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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2. 2016

뻬르돈고개의 이스라엘

여왕의 다리를 만나려면 뻬르돈고개에서 고해를 하라

[7.21 월요일 / 4일째 걷는중]

뻬르돈고개(Alto del Perdon:화해의 고개)에서 연신 '뻬르돈(미안합니다)'을 연발하는 한 남자. 그리고 싱글벙글 웃으며 토닥이고 있는 또 한 남자. 그렇게 나의 뻬르돈고개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까미노의 상징과도 같은 Alto del Perdon은 이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낯선 감흥을 준다. 우리나라의 여느 고갯마루를 넘어설 때의 느낌과는 분명 다른 아주 낯선 감정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산줄기를 따라 늘어서 있고 언덕 아래에는 수만평에 달할 해바라기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이 순례길을 버킷리스트에 올리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접했을 뻬르돈고개의 사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바람 속을 걸어가는 12명의 순례자와 두마리의 말, 두마리의 당나귀 그리고 한마리의 개를 표현한 녹슨 철제 조형물의 사진 말이다.

알토델뻬르돈의 순례자들 / 순례자들의 모습이 이보다 더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앞서 오리츠 마을 외곽에서 만났던 이스라엘을 다시 만난 것은 팜플로나를 벗어나던 길목에서였는데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스페인 친구이고 나보다 한살 어린 이스라엘은 무척 명랑한 성격이었다. 발걸음이 워낙 빨라서 나와는 맞지를 않았는데 먼저 떠나던 이스라엘에게 "뻬르돈고개에서 혹시 만나게 되면 함께 사진 찍자!" 고 무심코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해바라기밭에서 맘껏 사진을 찍고, 지나가던 스페인 꼬마 순례자와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사리끼에기 마을에서는 산안드레스 성당에 들러 기도까지 했다. 

그리고는 문득 이스라엘과의 약속이 떠올라 일행들을 떠나 단숨에 뻬르돈고개를 올랐다.

설마 설마 하며 고갯마루에 다다를 즈음 거센 바람을 맞으며 이스라엘이 반겨준다. 사진을 함께 찍기 위해 두시간 가까이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뻬르돈(미안!)을 연신 외치며 뻬르돈고개에서 용서를 빌 수밖에.


바람 속에서 오가는 순례자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용사들, 그리고 구름의 향연을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 하던 이 고갯마루에 드디어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다. 지금까지 걸은 것이 그저 여행이었다면 뻬르돈고개를 내려선 뒤 나의 한걸음 한걸음은 순례자의 그것이 될 것이다.


고개를 넘어서면 길을 따라 오아시스처럼 우테르가, 무르사발, 오바노스 등의 마을들을 지나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뿌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에 도착하게 된다. 긴 골목길을 가진 중세 마을의 끄트머리에 아르가강이 있고 그 강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가 바로 마을의 이름이 된 셈이다. 다리의 이름은 'Puente Romanico ; 로마인의 다리'라고 한다.

이렇게 넷째날은 뿌엔테 라 레이나의 공립 알베르게인 'Albergue de peregrinos Padres Reparadores' 에서 여정을 마무리 했다.


Puente Romanico, Puente La Reina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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