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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19. 2016

까미노에서 길을 잃을뻔 하다

밤새 물벼락에 시달린 카카벨로스에서의 캠프

깜포나라야의 알베르게 앞. 백파이프 연습하는 소리에 홀려 길건너 차고처럼 생긴 건물의 출입문을 열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성모마리아 대축일에 연주하려는지 연습이 한창이다. 묘하게 끌리는 백파이프와 드럼의 소리. 정식으로 연주하는 모습도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

깜포나라야의 백파이프 연주팀

[8.12 화요일 / 걸은지 26일째] 폰페라다의 강변에서 야영을 한 뒤 대학순례자 스탬프가 필요했던 준현과 함께 시내를 돌아보았다. 대학교와 호텔, 성당과 폰페라다 성의 웅장한 모습까지. 부르고스나 레온과는 또 다른 폰페라다만의 감성이 묻어났다. 강변의 바르에서 카페콘레체를 마신 후 배낭을 맡기고 다녔기 때문에 비교적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학교를 찾아갔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결국 스탬프를 받는데는 실패했다.

얼굴 없는 천사상 뒤로 보이는 폰페라다의 성

시내 구경을 다니느라 폰페라다를 떠난 것은 거의 오후 네시 무렵이었다. 대부분 새벽에 출발하여 낮 한시쯤이면 숙소를 잡고 쉬는 순례길에서 낮과 밤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야영을 하느라 숙소 걱정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깜포나라야라는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길 옆의 알베르게 겸 바르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백파이프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차고 같은 건물이다. 슬쩍 들여다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연습중이다. 누군가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손짓을 했다.

밤 아홉시를 넘은 시각 깜포나라야를 출발했다. 적당히 야영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며 걷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길이 조금은 음산했고, 개들이 유난히 짖어대던 어느 길을 따르던 중. 지나가던 차 한대가 되돌아 오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순례자들 아니니?" "맞는데요"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들어선 것 같구나"

어둑어둑 해진 길에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팔려 갈림길을 못보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카카벨로스까지 내가 태워다 줄까?"

고마웠지만 온전히 순례길을 걷고 싶었기에 인사를 드리고 한참을 되돌아 왔다. 차 한 대 만나기 힘든 잘 못 들어선 길에서 홀연히 나타나 주신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밤 열시가 다 되어서 도착한 카카벨로스 들머리의 공원. 지체없이 텐트를 친 후 마켓에서 산 와인 한병을 나눠 마신 후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갑작스레 엄청난 물소리에 깨어났다. 이건 비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 텐트에 물벼락을 퍼붓는 느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주기적으로 물벼락이 쏟아져 내린다는 것이다. 공원 벤치 위에 올려놓은 배낭도 다 젖게 생겼다.

텐트 문을 빼꼼히 열고 나오니 비는 오지 않는다. 그럼 조금전 그 물벼락은 뭐였지?

또다시 쏟아져 내린 물벼락, 지체하지 않고 텐트를 열어보니 아뿔싸. 우리가 텐트를 친 공원 잔디밭에 밤시간을 이용하여 자동 스프링쿨러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몇차례 더 물벼락 소리를 듣다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수난의 연속이다.

슈퍼문은 아직 기울지 않았다.

야영지에서 본 슈퍼문이 뜬 풍경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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