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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ganicmum May 08. 2024

[심플라이프] #10 인생 2막, 심플라이프

'미니멀강박'에서 벗어난 심플라이프

3년간의 미니멀라이프를 통한 깨달음


앞서 말했 듯 3년 전에 생존을 위한 미니멀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이제 곧 둘째 아이는 36개월 세돌을 맞이하는데 둘째 아이의 출산과 육아기간 동안에 함께한 미니멀라이프였다.


4인가족이 작은 집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재미도 있었지만 물건에 치이는 스트레스가 커서 매일 하루에 1개 비우기를 2년 동안 실천했다. 놀라운 사실은 물건을 그렇게 많이 비워냈는데도 여전히 집안은  많은 물건들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우는 동안에 또 다른 물건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물건들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오늘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늘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경우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과거에 함께 했던 물건과 미래를 함께할 물건이다.


과거에 함께 했던 물건은 

추억의 앨범이나 일기장, 공부했던 책들인데 이런 물건들은 마음을 먹고 비워내면 그만이다.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사진으로 남겨두고 비우는 경우가 많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만지면서 보는 느낌은 다르기 때문에 과거에 함께 했던 물건이라고 해서 쉽사리 비워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한 종류는, 우리의 미래를 함께할 물건인데 외국어공부 책이나 자기계발도서 등과 같은 것이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잘 펼쳐보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함께할 가능성은 희박해지는 물건들이다. 이 물건들이 미래에 나와 함께 하려면 지금도 함께하고 있어야 하고 사용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책을 잘 처분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없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용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에 속하기에 책을 쉽게 비우지 못한다.


우리 집 첫째 아이도 나랑 비슷한지 봤던 책을 또 보는 걸 좋아한다. 

 2,3살 유아용 책중에서도 재밌다고 10번도 넘게 보고 또 보는 책이 있고 나이에 비해 꽤 어려운 내용의 책도 재밌다며 조금씩 읽고 있다. 이런 물건들은 일반적인 미니멀리스트 집에서는 비울 대상이 되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비우지 않는 대상이다.


미니멀라이프란, 최소한의 물건으로 담백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3년간의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느낀 점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삶'이 '미니멀라이프'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니멀 리스트 (minimal list)를 생각했는데 에센셜 리스트 (essential list)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건 무엇인가?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건 무엇인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 물건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문제는 한 줌의 흙으로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배가 너무 아파서 119에 전화를 했고 새벽이라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충수염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맹장수술을 하는 병인데 장이 터져서 복막염까지 간 상황이라 꽤 위급했던 모양이다.

아픈 신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CT를 찍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다며 진통제만 처방해 주었기에 진통제를 먹고 며칠을 버티다가 장이 터져버린 것이다.


구급차에 누워서 남편과 아들의 얼굴을 보며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내 배가 아픈 것도 문제지만 이 병이 무슨 병인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구급차 안에서 병명을 알았더라면 별 걱정을 안 했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배가 아픈 이유를 모르니 이제 당장 내일 살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떠날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라도 내가 가족들 곁을 떠나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 알려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그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서 하루가 너무나 소중해지는 경험을 했다.




소중한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

그게 가장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겁게 살아간다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불필요한 관계 때문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욕심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수술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사람이고 지금도 늘 새로운 활동을 즐겨한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 속에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삶이 복잡해지고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삶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수술이라는 사건과 입원의 시간을 통해  나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고, 그 이후 둘째의 출산과 함께 시작된 미니멀라이프로 내 삶 재정비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하고 싶고 현재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아서 결코 미니멀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미니멀'이 아닌 '필요한 것들을 가진 상태(에센셜)'로 삶을 단순화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심플라이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아무리 많은 일이 앞에 있더라고 마음이 조급하지 않고 담담하게 순차적으로 일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급함을 느끼고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든, 만남이든, 자기계발이든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맥시멀 한 사람이라도 삶을 단순화할 수 있다.


