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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May 12. 2024

중국 최고의 명차, 용정차(龍井茶)

홍콩과 마카오 뿐 아니라, 중화권에서는 차와 식사를 함께 즐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홍콩의 경우 딤섬과 차를 함께 즐기는 것을 '얌차' 문화라고 따로 부를 만큼 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홍콩의 독특한 아침 식당을 '차찬탱' 이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차를 내 오는 식당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영어로는 카페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홍콩의 레스토랑들에서는 주문을 하기 전, 어떤 차를 선택하겠는지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 한 곳, 이 브런치북의 첫 레스토랑이었던 '예 상하이'만 그렇지 않았는데, 외국인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곳은 일반적인 유럽 식당들처럼 미네랄 워터와 스파클링 워터 중 하나를 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식당에서 물 대신 차를 주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때 대부분 자스민차를 주는데, 별도로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찻값을 별도로 받는 홍콩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왠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외국 식당들은 찻값뿐 아니라 물 값도 정확히 계산해서 받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차는 한번 주문하면 계속 뜨거운 물을 추가로 가져다 주어 한 번 주문하면 계속 마실 수 있는 반면, 미네랄 워터는 마시는 족족 돈이 계산되니 찻값이 더 마음 편하기도 하다.



차와 딤섬을 곁들이는 얌차 문화를 즐긴 곳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홍콩의 오래 된 레스토랑, 린흥귀(현 육안거)였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차를 원하는지 묻고, 차를 가득 담은 큰 주전자를 가져다 준다. 이 때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쓸 식기를 이 찻물에 한번 더 씻는 것. 당연히 남이 쓰던 지저분한 식기를 가져다 주고 직접 설거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번 설거지해서 나온 식기를 다시 한번 씻는다. 뜨거운 물로 씻어내어 살균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고, 남을 믿지 못해서 다시 한번 씻어 먹는다고도 하고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찻물은 계속 추가해서 부어 주기 때문에 씻는 데 쓴다고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참고로 다른 식당에서는 일절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식당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홍콩에는 이러한 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는데, 홍콩공원 내 다기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대해서는 별도의 브런치북으로 정리해 볼 예정이다.




반면, 마카오의 레스토랑 두 곳에서는 모두 메뉴판을 주고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오랜만에 한자 실력을 발휘해 가며 읽다 보니, 눈에 띄는 차가 있어 주문했는데, 다름아닌 '용정차'였다. 가격은 한 잔에 3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는데, 사실 환율에 대한 개념이 잘 없기도 하거니와, 매번 무협지나 중국 사극에서 보던 차를 한번 마셔보자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주문했다.



용정차는 녹차의 한 종류인데, 사극 등에서 비싼 차를 마시는 장면이 필요할 때 등장한다. 그만큼 전통적인 고급 차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겠다. 무협지 등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녹차 한 잔' 달라고 하거나, '우롱차 한 잔' 달라고 하는 것 보다는 '용정차' 가 어쩐지 더 중국 분위기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 10대 명차 중 첫손에 꼽히는 차라고 하니, 다소 자극적이지만 중국 최고의 명차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다. 사실 차는 기호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취향을 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미국 최고의 탄산음료, 코카콜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펩시 좋아하는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번에 반박할 테니 말이다.



이 차는 사봉명전용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각각 나눠 보면 사봉은 생산지, 명전은 생산 시기, 용정은 차 이름을 뜻한다. 이러한 작명방법은 스페셜티 커피와 비슷하다. 스페셜티 커피 중 유명한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보케테 워시드' 라고 하면, 파나마 보케테 지역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한 게이샤 커피라는 뜻이다. 워시드는 커피의 가공방식을 뜻한다.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로 꼽히는 용정차는 항주에서 생산되는데, 서호 지역에서 생산된다고 하여 서호용정이라고 부른다. 용정차는 서호 용정산의 용정사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 차는 청 강희제와 건륭제가 즐겼다고 하여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건륭제는 용정차와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항주에 와서 서호를 유람한 후, 용정차의 산지 중 하나인 사봉산 호공묘에 들렀다. 호공묘에서는 황제에게 용정차를 대접했고, 건륭제는 이 용정차를 마시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황제의 취향에 잘 맞았던 모양이다. 황제는 이 차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물었고, 차를 대접했던 스님이 호공묘의 차나무로 황제를 안내했다. 이 차가 인상깊었던 모양인지 건륭제는 이후 모후인 황태후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이 차를 올렸고, 차를 마신 황태후는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다분히 건륭제의 효심을 선전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같지만, 건륭제는 이 호공묘의 용정차가 맘에 들기는 했던 것 같다. 이 차를 생산한 18그루의 차나무를 황제의 '어차' 로 지정하고, 별도로 관리를 파견해 이를 관리하도록 했다. 황제가 직접 관리한 덕분에 이 차나무들은 지금까지도 용정차를 생산하고 있고, 건륭제는 용정차를 소재로 한 시도 몇 편 남기는 등 여러모로 이 차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전해진다.



