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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Apr 29. 2024

내가 열정페이를 열정페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

“너 그렇게 일해서 얼마 벌어?”

“세상 돈은 니가 다 버는 줄 알겠다”

대기업 다니던 친구가 야근과 주말 업무가 일상인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주52시간 근무, 생리휴가, 야근수당 등이 어느 정도 체계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라떼는’ 이런 것들이 전무후무했다. 연차도 월차도 체계가 없이 돌아갔다. 일 할 사람은 적은데 영화는 끊임 없이 개봉했고, 드라마는 공중파와 종편, 케이블까지 일주일에 몇 십편이고 방송했다. 거기에 종종 배우들이 출연하는 예능까지 합하면 일주일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거의 다 섭렵하기도 한다.


모니터링은 엔터 홍보 업무 루틴의 중간쯤에 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대본 보고 홍보 전략도 세워야지, 구체적인 아이템들 실행안도 짜야 되지, SNS 관리며 부가적인 콘텐츠 기획까지 아이디어는 계속 나와야 한다. 모니터링이 끝나면 초안 잡아둔 보도자료 수정하고 시청자나 관객들 반응도 살펴야 하고, 보도자료 릴리즈도 한다. 릴리즈가 그럼 끝이냐? 기자들에게 내 배우, 내 작품 잘 봐달라 연락도 돌리고 매체마다 미팅을 잡고 라포도 형성해야 한다.  


매 작품마다 이런 과정들을 반복하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 엊그제 첫 방송을 시작한 것 같은데 눈 깜짝하면 종영 기획 글자료를 쓰고 있게 된다. 처음 영화 홍보로 일을 시작했을 때 대표님이 “영화판 시간 빨리 간다” 하셨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엔터 업계의 시간은 체감이 빠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생활 즐길 시간 없이 일을 했는데 이 일의 프로세스를 모르는 친구는 ‘너 혼자 돈 버냐’는 말로 내 자존심을 콕콕 찔렀다. 연말이 되면 그 아이는 상여금을 몇 백 퍼센트 받았다고 자랑했다. 나는 내 열정페이 속의 열정을 다시 되돌아봤다. 해가 바뀌고 연차가 쌓여도 내 상황은 그대로겠다 싶었다. 그래도 일이 좋았다. 처음 같은 열정은 없어도, 이제 더 이상 20대가 아니어도, 전 같지 않은 체력으로 힘에 부치는 업무들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어도 나는 일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일은 사장처럼 했어도 그걸 ‘열정페이’라고 후려치고 싶지가 않다. 일을 하며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방법을 통달했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획력도 얻었으며 쉽게 경험해보지 못할 내로라 하는 배우들과 함께 일했다. 내가 쓴 글자료가 기사화 되어 메인에 걸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왔고, 한 작품 두 작품 커리어를 쌓아가며 보람도 느꼈다.


그때 열정적으로 일해서 받은 페이가 내 열정과 맞바꾼 것이라면 내 것도 열정페이가 맞지만, 더 귀중한 것들을 얻었고 결국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 누군가 열정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것만은 꼭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다. 돈 대신 무엇을 얻고 있는지, 돈으로도 못 살 무언가를 얻고 있는지, 그게 앞으로 10년뒤에 당신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당신도 당신의 몸값을 열정페이라는 단어 따위로 후려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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