나는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왜 이렇게 시간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자격증공부를 하고 회사가 끝나면 운동하는 곳에 갔고 주말에는 늘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에게서 지인에게서 연락이 오면 약속이 없는 날에 약속을 잡고 또 한 칸의 스케줄표 날짜를 채워 넣었다.

항상 지인들의 이름으로 가득한 스케줄표.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그랬다.


"나는 시간이 비어있어도 약속을 잡지 않아. 내 시간을 갖고 싶거든."


나는 '내 시간'이라는 개념이 부족했던 것이다.

'내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정작 나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늘 바쁘고 일상에 쫓기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소중한 하루를 내가 주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했기에 삶이 분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미니멀강박증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니멀한 삶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다가 다시 미니멀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한다.


일명 '미니멀강박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거실은 텅 비어있어야 하고 주방 선반 또한 텅 비어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신발장도 옷장도 항상 여유가 있게 텅텅 비어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하다.

필요한 물건이지만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길 원하여 버리고 나중에 또 구매하는 행동을 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겠다며 

흰색정리바구니를 사서 그 안에 물건들을 담고 팬트리를 꾸미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정리바구니 안에 물건이 뒤죽박죽이 되고 물건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투명바구니로 바꾸거나 선반 위에 물건을 그냥 두는 방법으로 바꾸고 또 다른 정리법을 시도한다.


미니멀라이프의 목적은 꼭 필요한 것들을 두고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여 공간과 삶에 여유를 갖는 것인데 미니멀강박에 걸려서 더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 미니멀강박이 생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도로 비움에 집중했던 시기가 있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필요한 물건도 비워내고 싶어 진다.


아이들의 책도 분명 필요한데 비워내고 싶어 진다.

남편의 옷도 집안 살림살이도 되도록 비워내고 싶어졌다.

스스로 미니멀강박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텅텅 빈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으로 채워진 에센셜라이프였고 보다 단순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심플라이프로 방향을 다시 잡았다.

심플라이프로 기준을 세우고 나니 정리할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니멀강박증'에서 벗어나서 비우는 삶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남기는 삶이 시작되었다.




 심플라이프란


심플하게 살아간다는 건, 삶을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삶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 시간, 공간, 물질, 관계, 생각 -등의 그룹을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1) 지금 당장 해야 하고 중요한 것

2) 지금 해야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3) 나중에 해도 되지만 중요한 것

4) 나중에 해도 되고 중요하지 않는 것


이 4가지 영역으로 일을 분배하고 그 일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물질, 관계 등을 분배하고 생각하면 삶이 그리 복잡하지 않게 된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시간을 투여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나중에 해도 되지만 중요한 일이 있다.

회사에서 말하는 중장기 계획, 즉 인생의 로드맵이 그것이다.


20대에는 30대의 계획을, 30대에는 40대의 계획을 미리 세워서 목표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목표를 향한  방향성이 맞춰지면 하루하루 해야 할 일, 중요한 일이 정해지고 인생이 공허해지지 않는다.


당장에 급한 일만 쫓아다니면, 그 일이 해결되고 나서 또 다른 급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늘 쫓기는 듯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나중에 번아웃이 오게 마련이다.


삶을 단순화하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급한 것과 급하지 않은 것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를 쏟는 시간과 휴식의 시간을 명확히 하여 지치지 않고 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고 가족과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중요하지 않는 일에 급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쫓기는 듯 살아가고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여유, 휴식이라 하면 여행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삶이 단순화되지 않으면 여행은 결코 우리를 여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 더 피곤하고 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일상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 여행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삶이 단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여행은 한시적인 일상의 도피가 될 뿐이다.


삶을 단순화하는 것, 즉 '심플라이프'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장에서는 물건, 시간, 관계, 돈(재정)의 영역으로 나누어 심플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전 09화 [심플라이프] #09 가족과 함께하는 미니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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