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화면이 나타난다. 재남의 화려한 인스타그램.
친구들이 수두룩 빽빽하고, ‘좋아요’가 실시간으로 늘어난다.
유자가 쓸쓸한 표정으로 노트북으로 모니터를 보다가, 클릭한다.
유자의 인스타그램으로 화면이 바뀌는데, 아기 사진만 몇 개 있는데, 못 찍었다.
유자
휴대폰이 구려서 그래. 우리 포미, 실물은 훨씬 더 귀여운데.
광수가 휴대폰을 보며 등장한다. 휴대폰에서 카톡, 카톡 울린다.
유자
게임을 알람으로도 받냐?
광수
게임 아니거든? 톡이거든?
유자
톡? 톡이 뭔데?
광수
어휴, 촌닭! (그 와중에 카톡! 울리자, 표정 환해지고)
유자
(매의 눈으로 보면서) 너, 바람 피냐? 그 여자도 안 됐네. 하필이면 너랑 하니? 나, 언제든 헤어져 줄 수는 있는데, 위자료는 줘야 해. 애는 내가 키워야 하니까.
광수
어휴, 의부증 환자. 어휴! (나가버린다. 그 와중에도 울리는 카톡)
유자
(비웃는 듯 따라 하는) 카톡! 카톡! (퍼뜩) 저것도 돈 내야 하는 거 아냐?
세라가 휴대폰을 흔들면서 들어온다.
세라
촌스럽긴! 카톡은 공짜야.
유자
그래? icq 같은 건가?
세라
그래! 너도 깔아봐. 이모티콘도 역대급으로 귀여워.
유자
이모티콘? 한갓 그림 따위가 귀여워 봤자지.
세라
야야, 이 아이들은 귀여움의 차원이 달라. 귀염둥이계의 혁명이랄 수 있지. (휴대폰으로 보여준다.) 짜잔! 얘들 차례대로, 고양이, 강아지, 오리, 두더지, 핑크빛 복숭아야. 귀엽지?
유자
(무심히 봤더니, 귀엽다.) 으, 으음?
세라
얘 봐봐. 노란 애. 얜, 뭐 같아?
유자
(이미 빠져들었다.) 토끼?
세라
놉! 토끼가 아냐. 얘는 말이야, 놀라지 마. 단무지야!
유자
뭐? 단무지라고? 이 아이가 어떻게 단무지지? 이렇게 검은 눈이 영롱하고 새하얀 우주복을 입은 애가 어떻게? 그럼 옆에 초록색 아기, 얜 악어 맞지?
세라
응! 그런데 얘네 둘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야. 그 단무지를, 사실 악어가 조련한다는 컨셉이야!
유자
말도 안 돼!
세라
이 아이들에게는 다 사연이 있단다. 검은 머리 고양이 얘, 알고 보면 가발이다. 얘, 브라운 강아지랑 사귀는데 맨날 강아지 갈구고 성깔도 더러워. 그래도 귀엽지? 이래도 안 깔 거야?
유자
깔래! 나도 깔래! 깔아야지! (휴대폰을 미친 듯 두드리며) 너, 내가 톡 보내면, 답장 잘 해줘야 해. 톡 보낼 사람이, 많지 않아.
세라,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면서 나간다.
유자(Na)
(계속 폰을 하면서) 내 우중충한 삶을 위로한 건 딸아이와 귀여운 이모티콘들뿐이었어요. 딸 포미는 똥도 싸고 말도 안 들어서 속 썩일 때가 있었는데, 요놈들은 정말 깔끔하게 날 위로했어요. 게다가, 갈수록 더 귀여워지고, 더 풍성해졌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들 그림을 하나씩 붙인 물건들이 하나둘 나오고 상점도 생기는데, 이놈들이 코딱지만하게 붙기라도 하면 그 상품들은 비싸져서! 나는 또 그들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고…….
유자 뒤로 낮이 됐다 밤이 됐다 계절이 변한다.
‘2011년’이 잠깐 떴다가, 곧바로,
유자
이모티콘 굿즈도 못 사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냐고!
