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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7. 2016

그라헤라의 세 남자

나바르레떼에서 지낸 산티아고 축일

[7.25 금요일 / 걸은지 8일째]

산티아고(Santiago), 생자끄(Saint Jaque), 세인트 제임스(St. James)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사도 성 야고보로 불리우는 이 길의 주인공 야고보 성인의 축일날이다. 스페인에서는 이 날을 더욱 성대하게 보낸다. 특히나 이 길 위에서 맞이하는 성인의 축일은 각별했다.


대도시 로그로뇨를 떠나자니 아쉬움이 반 후련함이 반이다. 다시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사실 후련함이 더 클지도.

로그로뇨를 떠나 두어시간을 걸으면 사방이 탁 트이며 작은 공원이 나온다. 그라헤라 호수(Pantano de La Grajera)다.

잠시 길은 호수 주변을 빙 둘러 가게 되는데 어느 경치 좋은 곳에서 아주 시끄러운 이탈리아인 세 남자를 만났다.

이 길을 걸으며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이탈리아인들이었다.

매력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무척 시끄럽다는 점인데 스페인어와 비슷한 듯 다른 이탈리아어의 억양 때문인 듯.

그리고 그들의 열정은 한국인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이들도 그랬다. 사진 한장을 같이 찍는데도 제각각의 포즈가 나온다. 사람 얼굴 특히나 비슷비슷한 느낌의 서양인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이 날 저녁 나바르레떼에서 다시 만난 그들을 못 알아보고 말았다.

그라헤라 호수를 둘러 가다 보면 북측 안부에 작은 바가 하나 나온다. 여기서 쉬어가려니 호숫가에서 만났던 이탈리아노 세 남자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들어섰다. 만난 지 30분도 안 되었는데 너무 반가워하며 호들갑들을 떤다. 서로 잘 안되는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자니 맥주를 사주겠다는 소리 같은데 노땡큐를 해버렸다.

호수를 지난 뒤에는 고속도로변의 작은 언덕을 지나가게 되는데 철조망에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들이 잔뜩 매달려 있고 주변에는 산딸기와 복분자, 자두 등 과일들이 천지다. 자두는 빨간색과 노란색 두 종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노란색 자두를 추천한다. 훨씬 달고 맛있다.

이 날은 로그로뇨에서 까르푸와 도심 구경을 하느라 나바르레떼까지만 걸어야 했다.

멀리서부터 나바르레떼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검은 소 조형물이 보이고 마을 들머리 양조장 앞에는 오래된 산 후안 데 아크레 성당의 유적이 남아 있다.

천년도 더 되었음직한 마을의 포석 깔린 계단을 오르면 우리가 묵은 앙헬 아저씨네 알베르게 La Casa del Peregrino가 나온다.

앙헬 아저씨의 안내로 샤워 후 Iglesia de la Asuncion(성모승천 성당)의 성 야고보 대축일 미사 참례를 했다.

본당신부님은 미사 후 순례자들을 사제관으로 데리고 가서 오래 된 그림들과성작,성합,십자가와 묵주 등이 가득한 보물 전시장을 구경시켜 주셨다.

미사 후 광장의 바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왠 서양인 남자 둘이서 우리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아는척을 했다. 못 알아보고 계속 커피를 마셨더니 "너 아까 우리랑 사진 찍었잖아. 그라헤라에서!" 그러는거다.

아. 그 이탈리아 친구들이었다. "미안 두사람이라 못 알아봤어! 그런데 왜 둘만 있어?"

한 친구는 중간에 갔단다. 이탈리아로 돌아갔다는 것인지 스페인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인지는 못 알아들었다.

나바르레떼의 성모승천 성당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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