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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6. 2016

소를 업고 다니는 여자

로그로뇨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7.24 목요일 / 걸은지 7일째]

우리 로그로뇨에서 만나지 않았나요?

묵시아 해변에서 만난 그녀에게 소 인형은 없었다.

우리는 로그로뇨의 아름다웠던 밤을 이야기 하며 까미노의 마지막 저녁을 대서양의 노을 아래 보냈다.

로그로뇨는 신비한 도시였다. 이름만큼이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였다.


산솔에서는 언덕을 내려가 리나레스강을 건너면 또르레스델리오(Torres del Rio)다.

언덕 위 갈림길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백인 청년 둘이 수다에 정신이 팔려 엉뚱한 길로 걸어가고 있다.

"너희 순례자 아냐?" "맞아" "그런데 어디가?" "여기 길 아니야?" "길은 요 아래야!" "오마이갓, 고마워"

짧은 영어로 어쩌면 스페인 사람들일지도 모를 이들에게 길을 다 알려주다니.

또르레스델리오
또르레스델리오의 실제 색깔은 이정도

또르레스델리오에서 커다란 소 인형을 배낭 위에 업고 가는 여자를 봤다.

그녀는 로그로뇨에서 우연히 마주칠 예정이고, 한달 후 쯤 묵시아 바닷가에서 다시 한번 마주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비아나에 도착하니 마을 전체가 들떠 있다. 빨간 스카프를 두른 아이들이 오가고 이 작은 마을에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축제다! 팜플로나에서 놓친 소몰이 축제가 여기서 있다고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축제의 현장을 현지인들 속에서 느껴보기로 했다. 광장에는 이미 경기장이 마련되었고 마을 아이들에게는 축제보다 낯선 한국인이 더 관심사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이것 저것 묻기도 하고 축제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손짓 발짓이 동원되고 눈빛을 교환하니 신기하게도 서로 통한다.

사실 규모면에서 팜플로나의 산페르민축제와 비교불허겠지만 비아나의 축제는 잔인한 투우의 현장이라기보다는 소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마을 전체의 축제 느낌이 강하다.

축제를 기다리는 비아나 아이들

비아나의 축제 덕분에 로그로뇨에는 오후 다섯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대도시 답게 알베르게들은 이미 만원이고 고급 호스텔들만 남아 있다. 지친 걸음은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성당을 나서는데 옆건물에 서있던 외국인 가족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중 아주머니가 "숙소는 잡았니?" 하고 묻는다. "아직 못잡았다"고 답하니 "그럼 여기서 자고가" 라며 서 있던 집의 벨을 눌렀다. 알고보니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였다. 잘 생긴 수사님이 나와서 이렇게 설명을 한다.

"영어 알아듣니? 혹시 가톨릭이니? 수도원 식구들과 저녁8시에 미사를 드리고 저녁기도를 한 뒤 함께 식사를 하면 돼. 됐지? 그럼 저 침대를 써"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수도원 알베르게에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수사님도 한 분 계셨고 예쁜 여자 오스피딸레로도 있었다. 숙박요금은 따로 받지 않았지만 2층에 기부함이 있기에 식사비 포함 10유로를 넣었다. 두끼 식사와 잠자리까지 해결하고 단 돈 10유로라니 미안한 마음으로.

수도원과 성당을 연결하고 있는 지하 비밀통로를 오가며 미사를 드리고 식탁에 모였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인 등이 오늘의 손님들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또르레스델리오에서 보았던 소 인형을 업고 가던 여자도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인이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위해 마련해 둔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로그로뇨의 아침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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