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 October 2022, 여행 15 (3/4)
(커버 이미지 : Quebec City에서 St. Lawrence 강을 건너면 작은 마을 Levis에 닿는다.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는 특별하지 않은 한적한 마을 언덕에서 강 너머에 있는 대단한 관광지 Old Quebec을 바라보는 건 꽤나 운치 있는 일이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우리는 여름과 가을 각각 한 번씩 다녀왔는데, 그 두 번의 이야기를 모아서 지금 글을 남깁니다.
퀘벡시티의 특유의 유럽 감성은 독특하고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일부러 아무것 하지 않아도, 왔던 곳을 또다시 가봐도, 유명하지 않은 이름 모를 골목에 있다 해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운타운만 보고 가는 건 그 나름대로 아쉬운 일이라, 차를 가져왔으니 퀘벡시티 주변에 가 볼만한 곳을 좀 찾아봤다.
올드 퀘벡을 나와 신시가지를 지나면 바로 강변 고속도로가 나타난다. 퀘벡시티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여서 고속도로 타면 얼마가지 않아 금세 교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캐나다 교외지역이 미국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한국식 아파트 건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라면 단층 나무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5~6층정도의 벽돌 혹은 콘크리트로 다세대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진짜 한국 스타일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까지는 아니고 한 두동씩 띄엄띄엄 지어져 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 아닌 것이 뭔가 약간 어색하다.
아마도 미국보다 캐나다가 더 추우니 집을 좀 더 따뜻하게 지어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각 나라의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여행의 소소한 재미다.
여름추억 :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훨씬 높은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
퀘벡시티에서 쌩 로렝 강(St. Lawrence River)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몽모랑시 강(Montmorency River)과 만나게 되고 그곳엔 꽤나 유명하다는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가 있다.
올드 퀘벡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폭포 공원은 꽤나 명소인지 넓은 주차장엔 자리가 별로 없고 우리처럼 미국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도 많다.
차에 내려서 본 몽모랑시 폭포는 사진으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소리와 위용에 압도당할 정도다. 총 높이 87m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무려 30m나 높다는데 폭포 앞에 다가서자마자 정말 소리부터 다른 것이 느껴진다. (물론 폭포의 폭과 수량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비교할 순 없다.)
엄청난 물줄기와 물보라, 그 자체로 압도적인 느낌. 폭포 바로 아래에는 물이 엄청 튀는데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우리도 찰칵!
폭포의 경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겸 다리까지 올라가야 한다. 매표소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었는데 이미 폭포 앞까지 걸어온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나무하나 없는 바위산 계단으로 걸어가는 수 밖에는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올라가던 세은이는 처음엔 투덜거리더니, 얼굴에 바로 옆 폭포에서 날리는 시원한 물보라가 닿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신나서 열심히 뛰어간다.
우리 어린이가 이렇게 갑자기 힘을 내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계단을 올라거던 중, 몽모랑시 폭포를 가로지르는 집라인(Zipline)이 호기심 많은 소녀의 눈에 들어오고야 만 것이었다.
집라인을 타고 폭포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흩날리는 폭포수를 맞으며 날아가면 얼마나 멋진 경험이 될까. 투정 부리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면 태워주겠다는 엄마의 약속에 계단 끝 집라인 매표소까지 이토록 열심인 거다. 나도 같이 타고 싶고 기대가 된다.
말 잘 듣는(?) 세은이 덕분에 우리는 순식간에 바위 언덕 정상에 올랐다.
높은 곳에 펼쳐진 멋진 풍경과 넓은 잔디밭을 즐길 새도 없이 세은이 등쌀에 집라인 매표소를 찾아서 줄을 섰다. 그런데 매표소 앞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이 있었으니... 탑승자 공지는 다음과 같았다.
어린이는 부모와 반드시 같이 탑승해야 하고 몸무게 40kg 미만은 탑승할 수 없습니다.
뜨악! 부모 동승은 나랑 같이 타면 되니 상관없었지만, 몸무게가 40kg을 넘어야만 한다는 건 지금 당장 생수 한 병을 통째로 마시게 해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세은이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다.
내가 몸무게 때문에 탈 수 없다는 얘기를 해주자마자, 세은이의 얼굴이 구겨지고 한참을 입 꾹 다문 채 말이 없더니, 삐진 눈빛으로 “왜 나는 못 타는 건데! 몸무게가 무슨 상관인데!” 하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아빠도 세은이 핑계로 타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아내가 세은이 핸드폰 사용시간을 몇 시간 늘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간신히 달래서 폭포를 '걸어서' 건너러 간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더 커서 꼭 여기 와서 타렴.
폭포의 정상에 있는 다리에 올라서면 웅장한 물줄기가 바로 발 밑에 있다. 물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올드 퀘벡까지도 볼 수 있는데 샤토 프롱트냑(Château Frontenac)이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그렇게 다리 위에 서서 시원한 바람도 맞고 폭포도 구경하고 나니 세은이도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다. 다리에서 풍경을 보는 동안 바로 아래에 몇 명이나 소리를 지르며 집라인을 타고 지나간다. 세은이 표정은 그럭저럭 괜찮다. 대견한 것.
