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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09. 2024

사나이 우는 마음

아버지의 빵

 아버지께서 막걸리 한잔을 걸쳤다 하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시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차마 대문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마당가를 서성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아이고, 동네 챙피해서 못살것다. 술을 처먹으려면 곱게 쳐드실 일이지,  동네 우세는 다 시키고…. 야, 야~ 막내야 ~네가 얼릉 좀 나가 보거라.”


‘칫, 엄니가 창피스러우면 나도 창피스러운 것인디. 어리다고 왜 나만 시켜쌌는대. 나도 알 것은 다 아는 나인디...’


 뒤따라오는 누렁이에게 맥없이 화풀이를 해대며 어둑한 고샅길을 걸어 나오면 저 멀리 아버지의 희미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비틀비틀 팔자걸음에 분명 앞으로 걸어오는 듯한데 뒷걸음을 치시고... 분명 걸어오는 것은 맞으신데 도통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돌고만 계셨습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 용케 몸을 가누시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 싸~~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울~~지를~~말어~라~~~아~~~아~~~아~~~아~~ 갈대~~의 ~순~정~~.


 계속 '싸~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 가 아~~랴~~' 이 가사 만을 무한 반복하시며 부르시다가 목이 갈라져 쿨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 손으로는 광덕이네 담벼락을 짚으면서 뭐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시곤 했지요.

가만 들어보니,


" 촌에서 농사짓는다고 날 무시혀! 니 놈은 그렇게 잘 나서 노가다 일을 하냐? 이 어린놈의 짜식아! 난 마누라도 있고. 애들도 공부잘한단마~ 까불지 만마.

~우리 자석들 크면 너 같은 놈 밑에서 일한단마~~ "


새파랗게 젊은 공사장 반장이 오죽이나 미웠으면  술 자시고 들어오시면서 저런 말씀은 다 하실까, 싶지만 이 집 저 집에서

개들은 왈왈 짖어대고  광덕이도 나오고 길자도 나오고 오늘따라 하필이면 보름달은 밝고…. 정말로 쪽팔려 죽을 맛이었습니다.

마당가에서 아버지와 마중 나간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타들어 갔을까요?


 추수가 끝나고, 땅이 얼어붙으면  봄이 오는 넉 달 여 동안 아버지는  아파트 짓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셨습니다. 어둡고 시린 새벽에 허름한 노동복 차림으로  첫 버스를 타고 공사 현장에 도착하면,  벽돌을 짊어지고서 5층 높이(70년대 말, 00시 첫 주공아파트 현장)까지 져나르는 일을 하셨지요.  


새참으로 받으신 보름달 빵을 드시지 않으시고는 오르락내리락  온몸이 부서져라 벽돌을 나르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어둑한 오밤중에 들어오시곤 하셨습니다.

철없는 막내딸은 아버지가 오시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요.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보다 그림자가 한 발 앞서 마당에 들어서 아버지의 지친 몸을 먼저 살피는 게 아니라 도시락 가방부터 냅다 잡아채고서는 뒤적거리며  빵이 있나, 없나를 살폈지요.  마당가에 선채로  빵 비닐을  뜯자마자 걸신들린 아이처럼 입안으로 우걱우걱 삼키면서

 

"아부지, 아부지는 빵 싫어혀?

난 이 세상에서 빵이 젤 좋은디..."


아버지는 버르장머리라곤 눈곱만치도 하나 없는 막내딸이  뭐가 그리 이쁘다고  시멘트 먼지가 가득 찬 쇤 목소리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아부지는 목멕혀서 빵 싫어 혀.

 우리 딸이나 많이 먹고 공부 잘 혀라."



사회 초년생으로 의 밑에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팽이 돌듯 하다가 쓰러질 즈음, 간식으로 내어 주는 초코파이 한 개가 얼마나 꿀맛인지, 그 달달한  한 입으로도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아 마지막 한 조각은 아껴서 입에 녹이곤  하였습니다. 울 아부지도 그냥 드시면 되는 것을, 빵에 눈독 들이는 딸내미 눈치가 보여서 차마 먹지를 못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낡은 도시락 가방 속에  한 개의 빵.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에 밀려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꾸준히  판매되고 있 삼립 식품 빵들을 보면 눈물이 나서 차마 집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철딱서니가 없다손 치더라도 한입이라도 떼어서 아버지 입에 억지로 넣어주고, 어머니 입에도 넣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예쁜 딸이었을까요? 한 입을 덜어주지 못해서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버렸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했던가요. 술에 취해 담벼락을 짚으며  반장아저씨 욕을 하시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정확한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노래를 그렇게 울부짖듯 부르셔야 했는지를. 그리고 그때는 진정 몰랐습니다. ‘사나이 우는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제 저도 무람하게도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가장의 눈물, 사나이의 눈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남의 밥 먹고 사는 슬픔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발 알아서 그만두었으면 하는 꼿꼿한 관리자의 눈살을 마주하면서도 굴욕적인 밥줄을 놓지 못한 저의 처지처럼, 울 아버지도 반장아저씨의 굴욕을 참으며 공사판 일을 하셨겠지요.

