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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24. 2024

한국 안 갈래요 다이빙 강사 할래요

다합을 떠나기 싫었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


다합의 일상은 똑같았다. 매일 세 번의 스쿠버다이빙이 끝나면 라이트하우스에서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는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같이 밥도 먹고 게임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다이빙을 하고 쉬는 시간이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가명) 강사는 나에게 질문을 한다.


"헤바씨는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어?"

"저는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게스트하우스에는 사무직 일과 다이빙 강사가 필요했다. 사무직으로 일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밥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되었다. 직장 생활은 또다시 취업하면 되겠지만 답답한 사무실로 되돌아가기 싫었다. 혼자 세계여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한국이 아니어도 다양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직장을 퇴사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준 강사에게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준 강사라면 조언을 잘해줄 것 같았다. 그도 우연한 기회로 다이빙 강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합에서 다이빙 강사하면 어때요?"

"삶의 활력을 되찾았어요. 일단 매일 바닷속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또 교육생이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그런 부분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죠. 첫 학생인 헤바씨가 다이버가 돼서 더 뿌듯해요"


민 강사는 또다시 나에게 말한다.


"그럼, 헤바씨도 다이빙 강사 해보는 건 어때?"


직장 생활할 때 사무직 일은 나와 안 맞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직업을 바꾸는 일은 신중하게 고민을 해야 되지만 나에게 온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레스큐와 다이브 마스터를 해야 한다. 마스터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생활비가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돈보다 직업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이집트 다합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네! 저도 다이빙 강사 해볼게요!"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블루홀에서 다이빙을 끝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민 강사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레스큐와 다이브 마스터 신청을 했다. 다시 돌이 킬 수 없다. 이 사실을 준 강사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강사님! 저 방금 마스터 신청했어요"

"결정 잘했어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요"


환화게 미소 짓는 그의 미소를 보며 또다시 심쿵했다. 앞으로 그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의 말대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볼 수도 있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도 있다. 같은 분야에 있으면 서로 잘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물여덟.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고 도전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쉬운 듯 어려운 듯 중성부력


다이빙은 배울수록 흥미로웠다. 부족했던 중성부력을 매일 연습했다. 쉬운 듯 어려운 듯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몸으로 익힌 결과 어느 순간부터 호버링이 익숙해졌다. 가만히 있는 자세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거 마냥 평온했다.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했다. 내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또한 핀(오리발)으로 킥하는 자세도 연습했다. 갈길이 멀지만 핀킥만 연습해도 초보 딱지를 뗀 것 같았다. 낮에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연습하고 밤에는 다이빙 이론 공부를 했다.


준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삶에 활기를 되찾았다는 말에 공감 되었다.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 경험을 알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수중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한국 항공권을 취소하다


2013년 7월. 80일 동안 튀르키예와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집트 다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이다. 다합에 온 지 10일 만에 푹 빠져버렸다.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 스쿠버다이빙도 좋았고 무엇보다 준 강사가 있어서 더 좋았다. 


"언니~ 한국가지 말고 나랑 같이 더 있자!"


은서(가명)가 붙잡아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다합을 떠나기 싫었다. 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보고 싶었다. 그곳이 다합인 것뿐이다. 준 강사에게 노트북을 빌렸다.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취소했다. 이로써 다합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말을 증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들린다.


"헤바야! 멋지다!"

"너 비행기 표 취소했다며?"

"언니~ 잘했어. 나랑 같이 놀자"


그리고 준 강사도 한 마디 했다.


"헤바씨는 의외로 결단력이 빠르네요. 우리 잘 지내봐요"


'잘 지내봐요?', 그냥 인사치레 말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를 계속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날 밤. 다 같이 모여서 맥주 파티를 했다. 살짝 취한 밤. 다합의 별을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나는 한 여름밤의 꿈에서 깨지 않기로 했다.


다합 블루홀. 다이빙 강사 하겠다고 결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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