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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07. 2015

#4. 숨통을 조여오는 광고압박

빠져나올 수 없는 '광고빚 늪'…'입사·공포·퇴직' 반복되는 악순환 고리

나... 갈게...

곧 나간다던 선배는 한 달이 조금 지나서 그만뒀다. 홀가분하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지방에 내려가서 하고 살 거라고 했다.  지긋지긋하다고 더는 상처받기 싫다고도 했다. 


조촐 송별회 열렸다.  선배가 자주 가는 등갈비집에서였다. 매콤한 등갈비 양념이 오늘따라  눈시울을 더욱 자극했다.


혀가 소주 맛에 무감각해질 즈음 선배가 물었다. "넌 왜 기자가 되려고 해?" "음... 전... 세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요".


선배는 말없이 을 들이켰다.


도장은 찍지마

다음 날 아침 선배는 사표를 들고 국장실로 들어갔다. 예상과는 달리 금방 나왔다. '생각보다 여긴 퇴사가 쉽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성급했다. 국장의 수족이었던 부국장 겸 차장이 선배를 회의실로 불렀다. 한참이 지난 뒤 선배는 자리로 돌아왔다.


차장이 담배 피우러 간 사이 조용히 물었다. 만류했다고 했다. 뜻을 굽히지 않자 부국장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단다. 도장을 찍어야 사표 수리가 된다고 했단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일하면서 생긴 빚을 겠다는 서약서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돼왔다고 했다. 퇴사하면서 그동안 생겨난 광고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기자들이 있다 보니    만든 '노비문서' 같은 것이었다.


정말 치가 떨렸다. 너무도 극악무도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아픈 정도를 모르고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야

그날 저녁 선배와 다시 술 한잔을 했다. 선배는 말없이 소주 잔을 연신 들이켰다. 나도 따라 마셨다. 어느새 한 병을 비웠다.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선배는 두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칼에 찔렸을 때의 아픔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칼의 깊이를 조절해. 쓸데없는 고통을 상대에게 주지 않아. 하지만 남의 고통에 무지한 자는 위협하기만 해도 될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찌르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당시 난 술에 얼큰하게 취했었다. 그런데도 이 얘기가 지금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당시 상당히 깊게 새겨뒀던 것 같다.


인턴에게까지 그러는 건...
좀......

선배가 나가고 일은 더욱 바빠졌. 지면 광고는 한사람이 빠지자 남은 사람들에게 추가로 할당됐다. 국장이란 자와 부국장이란 자는 인턴인 나에게까지 광고압박을 넣었. 다행(?) 내게 떨어지진 않았다. 선배들이 나를 보호해줬다. 인턴에게까지 그러는  아닌 것 같다며... 결국,  광고는 선배이 됐다. 슬프게도......


선배 저...
그만..둘..래..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다시 꺼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선배들에게 먼저 알렸다. 선배들은 좋은 곳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날 저녁 우린 또다시  부딪쳤다.


 선배는 내게 자신의 비전을 설명해줬다. 자기는 신방과를 나왔다고 했다. 여기저기 지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회사의 광고시스템이 착취구조인 걸 알지만 다른 곳으로 이직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기는 여기서 글을 열심히 써서 나중에 칼럼니스트가 되는  꿈이라고도 했다. 선배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선배는 몇 년 후 다른 전문지로 이직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결혼도 했는데 이직에 성공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주간지로 돌아갔다는 얘길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회유와 으름장

다음   들어 국장에게 서직서를 제출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부국장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유를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당근을 보여줬다. 부국장은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식이었다. 인재라며 정식 기자로 채용시켜 주겠다고도 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끔찍했다. 광고빚에 숨이 막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난 단호했다.


말투가 변하며 부국장이 물었다. "너 나가서 뭐하려고 그러냐?".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음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기서 몇 년 더하면 내가 추천 넣어줄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이없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채찍이 날아왔다. " 어디  원서 넣었다는 소리 들으면 내가  떨어뜨리라고 할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사람이 뭔데  인생을 망치려 드나'라는 울화가 치밀었다.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예의는 . "이만 가보겠습니".


뉴페이스 등장
그리고
악순환 고리의 또 다른 시작

인수인계는 하고 가라고 했다. 어차피 수험생활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부국장이란 작자가 정말 유력 언론사에 지인이 많아  길을 막을까 두려웠. 


신입 기자 채용 공고가 다시 나갔다. 며칠 뒤 30 중반 여자가 들어왔다. 나보다 4 연상이었다. 딱 봐도 알았다. '어린 친구들 뽑으면 자꾸 나가니까 쉽게 나가지  30  뽑았구나'란 직감. 


인수인계를 해주며 아무런 말도  못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느지막 깨달은 바가 있어 언론인이 되겠다고  사람이었다. 너무도 절박했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 끊기지  반복됐다.

다음에 계속...

에필로그

이렇게 저의 두 번째 인턴 기자 생활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더는 인턴 생활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제로 인턴 기자를 뽑는 곳에는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공백기를 가지고 기자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제가 알기로 일부 매체에서는 광고를 따온 기자에게 일정 금액을 인센티브로 주고 있습니다. 잘하는 직원을 칭찬하고 포상하는 일종의 '포지티브 인센티브'인 셈이죠. 하지만 제가 경험한 회사는 직원에게 벌칙을 가하는 '네거티브 인센티브'를 택하고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포지티브 인센티브라면 광고에 따른 인센티브 선택은 기자의 몫입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네거티브 방식은 광고 따오도록 강요받습니다. 광고를 따오지 않으면 몇 푼 안되는 월급마저 포기해야 하니까요. 즉, 마이너스 인센티브를 택하고 있는 언론사에서는 제대로 된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포기해야 하는 거죠. 생계를 위해서 말이죠.

제가 인턴 생활을 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8년여 전 일이지만, 지금도 이런 매체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저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제 삶을 틈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상황을 아주 꼼꼼하게 적어놓은 기록이 없습니다. 이번 편도 제 기억에 근거한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중요 사실에 세부 사연은 픽션으로 덧붙였습니다. 더 자세하게 쓰려고 하면 소설이 될 것 같아 제 삶의 인턴 기자로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사실 쓰면서도 제가 겪은 일이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기자로서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 깨달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연과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가감 없이 진솔한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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