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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03. 2015

#3. 서서히 드러나는 정체

이번 회사는 지난번 회사보다 더 악랄했다...

인턴기간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

2주 정도가 지났을 즈음 "곧 나간다"고 했던 선배가 나를 불러 말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 같았다.


당시 난 그 선배의 후임이었다. 그 선배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받아야 했다. 곧 나갈 사람이었으니까. 함께 일하면서 금방 친해졌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글을 좋아해서 여길 들어왔는데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도 했다. 이제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언제 그만두세요?

선배는 내 대답에 당황했다. 그리고 머뭇머뭇거렸다. 뭔가 속사정이 있는 듯했지만, 난감해하는 선배를 보며 더 이상 채근할 수 없었다. "선배 죄송합니다. 괜한 말씀을 드렸습니다"고 사과했다. 선배는 늘 그렇듯 자기 할 일을 다시 시작했다.

회사로 오는 책은
다 국장이 가져가

난 도서면과 일정을 담당했다. 막내가 해야 할 일이다. 주요 일정을 확인해서 지면 한쪽 구석에 정리해주고, 매월 출간된 책을 확인한 뒤 <이달의 신간>을 써야 했다. 때론 8매 정도로 읽지도 않은 책의 서평을 그럴 듯하게 써줘야 했다. 난 책을 읽은 뒤 제대로 된 서평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모든 책은 국장실로 배달됐다. 국장은 내게 보도자료만을 던져줬다. 책들은 국장실에 수북히 쌓였고, 회사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심쓰듯 선물로 줬다. 때론 박스에 담아가기도 했다.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광고 확인해

보통 수요일에 인쇄를 넘기기 위한 교열작업을 했다. 한주간 일정을 살펴보면 목요일 오전 발제회의, 목요일 오후와 금요일 취재, 월요일 원고 마감 이랬다. 수요일 전날인 화요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광고국부터 시작해서 전 기자들이 아침 조간 신문을 비롯해 동종업계 지면을 샅샅이 뒤졌다. 특정 신문에만 광고한 곳을 찾기 위해서다. 발견 즉시 전화기를 돌렸다. 사정해보기도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대게 사정했다.

사람이 아닌 돈을 봐

2년이 조금 넘은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기서 오래 일하려면 취재를 하면서 광고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취재원을 만나서 광고를 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전략적으로 친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게 지면이라면 적절한 시기에 지면 톱으로 할애해주는 배려를 해주라고. 한마디로 지면 장사의 법칙을 알려준 것이다.

광고 빵구 났다고?

한쪽 구석에서 선배가 사정하고 있다. 수요일 인쇄 넘기는 날에 광고를 빼겠다고 연락이 왔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차장급 선배에게 가서 상황설명을 했다. 차장이 자신도 알아본다고 했다. 다들 해당 광고를 대체할 광고 찾느라 교열보기는 전부 내 몫이 됐다. 오후 9시가 넘어갔다. 아직까지 대체 광고를 찾지 못했다.

너 이름으로 광고 달고 아무거나 실어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기자 이름으로 광고를 달고 아무거나 내보내라니... 이게 뭔소린인가... 그제야 곧 나간다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선배를 찾아가서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선배가 말했다. "여기는 광고가 매주 할당되고 그걸 소화하지 못하면 기자가 광고료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선배는 얼마나 있냐고 물었다. "나도 몇백 있고 여기 다들 광고빚이 꽤 된다. 문제는 저기 차장은 광고빚이 수천만 원일 거다"고 했다. 이런 무슨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자신도 매주 늘어나는 빚이 두려워 차라리 백수가 되기로 했단다. 그게 퇴사 이유였다.

이거 광고 내가 만든 건데 어떠냐?

결국 그날 대체 광고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수천만 원 빚이 있다던 차장 선배가 포토샵을 가지고 전면광고를 만들었다. 흰 바탕에 짧은 문구를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망을 담은 듯했다. 지면이 아까울 정도로 매우 깔끔했다. 난 생각했다. "광고주라면 저 비싼 지면에 저런 광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시민단체가......

다음에 계속...

에필로그

이번 편은 큰 줄기는 사실이지만 대화 내용이나 그런 면에 픽션이 가미됐습니다. 중요한 팩트는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한 사례를 가지고 모든 전문 주간지가 이럴 것이라고 오해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경험한 회사는 정말 그 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었습니다. 기자에게 광고를 할당해 채무자로 만드는 그야말로 악랄한 회사였죠.  걱정이 돼 한 말씀 덧붙였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세상에는 이 같은 악랄한 수법을 이용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죠. 가출한 여자 아이를 보살펴주는 척하다가 서서히 본심을 드러내며 성매매를 강요하는 가출팸이나 포주들, 다단계 업자들 등 많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던 속담 아시죠? 그런데 요즘 호랑이는 워낙 진화를 거듭해서 굴 앞에 향을 피워둡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향에 취해 정신을 잃게 만드는 향을 말이죠.

늘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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