지금 당장은 세은이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잠시 기분 구겨졌던 그 순간이 어쩌면 나중엔 집라인 탄 것보다 더 특별한 이야기가 될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이 시간이 너에게 나름대로의 추억이 되기를 바라고, 나중에 커서는 지금 못한 것, 그때 아빠가 옆에 없어도 꼭 마음껏 다 하렴.
폭포 위 다리를 완전히 건너면 좁은 산책길을 지나고 케이블카 정거장과 작은 정원이 나온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폭포를 떠나기 전에 정거장 옆 경치 좋은 레스토랑에서('Terrasse Du Manoir')에서 식사를 했다. 그 순간엔 집라인도 잊은 듯, 세은이도 다시 평소처럼 까르르 웃으며 식사를 했다. 그러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차에 올랐다. 몽모랑시 폭포를 돌아보는데 3시간 정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은 것 같다.
폭포의 물소리, 시원한 물보라, 세은이의 아쉬움과 웃음까지.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여름날을 몽모랑시 폭포에 남겨두고 또다시 길을 떠난다.
가을추억 : "강 건너 저기는 어디야?" - 레비스(Levis, Quebec)
퀘벡시티의 중심은 올드 퀘벡, 그 안에서도 쌩 로렝 강변의 랜드마크인 샤토 프롱트냑은 말 그대로 퀘벡시티 여행의 시작점이다. 모든 관광객을 빨아들이는 이 위엄 있는 성채 바로 옆에는 나무바닥으로 된 산책길 뒤프랭 테라스(Dufferin Terrace)가 있어서 쌩 로렝강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딱 좋다.
쌩로렝 강은 강 폭으로 치면 한강의 두 배 정도는 된다. 그래서 퀘벡시티는 오래전부터 캐나다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지금도 대서양을 건너는 큰 화물선과 크루즈가 항구에 정박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올드 퀘벡의 옛 유럽 모습과 신문물인 대형 선박의 조화가 굉장히 이채롭게 느껴진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아름다운 강 위로 바쁘게 오가는 배들을 보다가 문득 강 건너편이 궁금해졌다. 강 건너에는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 있는 것 같다. '저곳에서 여기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퀘벡시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강을 건너 가 보기로 했다. 퀘벡시티에 오는 사람 중에 몇 명이나 저 강 건너에 까지 가 봤을까?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강 건너 마을 이름은 레비스(Levis)라고 한다. 유명한 장소는 아닌 듯해서 찾아 볼만한 정보도 없다. 차 세울 주차장 위치 정도만 알아보고 출발한다.
퀘벡시티에서 차를 싣고 페리를 타면 최단거리에 비용이 비싸지 않지만, 선착장 앞에 대기하는 차가 많기 때문에 바로 건너갈 수 있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맘 편하게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다리(Pierre Laporte Bridge)까지 가서 강을 건넜다.
그렇게 쌩 로렝 강을 건너서 도착한 레비스는 퀘벡시티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올드 퀘벡과 달리, 레비스는 조용하고 수수한 마을이었다. 마당 없는 아담한 주택들과 가파른 언덕, 그 언덕을 따라 이어진 길 위로는 캐나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풍경을 훔쳐볼 수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걸으며 작은 주택들, 조용한 상점, 아기자기한 미술품 가게, 하키 연습하는 아이들 소리같이 낯선데 친숙한 모습에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해진다.
배가 고파질 즈음, 아내는 구글 지도를 뒤져 열심히 별점 높은 식당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관광객이 오는 곳이 아니니 별점도 큰 의미가 없다. "그만두시구려. 우리의 운을 믿어봅시다."
우리는 그냥 가까이 있는 식당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은 서너 개쯤?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간단한 식료품도 팔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일상처럼 찾아오는 진짜 로컬의 식당 같다.
영어 하는 사람도 없고 식당 이름도 프랑스어라서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고, 메뉴도 전부 프랑스어뿐이라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공부했다는 아내가 메뉴판에서 한 가지를 집어낸다.
"여기 봐, Boudin. 여기 소시지 집이네." 그러고 보니 식당 입구에도 'Saucisserie(소시지 가게)'라고 쓰여있긴 했다. 소시지라는 것 말고는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으니 적당히 운과 감으로 식사를 주문했다.
꽤 먹을 만한 요리에 시골 느낌의 따뜻한 분위기까지 기억에 오래 남을 한 끼가 되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동네 언덕을 계속 걷다가 우연히 작은 공원(Terrasse du Chevalier-de-Levis) 하나를 발견했다. 단풍이 흐드러진 풍경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쌩 로렝 강과 퀘벡시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샤토 프롱트냑.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소를, 이렇게 멀찍이서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는 건 꽤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도 그저 그 풍경 속 일부가 되어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공원 잔디밭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가족들이 산책을 하고 아이들이 놀고 있다. 레비스는 그렇게, '관광'이 아닌 '쉼'을 선물해 주는 곳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퀘벡시티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은 소란스러움이 아닌 고요함으로, 복잡함이 아닌 여유로 장식되었다. 차에 다시 올라 우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은 한동안 레비스 그 언덕 위 작은 공원이 잊히지 않았다.
'Montreal에서 만난 음악, 과학, 역사'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