 함께 일 하던 동료들이 새참 빵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빵봉지를 뜯을까 말까 무수히 갈등하고 또 갈등하다 돌아앉아  달달한 빵의 유혹을 독한 담배로 대신하셨을 나의 아버지.


그 뒷모습을 어린 제가 보았더라면 아버지의 빵에 절대로 눈독을 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어느 자식이 막노동, 새참으로 나온 단 한 개의 빵을 감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을까요. 저 역시나 아버지처럼,

"목멕혀서 먹기 싫혀."

다시는 남겨 오시지 말고 아버지 다 드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남겨 오는 빵 한 개가 이토록 가슴 아프게 남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공부 잘한다'는 자식들 중 한 사람이라도 출세와 성공을 했더라면 아버지의 고생이 보상되고도 남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더더욱 시퍼래진 작업 반장의 눈길 속에서 쇠잔해질 때까지 농사일과 막일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자식들에게 헌신하며 흙과 막일 속에서 평생을 지내오신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면 지금은 백번이라도 정중히 술 마중을 나갈 터입니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서 공부를 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꼭두새벽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공사판 일을 떠나는 가장을 위해

 따순 밥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퇴근해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씻을 물을 대야에 준비하시던 나의 어머니. 돈 벌어다 주는 가장을 극진히 공경하며 고봉밥을 그득하게 올려놓으시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반찬들로 한 상 차려내시던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머니를 그대로 보고 워서 지금보다 더 착하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참사람으로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 어린양을 다  받아주시던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지금, 나이만 먹은 거짓 어른이 되어 제 스스로 마음을 곧추세우며 어루만지며 다독이며 살려하니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리곤하였습니다.


이 세상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세상살이가 서러울수록 어른노릇 가장노릇이 너무 힘들어 부모님 무덤가에라도 찾아가 온갖 설움을 맘 놓고 쏟아내며 통곡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빵이 무어라고, 이젠 제가 울컥 목이 멕혀서 입에 대지를 못하고 있네요.


새파랗게 젊은 반장에게 온갖 핀잔을 들어 가면서도 일자리 끊길까 봐 차마 대놓고 싸우지 못하고 '우리 자석들 공부 잘하니까 크면 보자' 며 큰소리치시던 아버지의 희망은 그저 술 먹은 사람의 술주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공부 잘한다는 자식들 중  막내딸이라도 출세와 성공을 이루어 아버지의 막일로 얻어 낸 빵값을 갚았어야 는데 갚기는커녕 절간으로 숨어 들어가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네요. 


그 후로도 아버지는 매번 술을 드시고, '사나이 우는 마음'을 목놓아 부르셨으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향해  중얼거렸지만 '공부 잘하는 자석들' 이야기는 점차 사라지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돌아오시곤 하셨습니다.


 가난한 가장으로써 처자식 앞에서  울지를 못하시고, 술김을 빌어 노래 가락 속에  눈물을 숨기며 부르셨을 테지요.  현기증으로 쓰러질 듯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벽돌을 져 나르는 도중에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눈물도 함께 닦으셨겠지요.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가장이 되어보니 아버지와 똑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더군요. 막내딸 울음소리는 저승까지 들린다던데 부모님 계신 저승까지 들릴까 봐, 돌아가신 뒤에도 눈물로 불효하는가 싶어 맘 놓고 울지도 못한답니다.


 저녁 예불을 하러 가는 길에 꽃샘바람이 매섭습니다. 아직도 날이 선 차가운 바람에 금방이라도 코피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법당에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봅니다. 저 멀리 푸른 보리가 넘실거리는 들녘이 한눈에 들여 다 보입니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분들이 새삼 부럽게만 느껴집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그렇다면 이미 저는 진 사람입니다. 아마 저도 늙는가 봅니다. 어쩌자고 저 들녘이 아닌 절간에서 보리(菩提)를 찾으려 하는 것인지 아마도 오늘은 쉬이 기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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