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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4. 2016

불타는 포도나무 사막을 건너며

산솔에 도착했을때 철저히 혼자였다

[7.23 수요일 / 6일째 걷는중]

앞으로 지나야 할 메세타가 이보다 더 힘들까?

산솔로 향하는 뜨거운 여름의 늦은 오후 이 곳 포도나무 사막에는 뙤약볕을 피할 나무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끝내 산솔(San Sol)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아니 산솔까지 걷는 내내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아무리 가장 뜨거운 시간이라지만 사람 보기가 그렇게 힘들줄이야.


이벤트가 있는 날이다. 어떤 이벤트냐고?

일단 사진 한 장 보자.

까미노의 빅 이벤트. 이라체 포도주샘(오른쪽 수도꼭지는 물이 나온다)

아예기 숙소에서 1km 남짓. 근사한 성채가 보이는 그 곳에 역사 깊은 이라체 와인공장의 와인샘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 누구나 맛볼 수 있다. 물통에 떠가도 누가 뭐라고 하진 않지만 이 신선한 와인은 그냥 여기서만 맛보고(그래서 순례자인 우리에게는 조개껍데기가 하나씩 있잖은가)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주자.

이라체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양조장인데 현재는 따로 법인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길 맞은편에는 여전히 '이라체 살아계신 성모마리아 수도원 Monasterio de Santa Maria la Real de Irache' 이 있다.


이라체 수도원

이 날의 두번째 이벤트는 갈림길이다.

길은 아스께타라는 마을을 지나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우측은 도로를 따라 몬하르딘을 지나 산책하듯 걷는 길이고, 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를 건너가는 좌측길은 산등성이를 타넘으며 루낀을 지나 숲 속을 걷는 길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측길을 따른다.

갈림길 입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한적한 좌측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선택은 옳았다고 확신한다. 루낀을 지나가는 이 산길은 너무 아름답고 시원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고독을 느끼며 걷기 좋은 길이다. 다만 걸어야 할 거리는 조금 길다.


이 즈음에서 두 길은 다시 하나가 되고, 곧 로스아르코스에 도착한다

로스아르코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성채인 이 곳에는 네개의 문(Quatro Puertas)이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 성벽을 따라 둘러 보았지만 내가 발견한 문은 로스아르코스 서쪽 길에 있는 돈의 문(Portal del Dinero)과 까스티야의 문(Portal del Castilla) 뿐이었다. 다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두개의 문을 마저 찾아보리라.

원래는 여기서 끝내야 했지만 욕심을 부려본다. 로스아르코스의 알베르게마다 순례자들로 넘쳐나기도 했고 아스께타 이후 루낀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며 혼자가 된 느낌을 만끽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 7km 정도 떨어진 산솔까지 가기로 했다.

뜨거워진 오후, 이 선택은 옳지 않았다. 그 7km 구간 내내 나는 사막을 걸어야 했다. 그것도 불타는 포도나무밭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늘 하나 드리우는 나무도 없는 속칭 '작은 메세타'였다.

산솔에 도착한 순간 하늘이 빙빙 돌 정도로 체력을 허비했고, 발은 퉁퉁 불었다.  산솔의 작은 알베르게 Albergue Deshojando El Camino 에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물이 담긴 풀이 있었는데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고 발을 식혀야만 했다.

알베르게에서는 맘씨 좋은 오스피딸레로 씨엘로 아저씨와 그란차 아줌마가 맛있는 식사를 내주었다. 족욕을 하며 만난 잘생긴 이탈리아 청년은 한국인이 신기한지 함께 사진을 찍자고 덤볐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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