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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3. 2016

아예기 만찬

미카엘 경당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잠들어 있다

[7.22 화요일 / 5일째 걷는중]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안내하는 책자들은 한결같이 에스떼야를 이 날의 종착지로 써놓았다. 그래서 한 걸음 더 갔다. 무척 힘든 날이었지만 에스떼야에 들어서던 길목에서 만난 물놀이 하던 아이들의 '부엔 까미노(Buen Camino : 순례자들에게 하는 인사, 좋은 길 쯤으로 번역된다)' 외침에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에스떼야는 머물고 싶은 고색 창연한 마을이었지만 아예기에는 대형 마트가 있었기에 우리는 아예기에 머물렀다. 순례 다섯째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른 아침, 아르가강을 건너는 다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뿌엔테 로마니코 Puente Romanico'를 한참동안 감상했다. 마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다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을의 남쪽 도로상에 새로 뚫린 다리 위에서 봐야 한다. 뿌엔테 로마니코는 어제 일몰 무렵에 보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뿌엔테 로마니코

아쉽지만 다리의 여왕을 뒤로 하고 오늘의 길을 떠난다. 일행과 떨어져 또다시 혼자 걷는다. 작은 마을의 성당과 집들, 놓치고 싶지 않은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함께 걸으면 덜 심심하지만 많은 것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몇몇 갈림길을 빼면 거의 일방통행인 하나의 길이니 또 만날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순례자들은 이렇게 길벗이 되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날은 달랐다. 마녜루(Mañeru) 쯤에서 다시 만난 일행들은 에스떼야까지 너무 힘들게 걸었다. 서로를 의지하며 걸음을 맞춰 걷고 또 쉬었다. 에스떼야 즈음에서는 모두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두 흔쾌히 한 마을 더 가기로 마음을 모았고 약 2km를 더 걸어 아예기의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마녜루와 시라우키(Cirauqui) 로르카(Lorca) 등의 멋진 마을들을 지나 조금은 큰 마을인 비야뚜에르타(Villatuerta)에 다다르면 에스떼야가 머지 않았다. 비야뚜에르타를 벗어날 즈음 길 좌측 150미터쯤에 폐쇄된 산미구엘 경당이 있다. 폐쇄되었지만 건물 뒤쪽으로 입구는 열려있는데 경당 안에는 제대가 놓여 있고, 제대와 제단 등에는 이 곳을 들른 수많은 순례자들의 사연들이 기도로 혹은 편지로 남겨져 있다.

무척 인상 깊었던 시라우끼(그 위는 마녜루)
로르카에는 한국인들을 너무 사랑하는(?) 호세 라몬의 알베르게가 있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산미구엘 경당에 들어서면...

무척 힘든 하루였지만...

비야뚜에르타를 지나 에가강에서 물놀이 하는 스페인 아이들의 '부엔 까미노' 소리는 에스떼야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예기에서 오랜만에 한국 요리와 함께 만찬!

그리고, 아예기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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