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시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술술 쓰다가 어느 순간 막혔다.
물론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시란 존재로부터 나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내가 시를 써서 상을 받게 되니 이제 나도 ‘시인’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다 시인이 되었지만 이제 시인이니 함부로 쓰진 않겠다는 마음이 되려 시랑 멀어지게 한 것이다.
다행히 소원해졌던 시와의 거리를 요즘 흥미를 느낀 시낭송, 시필사 덕분에 회복하고 있다.
그리고 소개하려는 이 책의 도움도 있었다. 한승원 님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소설가다. 그런데 그분이 시도 그리 많이 쓰신 줄은 몰랐다. 시, 소설 쓰기 작법에 관한 책을 쓰셨는데 우연히 빌려와 보면서 시든 소설이든 글쓰기의 기본인 태도와 마음가짐, 준비 이런 면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해서 독후감으로 정리해 두고 가끔 들여다보며 참고하려 한다.
이 책은 십 년전에 나왔다. 그러니 지금 60년 째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발하게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직접 터득하여 전수하는 나 혼자만의 시 쓰기 비법이다.
첫째, 좋은 시를 쓰려면 시인으로서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님들이 도를 닦듯이 수양을 해야 한다. 그것은 시인답게 마음을 비우고 살기이고 어린아이처럼 우주의 여러 현상과 그 내면의 뜻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인의 마음이 갖추어진다면 이미 반 이상은 시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양새를 읊으면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를 판별하여 읽고 그것을 암송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은 시인이 되려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가져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시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수사법을 공부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출판사 소개 중에서)
~~먼저 좋은 시를 쓰려면 먼저 그런 사람이 되란 말씀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시를 많이 접하고 나서 자기만의 시를 써 가란 말이다.
나는 책을 보면서 먼저 목차와 서문을 주의 깊게 본다. 그런데 저자의 뼈 때리는 서문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가 엉터리 소설을 쓰면 3년 안에 들통나는 데 시인들의 경우에는 30년이 넘게 엉터리 시를 쓰고 살아도 그게 엉터리인 줄 본인도 모르고 평생 그런 시로 사기를 쳐 먹고살아도 들통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시어들을 조합하고, 그것들을 그럴듯하게 행갈이 한 것을 들고 다니면서 시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사물이나 풍경의 현상적인 것만을 묘사적으로 쓴 시 몇 편을 들고 다니며 시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유치 찬란한 시를 쓰는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그러한 시를 쓰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단체를 구성하고, 시 잡지를 만들어 서로의 시를 실어 주고, 서로의 시를 칭찬해 주면서 살아간다. "
그러니 결론적으로 우선 시를 쓰고 싶다면 먼저 독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좋은 시인들의 시 쓰기 비법을 터득해야 하고, 그런 다음 자기 혼자만의 비법을 만들어 가져야만 누구보다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금 시작 공부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핵 같은 주요한 말씀이었다.
소설가 한강이 2014년 ‘소년이 온다’로 만해문학상을 받은 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씨와 (사진 창비제공)
부녀는 모두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딸과 아들들 모두 소설가이자 시인인 집안이다.
한강씨는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맨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이 상은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린다.
그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그는 소설가 한강씨의 아버지로 불린다며 부모로서 자식이 잘 되는 걸 보는 기쁨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말한다.
2018년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출간 간담회에서 한승원 작가가 광기(狂氣)를 써 보이며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라 말한다.
“좋아하는 것보다 강한 것은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보다 강한 것은 미치는 것이죠.” (사진 연합뉴스 제공)
* "나 혼자만의 시쓰기 비법'" 책 속의 인용글이 많아 편의상 작가님 말은 파란색, 그에 대한 글의 앞뒤 설명과 나의 생각은 다른 색깔로 한다.
