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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몰뚜뚜 Apr 21. 2024

04) 집 고르는 첫 번째 기준, 집들이하기 좋은가?

집들이하기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큰돈을 대출로 빌리겠다고?"
"잘 알아본 거 맞아? 정말 괜찮아?"
"너무 욕심부리면서 살지 마라."
"우선 전세부터 시작해서 늘려가는 건 어떠니?"



나와 L 둘의 부모님 모두 처음에는 당연히 많은 걱정을 하셨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그냥 집 하나 사주시면 제일 좋았겠지만!(농담의 농담의 농담) 무탈히 쌓아온 우리의 그간 행적과 미래에 향한 패기 넘치는 프레젠테이션을 보시고 우리가 가장 잘 보이는 응원석으로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앞으로 펼쳐질 흥미진진한 쇼타임을 즐겨만 주시라!



사실 무엇보다도 걱정이라는 것을 해볼 만한 시간 자체가 없었다. 집을 사겠다는 자유 선언 후, 집 보러 다니다가 바로 집을 사버렸으니까.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당장 그 다음 달에 계획된 나의 제주 한달살이 때문이다. (L과 신혼여행으로 가는 게 아니다. 같이 퇴사한 친구랑 놀러 가는 거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가 실거주할 집을 찾아다녔다. 부동산에 대해선 아직은 하얀 도화지인 나와 나보다는 정말 미세한 차이로 연필이라도 살짝 잡아본 L. 하지만 우리에겐 끝없이 솟구치는 무한한 열정 바구니가 있다. 또한 계속 말하지만, 나는 제주도로 곧 놀러 가야 하므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진짜 무서운 건 제주 태풍이지, 집 사는 거? 대출? 뭐 대수야? 자연이 제일 무서운 거야!



임장 첫날에는 대체 뭘 어떻게 봐야 할지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공인중개사 소장님의 안내를 따라 TV 보고 계신 세입자분께 쭈뼛쭈뼛 인사하고, 이곳저곳 불 켜보며 살펴보는 게 너무 쑥스러웠다. 하지만 2곳정도 더 둘러보니 민망함 따위는 모두 사라졌다. 집을 둘러보는 시간은 보통 10분 이내로 짧으면 정말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또한 빈 집이 아닌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은 함부로 내부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때문에 그 소중한 순간을 허투루 써버릴 수 없다고! 무엇을 봐야 할지 조금씩 윤곽이 잡혀갔다.




그전까지는 둘 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딱히 없고, 우리가 대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 건지도 잘 몰랐다. 우선 우리는 집에서 가족,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여 재밌게 놀고 싶었다. 맛있는 거 잔뜩 먹으면서 실컷 떠들고 놀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집들이하기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사실 잘 모른다. 난 집들이도 별로 못 가봤단 말이야! 친구들 자취방 혹은 비싸지 않은 호텔이나 파티룸에서 배달 음식 잔뜩 시켜 먹는 게 제일 재밌고 행복한 순간이다. 그거 말고는 더 모른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과 그간의 소소한 경험 및 상상력을 보태어 자유로운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1.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교통이 편해야 한다.

a) 위치 자체가 수도권에 있어야겠네.
b)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과 가까워야겠군.
c) 자동차로도 왔다 갔다 하기 편해야겠어.    


2. 음식을 잔뜩 풀고 먹어야 하니 테이블이 넓어야 한다.

a) 8인용 테이블을 사서 집의 중심으로 둬야지.
b) 거실에 대형 TV랑 큰 소파를 두지 말고 전체 다이닝 공간으로 만들어야겠군.
c) 식재료, 간식, 술 등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주변에 마트, 편의점이 많아야겠어.


3. 모두가 편안히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a) 낮에는 햇살이 밝게 들어오고 저녁에는 야경이 보이면 딱 좋겠군.
b) 절대 낡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면 안 돼.
c) 화장실이 항상 깨끗해야 돼.  



(함께 모여 브런치를 즐긴 12월 어느 주말 오후)



이렇게 하나하나씩 이전에는 없던 우리들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탄생할 진짜 [우리집]에 대한 기준들이 세워졌다. 다 같이 모여 편히 놀기 좋은 집, 둘이 있을 땐 함께 더 찬란한 미래와 더 재밌는 집들이를 꿈꿀 수 있는 집.




커피를 좋아해 취미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딴 나지만, 카페에 앉아 편히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무작정 뛰어다녔다. 나와 L은 3주가 채 안 되는 기간에 함께 20개가 넘는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L은 혼자서도 이곳저곳을 더 다니며 대략 50개가 넘는 집을 가봤다. (같은 아파트의 다른 평형 타입을 포함한 대략적인 추산치다.)많이 본 건지 적게 본 건지 그 기준은 잘 모른다.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더워도 너무 더웠던 그해 여름, 드넓은 아파트 단지들을 누비며 L은 살이 아주 쭉쭉쭉쭉 빠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만났다.
쭉쭉쭉 빠진 L의 살을 다시 찌워줄,
우리의 포근한 보금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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