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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공구 Jul 28. 2015

시드니 30km 부시워킹

_ROYAL NATIONAL PARK, NSW

부시워킹/bush walking : 등산로나 정해진 길이 아닌 끊긴 경로로 수풀, 잡목, 덤불 등을 헤치며 걷거나 이를 통해 시간을 단축하는 하이킹의 종류

정도로 설명하면 될까? 더욱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재밌는 하이킹을 해보지 않겠냐며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급작스러운 일정이 정해졌다. 평소에 걷거나 뛰는 것을 즐겨하기에 '하이킹? 재미나겠는걸~!'...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것이 그냥 '걷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트포드 Otford 지역에서 시작해서 번디나 Bundeena 지역까지 약 30km의 잡목림 사이를 걷고 기고 오르는 여정의 시작이다.

<약 30km 정도의 거친 수풀 사이를 헤치며 걸어야 하는 여정의 시작. via Google maps>
<이른 새벽 시간 집결지 채스우드(Chatswood)에서 모이기 시작한 일행. © 일공공구>

4:50 am

시작_오트포드에서 번디나까지

서둘어 나온 새벽,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일행의 움직임은 시작된다. 이번 부시워킹은 로열 국립공원(Royal National Park) 지역의 남단인 오트포드(Otford)로부터 시드니를 향해 번디나 만(Bundeena)까지 이동하는 경로로  이루어진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뱃속은 음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길 위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때로 채워 넣어야만 할 때도 있다. 오늘의 경로로 일행을 이끌어 갈 Matthew로부터 주의할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오늘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시작할 땐 항상 걱정을 앞세우는 성격이어서인지 생각에 잠겨 들기 시작한다. 야생의 캥거루를 만나게 된다면, 코알라를 만나게 된다면, 호주의 야생들개 딩고와 마주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상상에 잠긴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시티를 벗어나  오트포드로 향하는 트레인을 타고 이동하는 일행. © 일공공구>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 뒤 30여분이 지났을까, 말을 잊게 만드는 경관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일공공구>

6:50 am

각자의 가방에는 간단한 식사와 수분 보충을 위한 4리터의 물, 이외에 에너지 보충을 위한 간식(견과류, 무슬리바, 육포, 바나나를 챙겼다.) 등이 담겨있었으며 모험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욕심에 두 대의 카메라를 챙겨오는 무모함을 저질렀다. 결국 다른 하나의 카메라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이날 이후로 필요 이상의 물건을 챙기는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벼운 삶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은 지금도 감사히 여기는 중이다.


출발 지점에 도착한 뒤 일행은 과일 따위로 간편히 길 위에 설 준비에 돌입했다. 신발끈을 단단히 다시 메고 크게 시작해서 작게 스트레칭하고 발끝의 작은 부분까지 살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30℃를 넘어서고 있다. 걷는 거리를 소화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나선 이유도 있지만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대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함도 있었다. 뉴사우스 웨일스 주의 하계는 섭씨 40℃에 육박하는 기온을 자랑하기도. 리치먼드 지역을 방문했을 땐 거리에 아무도 없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의 온도는 44℃였다.

<힘든 언덕길을 벗어나 조금은 쉬운 해안길을 따라 이동하기도. 이것도 물때가 맞아야 가능하다. © 일공공구>
<로열 국립공원 명소중의 하나인 독수리 바위/Eagle rock. © 일공공구>

10:00 am

앞서 걸어 나가던 Matthew가 뒤돌며 일행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그 곳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한번에 이름을 알법한 형상의 바위 절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Eagle Rock, 일명 독수리 바위. 독수리의 머리를 닮은 형태를 지닌 바위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인증샷을 많이 남기는 명소 중 하나로 로열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다. 절벽 쪽으로 더욱 다가서서 담아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지만 위험한 일은 사전에 만들지 말자는 주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는 법이니. 실제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여전히 많은 호주는 절벽이 무너지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 속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셨나요? © 일공공구>

2:00 pm

앞서 간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기도 하지만 잠시 한눈을 팔면 금세 키 높이의 수풀 속에서 일행을 놓치기 일쑤다. 어느 덧 34℃를 넘어선 온도와 내리쬐는 햇살은 살갗을 뜨겁고 따갑게 만들고 걷는 것 조차 쉽지 않게 만들고, 피부에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 수시로 선블록 바르기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일행보다 앞질러 나가던 중 전방에 작은 뱀 한 마리가 뜨거운 태양빛을 쬐며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있던 뱀 근처로 다가가서 사진기에 담으려는 순간 Matthew가 길을 막아섰다.