파도만 보지 말고 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시를 쓰는 것은 새로운 삶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
~~ 무릇 시인은 현상 너머 본질을 추구하고 보는 사람이다. 수파불이(水波不二) - 물과 파도는 하나듯 겉의 파도가 아니라 본질인 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다 표면은 파도치고 일렁이나 바닷속 심연의 물은 고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물과 파도가 같은 것임을 알고 이분법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실은 같은 일원의 세계임을 시인은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수파불이를 앎으로써 일상의 파도 속에서도 늘 심연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다.
시인의 눈은 항상 현상 너머 본질을 꿰뚫고 그에 머물러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선(禪)은 차와 한 가지 맛이다. 차 한잔 하게! 불교 경전에는 선시(禪詩)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여라
~~~ 시는 어차피 응축된 언어다. 절에서 차 한잔 하라는 말은 대답할 가치가 있는 말에도 없는 말에도 가타부타할 필요 없이 그냥 똑같이 차로 퉁치고 가려할 때 하는 말이다. 스님이 차나 한 잔 하라 하면 발화자는 차 마시는 동안 이미 자기가 한 말을 곱씹으며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더 좋은 건지 스스로 깨칠 것이기에.
그래서 부처가 마지막으로 한 말도 내 안의 불성을 일깨워 가라는 자등명, 법등명이었을 것이다. 불교적 철학과 사유가 깊으신 한승원 작가님은 시를 선시와 빗대여 설명하셨다. 살불살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듯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시를 위해 서정주도 릴케도 죽여야 한다. 아류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고 모방을 거쳐 진정한 창조에 이를 때는 앞의 것을 다 죽여야 한다.
'쓴 시'는 쓰려는 제작의도를 가지고 쓰는 시이고, '쓰여진 시'는 애초에 쓰려는 제작의도가 없었는데, 몸과 영혼 속에 떠돌던 시적인 정서가 어느 날 문득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사리처럼 앙금이 져서 시로 변신되는 것이다.
연작시를 쓴다는 것은 한 주제를 들고 신화적으로 느끼고 사유하고, 정신분석학적으로 상량하고, 철학적으로 명상하고,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고, 구조적으로 관찰하여 그것을 내 영혼 속에 용해시킨다는 것이다.
~~쓴 시는 자료나 키워드를 조사해서 머리로 쓴 시다. 그러나 쓰여진 시는 저절로 내 안에서 옹달샘처럼 흘러나오는 시다. 꽃에 관한 시도 하나가 아니라 연작시로 써 보면 꽃의 우주, 꽃의 세계로 내가 더 들어가게 된다. 나도 관심있는 분야를 짧은 글로 표현하고자 시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시가 응축된 표현이라 해도 그 짧은 시 한편에 내 모든 생각을 다 넣을 순 없다. 그래서 연작시 형태로 써 보려고도 한다. 그러려면 한 시에서 이미 표현한 사상이나 이미지의 반복이 되면 안 될 것이다. 반복아닌 업그레드나 진화는 가능하지만.
개망초꽃과 소통하려면 눈높이를 개망초꽃에 맞추어 소통해야 한다. 물론 별과 소통하려면 별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바다와 소통하려면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고, 사형수와 소통하려면 사형수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시인의 눈이다.
~~시인의 눈 높이는 다람쥐를 만나면 다람쥐가 되고 하늘을 보면 하늘이 되는등 모든 대상, 사물을 대할 때 그 속의 그 눈높이가 되어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열린다.
관념어는 철과 구리와 단단한 천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처럼 차갑고 정이 가지 않는 언어이다. 관념어로 쓴 시는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처럼 비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풀이 자랄 수 없고 지렁이도 서식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죽어버린 땅이다. 즉 맨살이 느껴지지 않 는다. 맨살은 체온과 몸의 냄새 체취를 지니고 있지 않는가. 관념어는 시인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이해하려면 그 관념어의 하부구조 패러다임을 알아내야 한다.
'그 아이는 고독하다'는 관념적인 말이다.
(1) 그 아이는 학교에 올 때 혼자서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고 온다.
(2) 점심시간이면 혼자 점심을 먹고 운동장 가장자리 철봉대 옆에 서 어정거린다.
