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든밍지 Mar 06. 2024

삼신할매를 찾아 떠납니다

1년의 여정 끝, 전원을 결심하다

  잉어빵이나 호떡은 지나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곳에서 종종 사 먹는다. 군침 도는 비주얼에 이끌려 선뜻 지갑을 열지만, 보이는 것보다 맛이 없는 경우는 꽤 많다. '아.. 망했다. 다음에 가지 말아야지.' 하며, 꽤 쿨하게 넘기지만, 내 쿨함은 딱 이 정도까지이다.


  여행을 가도, 집 근처에서 외식을 해도 나름 핫하다는 맛집은 꽤 찾아가 보는 편이다. '그냥 보이는데 들어가서 먹지.'는 거의 없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이 집, 저 집을 검색하고, 메뉴판 정독에... 리뷰까지 꼼꼼히 살펴본다. 실패 확률을 줄이고 줄인다. 이런 내가 병원을 간다면? 더 철저한 정보 조사는 필수다.


  1년에 한 번 받는 스케일링을 하러 가는 치과에 가는 것도, 단순 감기로 약을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길고 긴 레이스가 될 난임 병원을 선택하는 꿀팁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명대사,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며 족집게처럼 병원을 골라주는 코디네이터가 있었으면 했지만, 현실에서 믿을 건 나의 손품뿐이었다.


  1년 동안 원래 질환으로 다니던 대학병원 난임클리닉을 다녔다. 집 근처도 아니었으나, 낮은 혈소판 수치 탓에 시혐관 시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수혈 등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담당의사의 추천이었고, 나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1년 동안 성과 없이 실패가 계속되자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초반부터 옮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원래 다니던 병원은 과배란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주사기를 챙겨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필 주말이라 병원과 약국은 전화도 되지 않았다. 마음 졸이며, 주사기를 찾아 헤맸다. 배아를 1개만 해동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2개를 같이 얼렸다고 해서 모두 해동해야 했다. 힘들게 모은 배아였지만, 남은 1개를 다시 동결하기에 상태가 안 좋다고 폐기한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지원금 정산이나 담당 의사의 잦은 교체, 정보 제공의 질 등 소소하지만, 마음 상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만큼 오래 다녔기에 쌓인 울분(?)도 많은 것이었으리라. 물론 결과가 좋았다면 모든 것은 극복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아니 병원 탓이오...'를 반복하다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병원을 찾는다는 건 나같이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이 쉽지 않다.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어 규모가 어느 정도 큰 병원이어야 했으며, 이미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 시작했는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병원에서도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인 나를 굳이 받아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초반에 난임진단을 받았던 집 근처 병원도 규모가 큰 유명 병원이었지만, 시험관 시작 전, 혈소판 관련으로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요청했던 적이 있어 괜히 병원을 나왔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시험관 카페의 후기글, 친구, 친구의 친구, 직장동료, 남편의 지인 등 '~카더라' 통신을 돌려 며칠 동안 몇 군데의 병원을 추렸다. 병원과 의사마다 쓰는 약도 제각각이다. 환자마다 맞는 약이 다르기에 달리 처방하겠지만,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야 했고, 난자채취와 배아이식에는 소위 말하는 손기술도 엄청난 역할을 하기에 그런 의사가 있는 병원이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배양기술이었다. 1년 내내 3일 배양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난자의 질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배양기술이 좋은 병원으로 바꾸고 나서 갑자기 5일 배양이 나왔다는 후기도 꽤 많았다. 그럼 병원의 규모나 시설이 크고 좋아야 할 것이므로 소위 말하는 메이저 병원으로 가야 했다.


  위치도 꽤 중요하다. 한 주기가 시작되면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을 가기 때문이다. 원래 다니던 병원이 가깝지 않아 대기시간과 더불어 이동시간에 진이 빠졌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병원도 끌리긴 했다. 하지만, 연가를 따로 쓸 수 없는 남편의 직업 특성상, 병원에 올일이 주기마다 단 1번뿐이여도 남편의 회사 근처와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자주 가게 될 나보다도 메이저병원이면서 남편의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마침 그 병원은 엄청난 대기를 자랑하기로 악명 높았다. 삼신할배라 불리는 유명한 의사의 예약일은 3개월 뒤에나 가능했다. 일단 예약을 해두고, 며칠 동안 틈틈이 들어가 봤다. 다른 의사로 예약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다행히 다음 생리 주기와 비슷한 시기에 누가 예약을 취소했는지 빈자리를 운 좋게 예약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병원에 들고 갈 서류를 준비했다. 영상 CD를 챙기고, 100장이 넘는 의무기록을 발급받았다. 서류봉투 안에는 알 수 없는 의학용어들이 가득 찬 1년간의 기록들로 들고 있는 손도, 읽어가는 마음도 무겁기만 했다. 왠지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으로 미련 가득한 눈빛을 (전) 병원에 보내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유명 맛집에서 오픈런, 웨이팅은 아주 흔한 일이다. 하나 같이 맛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몇 시간을 견딘다. 유명 병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병원이 나에게 성공을 가져다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불편함을 감수한다. 과연 이 병원이 나한테 맞을 것인가. 남들의 결과가 좋았더라도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단은 가보자. 경험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오래된 관계에는 모름지기 변화가 필요하고, 부디 내가 최선을 다해 찾은 그 병원이 내 입맛에 맞는 맛집이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삼신할매도, 할배도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아 직접 찾아 떠나보련다. 내가 찾던 그분이 맞겠지?

이전 05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