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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17. 2016

폰페라다에는 대성당이 없다

밤새워 걸었던 스페인의 산길 - 폰세바돈

준이와 산을 내려서며 순례길의 집시 토마스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토마스는 폰페라다를 지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산 모퉁이를 돌 때 거짓말처럼 토마스가 길에 나타났다. 이 길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산 아래 낙원같은 마을 몰리나세카에 물놀이 하는 준현을 남겨 두고 먼저 폰페라다로 향했다. 폰페라다의 대성당(Catedral)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대성당에서 못 만나면 공립알베르게로 찾아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혼자 걷는 순례길.

하지만 폰페라다에는 대성당(Catedral)이 없었다. 대도시에 까테드랄이 없다니. 심지어 공립알베르게(Municipal Albergue)라고 특정할 만한 알베르게도 없다. 약속은 어쩌지? 우리는 과연 다시 만나 함께 걷고 야영할 수 있을까?


[8.11 월요일 / 걸은지 25일째] 밤새 추운 새벽길을 걸었다. 폰세바돈의 철십자가 옆에 작은 경당이 하나 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희미한 하늘빛과 손전등에 의지하며 걸으니 시야가 좁았다.

스페인 산골마을의 밤은 아름다웠다. 잠들어 있을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겼다. 산 속에 숨어 있는 만하린, 엘 아세보 마을을 지나 아침무렵에야 암브로스의 리에고(Riego de Ambros)라는 작은 마을 어느 공터에 텐트를 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 덕분에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길을 나섰다.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 자연의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하산하던 길. 문득 토마스와 보라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디서 야영을 했을까? 아니면 어떤 인연을 만나 편안한 밤을 보냈을까? 준이와 토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모퉁이를 도는 그 순간 갑자기 토마스가 눈 앞에 나타났다. 반갑기도 하고 이 길의 신비함에 놀라워 할 수밖에.

멀리 몰리나세카(Molinaseca)의 이국적인 뾰족지붕들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토마스와 준이와 나는 피리를 불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상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낙원처럼 아름답고 물놀이까지 맘껏 할 수 있는 몰리나세카. 어느 바르에서 늦은 식사를 마친 뒤 물놀이에 한창인 준이와 낮잠을 즐기는 토마스를 남겨 두고 먼저 폰페라다로 향했다. 이제 또다시 큰 도시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폰페라다의 대성당(Catedral)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성당에서 못 보면 공립알베르게에서 2차 접선을 하기로 했다. 서로 연락할 길도 없었지만 시간도 정하지 않은 채 이 길의 신비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그건 실수였다. 폰페라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작은 마을에서도 찾을 수 있는 Catedral이 이 곳 폰페라다에는 없었다. Iglesia만 여러개다. 더구나 폰페라다에는 공립알베르게라고 대표할 수 있는 알베르게도 없었다.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머무는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가 그나마 근접한 곳이다.

어차피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까미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에 여장을 푼 뒤 폰페라다 시내를 구경했다. 빨래와 샤워만 하고 저녁무렵에는 유성우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날 계획이었다.

어느 정도 빨래가 마른 뒤 짐을 정리하여 알베르게를 빠져나가던 순간이었다. 낯 익은 누군가가 알베르게 마당에 서 있다. 준이다. 까테드랄이라 불리는 대성당이 없어서 가장 큰 성당을 찾아갔다가 나를 찾지 못하고 이 곳 알베르게까지 찾아와준 것이다. 반갑고 고마웠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들렀다. 필요한 것들을 사고 그곳 사장에게 폰페라다에 있는 중국식당 위치를 물었더니 "곧 상점 문닫을 시간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면 데려다 주겠다" 고 한다. 이 길에는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중국요리로 배를 가득 채우고 강변으로 내려가 슈퍼문을 보며 야영을 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폰페라다의 강변에서 이런 야경을 보며 야영을 했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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