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원철 Aug 26. 2016

1. 악튜러스

나의 진정한 원점

제 게임 회상의 첫 타자는 바로 「악튜러스」입니다. CD 케이스에서는 32장 중 9장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구입한 「패키지의 로망」 내에 수록된 DVD까지 합치면 총 이 게임만 10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으로 패키지로 사서 엔딩까지 깬 게임이기도 하고, 이에 얽힌 추억들도 많기에 전문인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이 게임은 저의 영원한 명작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게임과 처음 만났을 때는 1999년 11월, 초등학교를 옮기고 거기서 읽은 게임잡지에 빠져서 직접 잡지를 구매했을 때 따라온 체험판 게임을 했을 때입니다. 뭣도 모르고 마을 밖에 나가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게 마냥 좋았죠. 아마 그 첫 체험판은 전투 시스템을 중점으로 체험할 수 있게 제작한 모양입니다. 이후 초반부의 스토리를 수록한 두 번째 체험판까지 입수해 플레이하긴 했지만, 그 이후 저는 이 게임을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힘든 시기여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데다가, 게임이 무기한 발매 연기를 선언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차 발매일 연기 결정을 앞두고 공개한 영상

이 CM은 제작팀이 발매일 준수와 연기 사이에서 고민하던 상황을 당시 유행하던 CM 중 하나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를 패러디해 풀어낸 영상입니다. 완성도와 발매일을 두고 게이머들의 투표로 행방을 결정했었고, 완성도를 위해 발매일을 희생하자는 의견이 더 많이 나와서 발매일을 연기하였다...... 고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잊고 살던 이 게임은 어느 순간 갑자기 제 마음의 문을 다시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대략 2000년 11월 정도. 이 게임을 처음 알게 되고 1년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었죠. 제가 고생하던 그 사이 게임은 착착 개발을 진행하여 완성도를 높여왔고, 다시 선보일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예약이나 한정판 같은 개념이 희박하였던지라(초회 한정판에서 몬스터 표절이 발견되어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당시의 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발매 후 얌전히 일반판을 샀습니다. 이 글의 제목 이미지는 바로 일반판의 CD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게임 CD 6장+OST CD 1장의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사실 인스톨 CD 1장을 제외하면 모두 음악 CD입니다만, 5장이라는 수는 대작이라는 감각을 주기 충분한 수치였습니다. 게임의 볼륨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게임 플레이 중 CD를 여러 번 바꿔 끼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만, 중반부부터는 그게 없어집니다.) 게임을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죠. 스토리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발매된 지 15년이나 지난 게임이라 스토리나 영상들은 쉬운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기도 하고,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실제로 게임을 구해서 하실 분을 위한 나름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때는 제가 처음 플레이하는 RPG 장르 게임이었기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고 게임오버 화면도 많이 보았습니다. 레벨 올리는 것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초중반에 곤경에 빠지기도 하였고, 후반부에 점프를 해서 건너가야 하는 부분을 도저히 못 깨서 다른 사람 세이브 파일 받아다가 엔딩 보기도 했죠. 패치를 깔고 다시 할 때는 흔히들 미믹이라고 부르는, 상자로 위장해있다가 기습하는 몬스터에 당해 트라우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이 게임은 저에게 몰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수면시간을 줄여가면서(그래 봤자 1시간 줄인 정도지만요. 밤새서 게임할 용기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엔딩 보고 컴퓨터를 2번이나 바꾸면서도 가장 처음 한 일이 악튜러스 깨기였을 정도로 이 게임은 엄청나게!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마지막에 나오는 쿠키 영상 같은 것을 보면 웃기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이 게임을 접한 이후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제가 되었지요. 바깥세상은 스타크래프트다 디아블로다 할 때 저는 묵묵히 악튜러스 즐겼습니다. 내가 재미있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대세 따위는 상관없이 내가 내 생각과 의지로 선택한 것을 한다는 제 신념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악튜러스를 알고 플레이하면서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후회하지 않은 것도 악튜러스를 깨면서 얻은 만족감을 제가 잊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제멋대로 게임 회상 1편을 마칩니다.


2편은 한국 게임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시리즈의 게임 이야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 추억의 CD 케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