‘2012년’이 떴다가, 다시,
유자
에이씨! 이모티콘 지겨워! 고양이 꺼져! 이제 사람이랑 놀래! (객석을 보며, Na) 난 남편도 있고, 딸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딸 포미는 나보다 어린이집 선생님을 더 좋아하네요, 남편은 원래부터 날 안 좋아하고요, 나도 이제 남편이 좋지 않아요. 나의 정체성은 소멸되고 있어요. 최소한 오프라인에서는 나란 사람의 가치가 밤톨만도 못 해졌어요. 흑! 내가 이제 여자이긴 한 걸까요?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런데 어떤 이상한 사이트에 접속했어요. 내가 여자라니까 미친 듯이 메시지가 날아와요.
메시지(E)
저기요? 여성분 맞죠?
유자
네. 그런데요?
메시지(E)
혹시, 님이 신던 스타킹 파실 생각 없어요?
유자
스타킹요? 신던 거?
메시지(E)
10만 원 드릴게요.
유자
설마요!
메시지(E)
저 진지합니다. 꼭 오래 신던 스타킹이어야 합니다. 팬티로. 그리고 빨면 안 됩니다. 며칠 신은 다음이어야 합니다.
유자
뭐라구요! (객석을 향해, 방백) 돌았나 봐요. (메시지) 못 해요!
메시지(E)
아뇨. 님은 파실 겁니다. 제 번호는, ***********입니다. 연락 주세요. 10만 원. 망사거나 구멍이 나면 더 좋습니다.
유자
됐어요! 더러워!
유자, 키보드에서 손을 떼서 그대로 든 채 망설인다.
유자
미쳤어! 다들 미쳤어! 세상에, 어떻게 안 씻은 구멍 난 스타킹을 10만 원을 주고! (두 손을 살짝 흔들면서) 그래도 혹시 또 모르니까, 일단은……. (키보드로 번호 입력)
광수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들어온다.
광수
여보. 큰일 났어.
유자
(급히 마우스로 창을 끄면서) 어? 뭐, 뭐가.
광수
아, 어쩌지? 화 안 낸다고 약속해 줄래?
유자
(아직 당황한) 어, 뭐, 얘기해.
광수
내 고딩 동창 중에 김하나라는 애가 있어. 진짜로 이름이 김하나야.
유자
응. 있다고 해.
광수
진짜라고. 암튼, 어제 문자가 왔는데, 자기가 김하나라는 거야. 나는 아, 걔구나, 여겼지. 와, 그랬는데…….
유자
(점점 냉정해지는) 그랬는데?
광수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됐지? 말센가?
유자
세상이 어쨌는데?
광수
그, 김하나가, 엄청 힘들다는 거야. 무슨 암에 걸리고, 애도 이상한 병에 걸리고 그렇다네. 그리고 그런데 얼마 전에 직장에서 잘리고 해서, 죽게 생겼다는 거야. 그래서, 음, 내가 살짝, 도와줬거든?
유자
얼마?
광수
음. 뭐, 3백 정도?
유자
3백만 원! 돈 갚는대? 그걸로 병을 고칠 순 있대?
광수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걔가, 걔가 아니었던 거야.
유자
그 사람이 아니면? 누구?
광수
응? 글쎄.
유자
누구냐고?
광수
나도 모른다고!
유자
너 혹시, 피싱당한 거야?
광수
피싱? 아, 이런 게 그 피싱이구나.
유자, 갑자기 손에 잡히는 걸로 광수의 등짝을 친다.
광수
아야! 난 진짜 걘 줄 알았어!
유자
말로만 부탁한 건 맞고? 아니, 아파서 돈 보냈다는 건 맞아? 네가 채팅을 했지! 사진을 보냈지! 이상한 사진이었지! 너도 흥분해서 보냈지! 그래서 돈 보낸 거지! 나가! 그냥 나가버려!
광수
아, 가뜩이나 힘든데 너무 화를 내네. (도망치듯 나간다.)
유자
뭐?! 3백? 돈이 어딨는데! 우리가 돈이 어딨냐고!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3백! 3백이면 포미 유모차에 교구도 사줄 텐데!
유자, 진정하면서 휴대폰을 든다. 그리고 번호를 보면서 전화를 건다.
유자
여보세요.
전화맨(E)
네?
