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Mar 04. 2024

캐나다와 한국에서 친구집에 초대받는 방법

캐나다에서 첫째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진정한 학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그전까진 아이가 어리니 활동반경이 작았다. 집, 데이케어, 앞집 옆집 이웃 중 또래가 사는 집, 또는 시부모님 집이 다였다. 그런데 유치원에 들어가고 말이 늘고, 친구를 사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느 날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다. "엄마 나 릴리네 집에 놀러 가고 싶어. 저기 릴리 엄마한테 가서 놀러 가도 되는지 물어봐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가 당장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자, 아이는 답답해 하기 시작했다. "엄마~~ 릴리 엄마랑 릴리 가잖아~ 얼른 가서 물어봐봐 ㅜㅜ"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용기를 낼 수밖에 없어 보였다. 결국 릴리 엄마에게 다가가서 어색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누구 엄마인데. 우리 애가 릴리랑 놀고 싶다는데 언제 플레이데이트 (playdate, 아이들이 만나서 노는 날) 가능할까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다른 학부모 번호 모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가 친구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꼭 우리 집에 먼저 그 아이를 초대했다. 그러면 보답의 의미로 다음번 플레이데이트는 그 친구 집에서 자연스레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여러 번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도, 초대 이야기가 없을 땐, 어쩔 수 없이 먼저 물어봤다. 우리 애가 너무 그 집에서 놀고 싶어 하는데 실례가 아니라면 놀러 가도 되느냐고 말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데, 살면서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나를 보며,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냥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이 모든 걸 나 혼자 할 수 있던 시간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는 친구를 원했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이제 집에서 만나는 것도 밖에서 만나는 것도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다. 우린 딱 그 시절, 대도시 토론토에서 서쪽 외각에 작은 소도시 칠리왁으로 이사했다. 양쪽 벽이 붙어있는 타운하우스였다. 어떤 이웃들을 만나게 될까 걱정하며 이사했는데, 우리 아이들 또래가 많은 단지였다. 세네 집의 여러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쪽 집에서 점심을 먹고, 또 다른 집에서 간식을 먹고, 또 다른 집에선 저녁을 얻어먹으며 놀았다. 같은 단지의 아이들은 서로 그렇게 어울리며 코로나 시절을 견뎌냈다. (캐나다는 한국보다 코로나 격리나 의무의 강제성이 약했다.)


토론토에서 코로나 전, 친구 생일파티
토론토 유치원 교실 사진
한국으로 오기전, 우리집에서 했던 생일파티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놀던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첫째는 한국말을 어설프게 했고, 둘째는 전혀 못할 때였다. 씩씩하게 학교 다니기 시작한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유치원 다니기 시작한 뒤 한 달 내내 울었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했던 둘째는 유치원이 무섭다고 했다. 나는 둘째가 울지 않고 유치원에 가게 될 무렵, 또다시 학부모들의 전화번호를 얻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려면 친구를 잘 사귀는 방법뿐이라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하는 자기소개는 영어로 하나 한국말로 하나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전화번호를 받고, 문자로 서로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주소를 주고받았다. 여기서도 역시나 처음엔 우리 집 먼저였다. 그렇게 둘째도 자기가 놀고 싶은 친구들의 집에 한 번씩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야 엄마들이 함께 왔지, 이젠 아이들만 믿고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우리 둘째는 동네 친구들도 많고, 한국말도 한국 토박이처럼 잘한다. (대신 영어를 까먹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 물어보기 미션도, 어색하지만 하다 보니 이젠 별 거부감 없이 하게 되었다. 학부모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면, 다른 사람 집에 내 아이를 보내도 불안하지 않게 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골목에 이웃들처럼 덕선과 그의 친구들처럼, 캐나다에서건 한국에서건 아이들을 이웃들과 함께 그렇게 키우고 싶다 생각한다. 정식 초대 없이도 친구집에 드나들 수 있는 사이로 말이다.



한국에서 둘째 생일파티 사진


이전 05화 아이 키우기, 한국과 캐나다 중 어디가 더 쌀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