서호는 상당히 넓은 지역인데, 서호 인근에서도 각각의 산지에 따라 용정차의 이름이 다르게 붙는다. 앞서 커피도 농장 이름을 붙이는 것과 유사한 부분이다. 현재는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하는데, 서호 인근의 용정, 서호 인근 사봉산의 용정, 그리고 매가오 지역의 용정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사봉용정은 타 산지보다 비타민C 함량이 세 배 이상 높다는 다소 의문스러운 설명과 함께 가장 명성이 높다고 하는데, 앞서 살펴본 건륭제의 효심 일화만큼이나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맛도 좋다고 한다.



중국에서 차를 구매하면 아무래도 가품을 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데, 우리가 이 차를 마셨던 식당은 마카오 리스보아 호텔 내의 디 에잇이라는 식당이었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을 만큼 이름있는 식당인지라, 가격은 비싸더라도 설마 가품을 내놓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도 제법 비싼 가격에 포함시켰다.


'명전'이라는 표현은 차를 채취한 시기를 뜻한다. 청명절 이전에 수확한 차를 명전이라 하여 가장 최고급품으로 친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3일 일찍 수확하면 보물이고, 3일 늦게 수확하면 풀에 불과하다' 는 식의 말이 있을 만큼 채집 시기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청명절 이전 수확한 명전차를 제일로 치고, 곡우 전에 수확한 우전차 또한 그 품질을 높으 친다. 곡우 이후에 딴 잎은 차를 만들기 적합하지는 않다고 한다.



품질이 좋은(비싼) 차이니만큼 차를 우려내는 방법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데, 중국 스타일의 개완에 찻잎을 가져와 보여 준 다음 차를 한 잔 정도 우릴 만큼의 물을 붓고 금방 잔에 다시 따라낸다. 우리기 전 찻잎을 보여주는 이유는, 중국에서 차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찻잎의 모양이기 때문인 것 같지만 차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지라 그냥 끄덕이고 말았다.


한 잔의 차는 양이 많지 않으므로 금방 마시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직원들이 다시 와서 찻잎이 들어 있는 개완에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린 다음, 다시 찻잔에 따라 준다. 찻잎을 계속 물에 담가 놓으면 떫은 맛 등이 과하게 우러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용정차는 뜨거운 물로 우리는 것이 아로마가 더 잘 살아난다고 하는데 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의 5분에 한 번 꼴로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이 일을 반복하는데, 한편으로는 찻값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녹차를 많이 마셔본 일이 없어 천상 인스턴트 녹차와 비교할 수 밖에 없는데, 고소한 향이 나기는 하지만 곡물 볶은 향 보다는 풀잎을 볶은 가벼운 향이라는 느낌이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대부분의 인스턴트 녹차는 현미녹차라고 하여 현미가 포함되어 있다. (현미가 포함되면 관세가 낮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입 안에서는 떫은 맛은 특별히 느껴지지 않고 고소하면서도 일종의 감칠맛이 느껴진다. 색은 상당히 맑고 연한 듯 하다. 잎 차 특유의 약간 씁쓸한 맛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기분 나쁘게 입 안에 남는 느낌이 없이 청량하다는 느낌을 준다. 책에서는 용정차를 해초의 풍미를 지닌 차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맛이 떫거나 묵직하지 않고 가볍고 청량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여행지에서 호기롭게 마셔보는 것이 아니라면 마시기 어려웠을 차라는 생각이 든다. 대만에서도 아리산 우롱차 등 유명한 차를 마셔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의 가격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음주를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이렇게 물이나 탄산음료 외에 식사에 곁들일 수 있는 음료가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특히, 단순히 목을 축이거나 입가심을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독특한 향미가 식사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음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야말로 강호의 고수들이나 황궁의 귀인들이 마셨다는 차를 마시며 잠시나마 세상 근심을 잊어본다... 까지는 아니지만, 매일같이 마시는 많은 음료들 외에도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음료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세상이 넓고 아직 맛볼 것이 많다는, 그래서 남은 즐거움도 많겠다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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