"위험해! 브라운 스네이크는 너를 발견하는 즉시 달려들 거야"


이 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무지하고 위험한 행동을 할 뻔 했단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 전역에 서식하는 브라운 스네이크는 지역, 종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오렌지-브라운 계통의 색을 지니고 있으며 무척이나 위협적인 맹독을 지니고 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이 오면 우선 쫓아가서 물어버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한다. 다행히도 해독킷은 개발되어 있지만 워낙 강한 독을 지니고 있어 피부가 괴사 되거나 해독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일으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독사 중의  하나다.... 안전제일.


수풀 사이를 헤집고 걸어나가던 중 작은 해변을 지나게 되었다. 모래사장 위로 무언가 익숙한 듯 진귀하게 생긴 물체가 있어 다가가 보았더니 사람 얼굴 크기 만한 가시복어 있었다. 그런데 복어가 모래 위에서 사는 게 아닌데? 자세히 살펴보니 해안까지 그대로 떠밀려와서 몸을 부풀린 채로 뜨거운 햇빛에 그대로 미라화 된 상태였다. 무언가 위협을 받은 상태에서 몸에 잔뜩 공기를 집어넣은 상태로 거친 파도에 의해 해변까지 밀려왔다가 말라버린 것이리라. 꽤나 여러 마리가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도에 휩쓸려온 다른 생명체는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니 다른 육식동물들도 복어가 지닌 독의 위험을 알기에 먹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봐오던 풍경과는 다른 이곳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 일공공구>

한국의 해안절벽과는 다른 이곳. 그러고 보니 한국에선 해안절벽이 흔하진 않았다. 한국에도 멋진 절경을 자랑하는 주상절리 같은 멋진 자연경관도 있지만 이렇게도 끝없는 규모의 펼쳐진 장관이란 절로 우리의 입을 조용하게 만든다. 자연의 위대함, 크기, 무게감 앞에서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일행 모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저 이곳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웨딩케익록(Wedding cake rock). 사암 퇴적층이 풍화작용에 의해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일공공구>

3:20 pm

절로 탄성을 지른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모래길이 이어지던 언덕 위에서 우리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웨딩 케이크 바위(Wedding Cake Rock)라는 이름을 지닌 이곳은 오래전 퇴적된 사암층이 융기한 이후로 세월의 바람과 물에 의해 네모반듯하게 풍화침식 작용을 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로열 국립공원의 명소 중 하나.


"그래서 우리에겐 길 위의 시간이 필요한 거야."

4:00 pm

드디어 부시워킹의 마지막 지점이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남겨두었던 식량과 식수를 이젠 계산 없이 다 먹어도 좋다. 일행은 서로의 식량을 나눠 먹으며 오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우리 정말 굉장했어." 서로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며 무거워진 다리를 풀어보기도 한다. 어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굉장한 장면을 짧은 시간 동안 봐 버려서인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까지 들 정도이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음을 느끼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 일 속에서 우린 결국 이 감정을 놓쳐버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경험의 기억은 머리 속에서 또 다시 길 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우리를 길 위로 이끌 것이다.


직장에서 마감을 지키며 더 나은 결과물을 이루기 위해 달리던 시간 속에서 배운 습관은 언제나 효율적인 시간 분배가 우선이었고, 만족을 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마음 속을 채워왔다. 여행을 떠나온 길 위에서도 그런 자세를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정리할 수 있었으며,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우리에겐 길 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10 pm

번디나 지역에서 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일행.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각자 하나 이상의 이야기를 지니고 더욱 커진 내면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근사한 해안 저택을 바라보기도, 심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혹자는 잠에 빠져들기도. 가만히 함께한 친구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된 길을 하나 정복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과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욕심에 별 다른 계산과 고민 없이 따라 나선 길 위에서 마음은 흡족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었다.

<부시워킹이 끝난 뒤 즐기는 호주의 돼지바, Golden Gaytime. © 일공공구>

_Royal National Park

Audley Rd, Audley NSW 2232 Australia

+61 2 9542 0648

www.nationalparks.nsw.gov.au/royal-national-park


_주의사항/Alert

오지지역이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없습니다. 함께한 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생명에 치명적인 브라운스네이크, 각종 독충, 낙상 사고, 고립 등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준비 없이 부시워킹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또한, NSW 국립공원 관리소에서는 지역 알림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5년 7월 28일 기준, 웨딩 케이크 록 같은 경우에는 접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무너져내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 상태입니다.

http://www.nationalparks.nsw.gov.au/visit-a-park/parks/Royal-National-Park/Local-alerts


지난 길 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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