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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07. 2015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한다"

행복한 책읽기 3.  <지구 위의 작업실>

‘더(THE)’ 이야기를 아시는지. 다시 읽어도 흥미롭다. 짧은 이야기다. 들어보시라.


뉴욕의 잘 나가던 샐러리맨이 직장생활을 접고 전원생활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별도의 집필실을 마련하고, 최고급 타자기도 마련한다. 야심 차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그 꿈이 손에 잡힐 것처럼. 하지만 ‘The….’ 첫날도 The…, 둘째 날도 The…, 글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남편이 첫 문장, 첫 단어에 발목이 잡혀 괴로워할 때 부인은 일기를 쓴다. 거창한 글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소소한 일기다. 그리고 작은 잡지에 독자 투고를 시작한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팬이 생기고 잡지사에서는 고정란을 할애해준다. 어느 날 대형 출판사 관계자가 그녀의 집을 찾는다. 거액의 인세를 조건으로 책을 출간하자는 제안을 한다.    


시인 겸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책, <지구 위의 작업실>의 맨 앞에 나오는 대목이다. ‘THE’ 부부 이야기의 결론을 나는 모른다. 일화를 소개한 저자도 무책임하게 “결론은 알지 못하지만…”이라고 글을 맺는다. 이 일화에서 거창하게 집필실(작업실)을 마련한 남편이 결국 유명 작가의 꿈을 이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갑수가 자기만의 작업실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작업실에서 주로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듣는 것. <사진 출처=푸른숲 블로그>

◇나만을 위한 지구 위 단 하나의 공간, 작업실   


‘줄라이홀’로 명명된 그의 작업실은 ‘빈대떡스럽고 돼지껍질스러운’ 마포, 그것도 1층이 정육점인 건물 지하에 있다. 누추함과 초라함을 누차 강조하지만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자가 그 작업실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고,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알기에 모든 게 자랑으로 들릴 뿐이다.  


습습한 지하실을 얻어, 인부들 눈치를 보며 철벽 방음 장치를 하고, 3만 여장의 LP 음반과 4천 여장의 CD를 옮겨놓는 고생스러움을 얘기하지만 그 역시 자랑으로 들린다. 또 6조(이 분야에서는 이런 단위를 쓰는 모양이다)의 대형 스피커로 이루어진 오디오 시스템을 세팅하고, 원두를 볶고 갈며 내릴 수 있는 커피 풀세트를 장만하기까지의 수고로움을 듣노라면 슬슬 귀가 거북해질 지경이다. 게다가 줄라이홀을 열자마자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지인들. 저자는 귀찮다는 투로 하소연하지만 반가움과 뿌듯함이 역력하다.         


결국 그는 대놓고 '자랑질'이다. “작업실의 일과는 비일상 일상이고 비현실이 생생한 현실이 된다. 남들이 땀 흘려 일할 때, 회의를 하고 물건을 팔고 공문서를 작성하는 시간에 나는 지하 작업실에서 팬티만 입고 뒹굴뒹굴하며 판을 닦거나 LP의 면을 뒤집는다. 속없이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서슴지 않고 말해준다. 그래 부러워해라.”   


작업실 세팅의 자랑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그가 주로 하는 일 얘기가 시작되는데 이 대목부터 마냥 부러워만은 할 수 없다. 시시껄렁한 잡담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이거나 글자 그대로 ‘작업질’이나 하자고 작업실을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면 커피, 음악이면 음악, 글이면 글, 어느 것 하나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전문가의 얘기가 시작된다. 책을 읽다 보면 ‘문화비평가’라는 그의 직함은 ‘지하 작업실에서 팬티만 입고 뒹굴뒹굴하며 판을 닦거나 LP의 면을 뒤집으면서’ 얻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젠장 그래서 더 부러워진다).

김갑수의 작업실 '줄라이홀'은 명소가 되었다. <사진 출처=푸른숲 블로그>

◇사람들은 숨어 있을 공간을 꿈꾼다   


굳이 지하에 작업실을 마련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저자는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 마흔아홉 가지’를 통해 거창하게 이유를 설명한다(마흔아홉 가지는 아니지만 거창한 건 맞다). 우리는 원래 동굴인이었으며, 동굴인으로 살길 희망하고, 동굴인을 지향하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바슐라르의 쾌락과 바르트의 고뇌가 만나는 장소가 동굴 속이다. 동굴 속 동굴인의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동굴인에게 쾌락과 고뇌는 같은 종류의 호르몬으로 생성된다. 가령 사랑도, 동굴인에게는 부재, 즉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부재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동굴인은 그의 먼 조상, 원시시대의 노래를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업실이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은 그날의 날씨다.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은 소리.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은 햇살이다. 날씨와 소리와 햇살은 곧 일상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마련한 작업실이 일상의 지배를 받는다면 제대로 된 작업실이 아니다. 그리하여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직업(그는 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다)’과 관련이 깊다.     


그가 작업실에서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주식은 팔도비빔면부터 버터 식빵, 햇반, 그리고 가끔씩 인근의 풍년 기사식당 김치찌개지만 “라면 먹고 이 쑤시고 그 다음 차례로 커피만은 제대로 마신다.” 여기서 ‘제대로 된 커피’는 맛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원두를 고르고, 사고, 볶고, 갈고, 내리는 전 과정을 포괄한다.      


또 하나는 음악을 듣는 일이다. 3만여 장에 이르는 LP와 4천여 장에 이르는 CD를 듣고 또 듣는다. 그는 똑같이 경험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로 가운데 하나가 예술 체험, 그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음악사와 현대 거장들의 음반에 관한 이야기는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에게 더없이 좋은 가이드다.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한다"     


나만의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현대인의 로망이다. 우리가 스타벅스에 자주 가는 이유는 ‘유사 로망’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혼자가 될 수 없는 우리는, 그나마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제주에는 오래된 친구가 산다. 그 친구의 집에 갔더니 집이 곧 작업실이더라. 3층 집 거실에는 두 방향으로 창문이 나 있고(지하실은 아니었다), 거실에는 작업실 같은 책상이 놓여 있다. 거기에서 친구는 혼자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친구는 '외롭다'고 했지만 나는 부러웠다.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선물했다. 


저자는 부러워만 하지 말고 크든 작든 지하실이든 어디든 작업실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일에 미치면 된다. 남들 퇴근할 때 작업실로의 출근. 어찌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루키는 남들에게 굳이 마라톤을 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라톤은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귀속되는 행위다. 그렇지만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미쳐달라고. 텅 빈 우물 속에서 제발 조금씩은 미쳐버려 달라고. 다만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2010년 이 책을 읽었다. 그의 권유를 듣고 그때부터 언젠가는 나만의 작업실을 갖게 될 것이라는 꿈을 키우고 있다. 벌써 5년째 꿈만 꾸고 있는 셈이다. ‘지구 위의 작업실’까지는 아니어도 ‘동네의 작은 작업실’이라도 족할 것 같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작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그곳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by 책방아저씨

<지구 위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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