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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01. 2015

#1. 10일 간의 인턴생활...

'가십'을 쫓는 비정규직 영업사원


저 합격했어요

2008년 어느 날 새벽 6시쯤. 이른 새벽 출근길에 나섰다. 첫 출근에 대한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조금이라도 빨리 회사에 도착하고 싶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매체면 어떠냐'


오랜 수험생활 끝에 찾아온 합격 소식이기에 난 그 누구에게도 떳떳했다.

거기 괜찮은 곳이니?

많은 이들이 걱정해줬지만 난 의치 않았다. 온라인 전문지였지만 나름 인정받고 있는 매체 같았다. 당시 난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메이저가 아니면 어때! 내가 여기서 열심히 해서 같이 성장하면 되는 거 아냐!'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앞으로 너희들은 인턴으로 채용돼
3개월 동안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 기자로 채용될 거야.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국장이라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들어보니 여기 국장은 유력 경제지 출신이고 부국장은 일간지 출신이란다. 엄청 멋있어 보였다. 물론 엄청 까칠하고 사납게 생긴 여 기자가 있었는데 자신을 메이저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나를 대놓고 깔봤다.

이제 기사를 써야지

출근해서 바로 기사 송고 훈련을 했다. 스트레이트와 박스 기사에 대한 개념이 나는 출근 첫 날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봤다. 이튿날도 셋째 날도 난 하나의 기사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여기 회사 좀 이상해

당시 같이 입사해서 교육을 받던 동기들이 말했다. 동기는 총 3명이었는데, 그들은 현직 기자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유력 매체에... 내 주위에는 현직 기자가 없어 난 전적으로 그들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그 판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저 난 순진하고 멍청한 사회 초년병일 뿐이었다.

오늘부터
하루에
취재기사 한 건씩 쓰고
퇴근해

아뿔싸...... 드디어 취재기사 송고 지시가 떨어졌다. 불과 입사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아니 3일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본이 뭔지도 모른 채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기사들을 보면서 스트레이트가 뭔지를 스스로 깨달아 나가고 있었다. 취재 기사를 쓴다는 것은 당시 내 능력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취재 아이템은 국장이 게시판에 올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걸 확인  취재해서 기사화하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내 능력으론 무리였다. 아니 이건 내겐 가혹한 폭력이었다.


잠시 나 좀 볼까

대표가 우리 동기들과 개별 면담을 요구했다. 무슨 일일까 걱정했는데, 대표 방을 나온 동기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썩었다. 이제 내 차례가 됐다.

가십거리 좀 써볼래

대표는 내게 가십거리를 쓸 것을 요구했다. 취재기자로 뽑았지만 말랑말랑한 기사, 포털에 먹힐만한 기사를 쓸 것을 요구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란 거였다. 그날 저녁 동기들이 모였다.

나 그만둘 거야

동기 2명이 일제히 얘기했다. 난 당시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렵게 입사해서 왜 그만두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참을 쳐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너를 온전한 기자로 키우겠다는 게 아니잖아

아...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 동기들이 내 기자 생활의 은인이다.


나도 선택을 해야 했다. 어렵게 구한 첫 직장. 비록 인턴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괜찮겠지'란 막연한 생각에 내 미래를 맡길 순 없었다.

그만 두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입사한 지 10일 만이었다. 대표는 우리에게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퉁(?) 치려고 했다. 동기들은 즉시 행정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노동청에 신고해서 노동의 대가를 받아내겠다는 것이었다.


난 그런 동기들을 막지 않았다. 다만, "난 그 돈 받지 않아도 돼"라며 빠지겠다고 했다. 동기들이 엄청 욕을 해댔다. 그러고도 기자냐며...

임금을 받지 못해 신고하러 왔습니다

관할 지방노동청에 해당 업체를 신고하러 갔다.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정말 어른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 근무 시간을 적다 보니 하루 18시간 이상 근무했다. 정말 미친 듯이 열정을 불살랐다. 최저임금으로 따져도 꽤 되는 돈이었다. '돈을 받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반성했다. 그리고 묵묵히 노동청의 처리를 기다렸다.


띵동! 입금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입금됐다. 사실 당시 입금이  얼마나됐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내겐 돈이 중요하지 않았었으니까. 그저 '언론인'으로서 세상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대한민국 젊은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에필로그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다행히 잠시 발을 들였다가 재수 좋게 빠져나왔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니다 싶다면 과감히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든 때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부디 대한민국 고용주들이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단순히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부리지 않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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