유자
스타킹 말인데요.
전화(E)
네?
유자
구멍 난 팬티. 마침 하나 있어요. 올 블랙. 괜찮죠?
전화(E)
뭐라고요?
유자
하지만 세탁은 꼭 해서 보낼게요. 그것만은 양보 못 해요.
전화(E)
저기요. 누구세요?
유자
됐고요. 암튼 그래서 그런데, 12만 원 주시면 안 될까요? 세탁비 포함해서요. 그러면 망사 판탈롱 한 짝도 서비스로 드릴게요.
전화(E)
야!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전화, 거칠게 팩! 끊긴다.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이는 유자.
유자가 객석에 등을 돌린 채 있다가, 서서히 객석을 바라본다.
유자(Na)
헤어졌어요. 남편 새끼랑요. 그 뒤로도 대형 사고를 몇 번 쳤거든요. 아, 잘 헤어졌어요. 시원하다! 나는 이제 자유다! 하하하! (잦아드는 웃음) 자유면 뭐 해요? 몸이 자유라고 해도 이 몸을 뉠 곳이 없는데. 덩그러니 거리에 애만 데리고 나와 섰네요. (휴대폰 꺼내 보며) 직방이란 앱이 있어요. 집을 구해주는 앱이에요. 직방, 다방, 방방방. 뭐 많아요. 하지만 앱이 많으면 뭐 하나요. 그 집에 들어가 살 돈이 없는데. 집이라도 있어야 애랑 살 텐데.
유자가 주위를 둘러본다. 착잡하고 초조하다.
유자(Na)
집도 못 구한 채 여관 달세방을 잡아두고, 우는 애를 달래놓고, 나는 밖으로 나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다 했어요. 대포폰을 만드는 곳에 명의까지 빌려줄 뻔했어요. 통장을 남한테 빌려줄 뻔했어요. 큰돈을 대신 받아서 옮겨줄 뻔도 했어요. 다들 막판에 관뒀지만 정말 흔들렸어요. 옥션에 가진 물건들을 내놨지만, 입질이 없어요. 이모티콘이라도 만들어서 팔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아이디어도 안 떠올라요. 난 이제 끝난 걸까요? 내가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내 새끼 하나,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 못하는 나는, 살 가치가 있는 걸까요? 야, 유자, 너 왜 사니? 응? (휴대폰을 보면) 휴대폰에 연락이라고 오는 건, 앱을 깔라고, 앱이나 깔라고 오는 알림밖에 없어요. 내가 이 사회에 보탬이 될 일은 앱을 깔아주는 것밖에 없네요. (휴대폰 던지고) 나는 루저예요. 글러 먹었어요. (잠시 고개 숙였다가, 다시 휴대폰 보며) 이렇게 살 바엔, 끝을 내자! 그래요. 그게 낫겠어요. 포미? 포미는 어쩌지? (잠시 생각) 같이 가자. 요즘 보육원이 괜찮다지만, 엄마는 너를 맡기고 갈 순 없어. 그냥 엄마랑 같이 떠나자. 지금은 네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철이 들면 엄마 마음을 이해할 거야. 아니, 너는 철이 들 수가 없겠구나! 아, 포미야, 내 딸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우리 다시는 안 맞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자! (휴대폰을 터치한다.) 그래요. 나 지금 자살을 검색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안 아프게 떠날 수 있을까 검색을 하는데, 자살은 네이버에서도 구글에서도 막아놨는지 검색이 잘 안 돼요. 일단 네이버에서 최대한 찾아보려는데……. 잠깐만, 이상한 뉴스가 떴네? 뭐? 배가 침몰해?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해?
쿵! 내리꽂는 배의 침몰 소리인지 유자의 심장 소리인지.
유자(Na)
안타까운 죽음. 타인의 안타까운 죽음.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자들의 슬픔. 저 무거운 광경을 보니, 감히 죽음을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미래가 안 보이는 막막한 처지라고 해도. 최소한 지금은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어쨌거나, 이후에도 내 인생은 계속 무력하게 흘러가, 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런 와중에 포미는 초등학생이 되고, 아! 나는 40대가 됐습니다.
철 없이 40대가 된 유자의 앞에는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