(5) 미술시간에 그림 그릴 도구를 준비해 오지 않곤 한다.
(6) 가정방문을 해보니, 그 아이는 마당에서 혼자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는 하부구조와 같은 섬세한 언어로 써야 한다.
~~ 관념어는 시의 언어가 아니다. 시는 이미지로서 관념을 보여줄 수 있어야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다.
나는 고아라서 외롭다는 시가 아니다. 고아라서 외롭게 살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시다.
장자의 '도덕경 속에 이런 말이 있다.
뱁새는 넓은 숲 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단 한 개의 나뭇가지만 필요로 할 뿐이다.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
편히 사는 것, 그것은 최소한의 것으로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잃어버림은 탐욕 때문이다.
나목 앞에서 '참된 길은 어디에 있습니 까'하고 묻는다. 나목이 대답한다. '무성한 장식, 그 허무한 것을 활짝 벗어버린 내 모습 속에 참된 성품의 씨앗이 들어 있다. 그것이 부처의 모습이다.
~~나목의 벌거벗은 모습이 시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여야 할 것이다.
겉치레와 군더더기 쓸데없는 말이 없는 것이 시다. 본질에 다가갈 때 불성, 신성, 참나, 본성이란 말로 표현되는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에 접근하고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그런 세계를 노래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공명이 있고 공감이 있어 감동이 있다.
참된 침잠은 속으로 깨어 있음이다. 겉으로 침잠하고 속으로 깨어있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겉으로는 움직이면서도 속으로는 가라 앉을 줄 아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그 사람은 촛불과 같은 사람이다. 내면으로 치열하게 불탐으로써 남을 밝히는 촛불. 고요히 앉아 있을 때는 차의 첫 향기 같고, 오묘하게 움직일 때는 물 흐르듯 꽃 피듯이 그러한 경지이다.
*침잠 (沈潛)
1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숨음.
2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함.
~~ 정중동, 동중정 움직이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고 있는 것, 그런 모습이 시심이다.
평생 소설을 써오지만 나는 시를 여기 (餘技)- 전문적이 아니고 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 ㅡ로 여기지 않는다.
걸쭉한 단물을 고고 또 고아서 차돌 같은 엿으로 만들듯이 풀어진 말과 삶을 그렇게 곤다.
비수를 깎듯이 벼리고 다듬는다.
싸움터에 나가서 쓸 그 촌철살인의 독 묻힌 칼,
내 가슴 내가 찔러 피 쏟고 죽어갈 그 패도 같은 것.
진주조개 같이 내 살 속에 상처 내어 그 진주의 씨를 배양하고 가꾼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픈 열애병. 그 병을 죽을 때까지 앓을 것이다.
느슨해져서 지리멸렬한 삶 속에 그 열애병으로 말미암은 보석을 박아넣으며 살고 싶다.
겨자씨 만한 사랑 보석, 우주가 담긴 그 겨자씨. 겨자씨와 우주와의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
그들의 황홀한 섞이기와 넘나들기와 그것들 서로의 맴돌기, 아아, 화려하고 슬픈 그 사랑 만다라.
ㅎㅎ 오늘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여
축하글을 오려 부친다~~
한승원 작가님의 딸, 한강작가님!!! 정말 대단한 쾌거입니다!!!
김구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나라를 문화강국으로 우뚝 세워준!!! 감동입니다~~
우리와 다음 세대들이 k pop, drama, food등 한류에 이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부심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그득히 차 오르며
뿌듯해집니다^^ㅎㅎ
한승원작가님이 소설가로 더 유명하시지만
그분의 '나 혼자만의 시쓰기 비법'을 보고 감명받고 저도 시낭송,필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ㅎㅎ
한강도 처음에 시로 등단했기에 소설속 서사도 시적 서정으로 녹여서 간결하게 표현한 점이....
번역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봅니다~~
결국 문학에서는 시,소설, 수필도 내용에 따라 선택하여 표현할 뿐 장르에 경계는 없는 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