점이 생각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막상 배아이식 시기와 맞물리기도 해서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고, 그 이후부터는 사주 타로 가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유난히 한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는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긴다.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나. 나도 그래서인지 행운의 숫자인 7을 좋아했지 4라는 숫자에 대한 알게 모르게 거부감이 있었다. 시험에서도 찍어야 되는 문제가 나오면 4는 왠지 꺼려졌던 게 그 이유 탓이었으리라.


  난자 채취 후 10일 정도가 지났을까.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난자 채취에 대한 배양 결과에 대한 내용이었다. OOO님의 배양 결과는 '4일 배양 1개'입니다. '4일 배양?' 처음이었다. 그동안에 3일 배양 배아만 계속 나왔었고, 의사는 5일 배양이 목표라고 했는데...? 나 모르게 그 어디에서 협의점을 찾은 것인가.


  3일 배양 배아나 5일 배양 배아가 보편적이기에 4일 배양 배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정보를 좀 더 찾아봤다. 2일 배양 배아나 6일 배양 배아를 이식했다는 후기도 꽤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4일 배양 이식 후기, 4일 배양 성공 등 4자가 들어간 글만 눈에 들어왔다.


  아마 5일 배양을 하려고 했으나 버티기 어려웠던 거겠지. 난자 채취는 2개를 했지만, 최근 3번의 난자채취에서 수정란이 되는 건 1개뿐이었다. 이 정도면 과배란을 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나 싶었다. 5일 배양 배아가 목표라던 의사의 그 말을 내심 믿고 있었는지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분명 그전까지 나왔었던 3일 배양 배아보다는 좋은 배아임에도 말이다. 물론 3일 배양 배아였거나, 수정란이 하나도 없었다면 분명 실망감과 패배감에 젖어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기도 했다.


  앞서 2번의 이식 모두 배아 2개를 모아 이식했다. 첫 이식 때는 쌍둥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 한 개를 넣어야 할지 두 개를 넣어야 할지 고민을 열심히 하던 시기도 있었다. 결국 2개를 넣었지만, 모두 다 착상에 실패했다.


  그때 깨달았다. 현실적으로 나는 쌍둥이를 임신할 확률보다 둘 중에 하나라도 착상될 확률이 더 희박한 환자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임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곧 내 선택지였다. 그 이후부터는 고민하지 않는다.


  2개를 이식하는 게 확률이 더 높았기에 이번에도 1개를 더 모아야 했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고, 무리가 없으면 연속으로 채취를 하자고 했다. 극난저 환자라 채취개수가 많지 않아 괜찮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번 병원에서는 채취개수가 아무리 적어도 한 주기는 쉬어갔는데 이 병원은 연속 채취가 가능하다니. 빨리 2개를 모아 이식해서 시간을 줄이자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씁쓸했다. 극난저에게 쉬어갈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이번 주기의 나의 성적표를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병원을 바꾸고, 과배란 주사 종류와 용량을 세게 맞았는데도 채취 개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수정란 개수도 역시나 동일했다. 병원을 중간에 바꿔서 스트레스를 받았나. 운동이 너무 과했나 또는 부족했나. 그래도 3일에서 4일 배양 배아로 하루 늘어났다는 건 난자 질이 좋아진 거라고 생각하고 만족해야 하나.


  그렇다면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에 10만 원인 비싼 주사를 4일이나 맞아서일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습관 때문일까. 영양제를 추가한 영향일까. 한큐주스의 효과인가 등등.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지난 주기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곱씹으며 어느새 다음 채취를 준비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온갖 생각을 머리를 흔들며 털어낸다. 이제부터는 4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시험에서도 찍지 않은 불길한 숫자가 아닌 행운의 숫자다. 처음 만난 4일 배양 배아는 분명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다음번 채취에는 4일 배양 배아보다는 5일 배양 배아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데 뭘 더 해야할까.

이전 11화 뛰는 놈, 나는 놈 위에 운 좋은 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